[♡詩작품♡]신석정, 꽃덤불

작성자황득 김한규|작성시간23.08.20|조회수391 목록 댓글 0

                        꽃덤불

 

                                                                  신석정

 

 

태양을 의논하는 거룩한 이야기는

항상 태양을 등진 곳에서만 비롯하였다.

 

 

달빛이 흡사 비 오듯 쏟아지는 밤에도

우리는 헐어진 성(城)터를 헤미이면서

언제 참으로 그 언제 우리 하늘에

오롯한 태양을 모시겠느냐고

가슴을 쥐어뜯으며 이야기하며 이야기하며

가슴을 쥐어뜯지 않았느냐?

 

그러는 동안에 영영 잃어버린 벗도 있다.

그러는 동안에 멀리 떠나버린 벗도 있다.

그러는 동안에 몸을 팔아버린 벗도 있다.

그러는 동안에 맘을 팔아버린 벗도 있다.

그러는 동안에 드디어 서른여섯 해가 지내갔다.

 

 

다시 우러러보는 이 하늘에

겨울밤 달이 아직도 차거니

오는 봄엔 분수(噴水)처럼 쏟아지는 태양을 안고

그 어느 언덕 꽃덤불에 아늑히 연겨 보리라.

 

(『신문학』 2호, 1946.6)

 

 

[작품해설]

이 시는 식민지 시대의 고통스러웠던 체험을 바탕으로 창작된 자품이다. ‘어둠’과 ‘광명’이라는 대립적 이미지를 주축으로 하여 조국 광복의 기쁨을 노래하고 있다. 조국을 상실한 식민지시대는 ‘태양’이 없는 암흑기였으므로 ‘태양’은 곧 조국의 해방을 상징한다.

1연은 일제 치라에서의 지하 독립 투쟁을 개괄적으로 보여 주는 한편, 2연은 식민지의 어두운 시대를 회상하는 내용이다. ‘달빛이 흡사 비 오듯 쏟아지는 밤’이라도 그것이 밤인 한, 어둠이고 암흑을 수밖에 없기에 ‘우리는 헐어진 성터를 헤미이면서’ ‘가슴을 쥐어뜯으며’ 조국 해방을 갈망하였던 것이다. ‘헐어진 성터’는 국권 상실의 비극을 은유하고 있으며, 반복법으로 국권 회복을 간절히 바라는 심경을 강조하고 있다. 3연은 애국 투사의 죽음과 방랑, 변절과 전향에 대한 안타까운 심정을 반복적 운율로 토로하고 있다. 이와 함께, 그들의 죽음과 방랑에 가슴 아파하는 동시에, 일제에 국복하거나 타협한 이들에 대해선 뜨거운 민족애로 감싸 주려는 시인의 따스람이 느껴진다. 4연에서는 마침내 오랜 고통 끝에 잃어버린 태양을 되찾았지만, 새로운 민족 국가를 아직 수립하지 못한 채, 좌,우익의 이념 갈들으로 인해 ‘겨울밤 달이 아직도 찬’ 혼란스러운 정국이 계속되고 있음을 보여 준다. 마지막 5연에서 시인은 근심스런 시선으로 불안한 시대 상황을 바라보면서, 이러한 혼란과 갈등을 모두 극복한 후 이루어 낼 하나의 조화로운 민족 국가 건설에의 벅찬 기대감을 ‘분수처럼 쏟아지는 태양을 안고 / 꽃덤불에 아늑히 안기는’ 것으로 표현한다. 그 때 우리는 비로소 우리의 태양을 오롯이 되찾는 것이라고 시인은 굳게 믿오 있는 것이다.

신석정은 이 시에서 보듯, 우익 진영에 몸을 담고 있으면서도 당대의 정치적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민족 국가 건설이라는 새로운 민족사적 과제에 부응하는 시를 창작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과거 ‘시문학파’ 시절의 긴장도(緊張度)와 서정성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미덕을 보여 주고 있는 바, 이 외에도 「삼대」 · 「움직이는 네 초상화」 등 다수의 작품이 그러하다.

 

 

[작가소개]

신석정(辛夕汀)

석정(石汀, 釋靜), 석지영(石志永), 사라(砂羅), 호성(胡星), 소적(蘇笛), 서촌(曙村)

 

1970년 전라북도 부안 출생, 보통학교 졸업 후 향리에서 한문 수학

1924년 『조선일보』에 시 「기우는 해」 발표

1931년 『시문학』 3호에 시 「선물」을 발표한 이후 『시문학』동인으로 본격적인 작품

활동 시작.

1972년 문화포장(文化褒章) 수상

1974년 사망

 

시집 : 『촛불』(1939), 『슬픈목가』(1947), 『빙하』(1956), 『산의 서곡』(1967), 『대바람』(19370),

『난초앞에 어둠이 내리면』(19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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