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의 형식상 분류
가. 定型詩
정형시라 함은 전통적으로 시의 구조나 시구, 또는 리듬에 있어서 일정한 형식적 제약을 받는 시를 말한다. 동양
의 정형시는 보통 음수율,음위율,압운(押韻),음성률(음의 고저장단)에 의해 형성된다.
우리의 시어는 자수율에 의해서 지배되는 정형시다. 그 정형성에 따라서는 학자마다 제각기 조금씩 다르나 초장
3.4, 3(4).4, 중장 3.4, 3.4, 종장 3.5, 4.3을 羞가락으로 삼는다. 이런 정형시는 각 나라마다 제 나름대로의 언어
적 특성이나 양식에 따라 고유한 형식을 갖는 것이 특성이다. 일본의 단가(短歌)는 5.7.5.7.7의 5구 31음의 자수
율을 이루고 중국의 시는 절구(絶句),율시(律詩),배율(排律) 등의 제약을 받으며 정형시를 이룬다.
梧桐에 雨滴하니
거문고를 이애는듯
竹葉에 風動하니
楚漢 서로 서두는 듯
金樽에 月光明하니
李白 본 듯 하여라.
-徐敬德
총 자수 45자로 되어 있는 이 시조는 하나의 기본 정형이라 할 수 있다. 서구시에서는 주로 시행 속의 음절수와
시행수에 따라 정형시가 이루어졌다.
특히 서구에서 소네트Sonnet라고 부르는 정형시는 14행으로 압운형식에 의하여구속을 받는다. 소네트란 악기의
반주를 따라 읊는 노래라는 뜻으로 12세기 무렵이탈리아에서 발생하여 단테와 페트라르카에 의해서 완성되고
16세기 초에 서리Surrey에 의해서 영국에 전파되었다. 소네트는 그 형식을 완성한 시인명을 붙여페트라르카 소네
트Petrarchan Sonnet, 셰익스피어 소네트Shakespearian Sonnet,스펜서 소네트Spenserian Sonnet로 나누기도
한다.
이런 정형시는 19세기까지는 자주 씌어져 왔으나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점점 쇠퇴해 갔다. 그 까닭은 형식에 얽매
이게 하는 여러 가지 제약이 시의 내용이나 형식에 많은 구속을 주기 때문이다.
시의 자유로운 표현을 위해서 정형시를 쓰더라도 변형체로 만들어 쓰는 것이보통이다.
나. 自由詩
자유시free verse는 오늘날 우리가 쓰고 있는 모든 현대시의 형태를 말한다. 정형시가 지니는 리듬의 형식을 벗어
난 연상률(聯想律)에 뿌리를 둔 시라 할 수 있다.
자유시의 시원을 그리이스나 로마의 산문예술art prose로 보는 견해도 있으나현대에서는 19세기에 일어난 시의
한 형태로 그 의미를 주고 있다. 19세기의 휘트먼Walt Whitman에서 시작하여, 프랑스의 보들레르 등의 상징주의
시인들에게서 전파되었고, 영국의 홉킨즈의 스프렁 리듬Sprung rhythm을 20세기의 자유시의 효시로 보고 있다.
스프렁 리듬이란 우리 시를 예로 들면 시조의 3.4조 자수율이 3.5조, 4.6조 등으로 변할 수 있는 것을 말한다.
아뭏든 이러한 자유시는 이미지 중심의 시를 쓰는 사람들에 의하여 이룩되었다고 보겠다. 에즈라 파운드E.Pound
의 ‘시인의 개성은 정형시 형식보다는 자유시에서 보다 표현되기 쉽다. 그러므로 시에서의 새로운 운율형식은 새
로운 사상을의미하는 것이다’라는 말을 음미해 보면 오늘날 시에서 여러 가지로 시도되고있는 이미지,패턴,불규
칙적인 리듬 등의 다양성이 왜 필요한가를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의 자유시는 최남선(崔南善)의 신체시 「해(海)에게서 소년(少年)에게」(1908년) 이후로 보고 있
다. 그러나 최근에는 주요한(朱耀翰)의 「불놀이」를 그 형식이나 작품의 문학성으로 보아 자유시의 효시로 삼고
있다. 우리시에서자유시는 김억(金億),홍사용(洪思容),황석우(黃錫禹),박종화(朴鐘和) 등이 점차 그 영역을 확대
함으로써 오늘날에 이르렀다고 하겠다.
자유시의 몇 가지 패턴을 살펴보면 우선 행과 연의 구분을 제멋대로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불을 문
한 가치 성냥에
치마끈 푸는
거푸거푸
치마끈 풀어 던지는
이
丹楓숲.
-金南祚 「빛과 고요」에서
‘이’와 ‘단풍숲’을 끊어서 완전 독립된 한 행으로 하고 있다. 산문에서 사용되지 않는 수법이다. ‘이’라는 지시대명
사를 사용함으로써 ‘단풍숲’이라는반복되어져야 할 색감에 대한 이미지를 더욱 강하게 주고 있다. 또 ‘단풍숲’이라
는 하나의 복합명사가 하나의 행으로 처리되어진 것도 유의할 만하다.
그립다
말을 할까
하니 그리워
그냥 갈까
그래도
다시 더 한번
-金素月 「가는 길」에서
7.5조를 기조로 한 자유시이다. 정형시의 한 형태를 나타내고 있지만 행을 달리함으로 해서 정형시가 갖는 단조
로움을 벗어나고 있다. 자유시라고 하여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라 정형시의 번형으로서도 자유시가 가능함을 보여주고 있다.
그 다음으로는 ‘형식에서 산문적 자유성을 얻고 내용에 있어서 운문적 율조를얻어 이 양자를 조화하는 곳에 자유
시가 위치하는 것’이라는 조지훈(趙芝熏)의설을 들 수 있다.
가을이 되자 동사무소 앞 쓰레기 荷置場에는 애를 밴 거지 부부가 쓰레기 더미를 뒤지는 모습이 보이곤 하였다.
눈에는 잘 띄지 않는 일이지만, 神이 숨겨놓은陽地쪽에는 골라낸 옷가지를 조용히 깁고 있는 부부의 모습이 보
였다. 눈에는 잘띄지 않는 일이지만 햇빛의 은조각을 깔고 앉아.
-조정권 「陽地 쪽」에서
이 시를 읽고 시의 산문체 문장과 소설이나 기타 수필 등에서 사용되고 있는산문체 문장의 다른 점이 무엇인가
를 우리는 생각해 볼 일이다. 같은 사실성의문장이라도 시에서 표현하는 산문은 왜 다른가를 우리는 체득해야 한
다. 사실 정형시는 어떤 일정한 틀이 있어 그곳에 맞추어 언어를 넣으면 하나의 시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자유시에
는 이런 틀이 전혀 없다. 틀이 없다는 것은 새로운 형태의 창조를 의미하고 또한 새로운 리듬의 흐름을 말하는 뜻
이기도 하다.자유시가 정형시보다 쓴 시인은 보들레르라 한다. 그가 1869년에펴낸 『파리의 우울Le spleen de
paris』에 썼다고 한다. 보들레르는 이 시집 서문에서 ‘리듬이나 운이 없어도 마음속의 서정의 움직임이나 몽상의
물결, 의식의 비약에 순응할 수 있는 유연하고 강직하고 시적인 산문’이 산문시라고 밝히고 있다.
산문시란 말 그대로 산문의 형태로 된 시이다. 산문이라 하면 두 가지 개념을지니고 있다. 하나는 창조적 문학
(시)과 비창조적 문학(산문)으로서의 산문이요,두번째는 운문이나 율문에 반대되는 개념으로서의 산문이다.
모울톤R.G.Moulton은 운문과 산문의 차이를 이렇게 말하고 있다.
운문은 행으로 구분되어 그 행은 유사한 행들끼리 비슷한 각운이 찍힌다고 하는 원칙에 따라 순환하는 율동을 보여
준다. 산문은 이것과 달리 ‘일직(一直)’의 어원적 의미를 갖고 있다. 글의 일직한 서식 속에는 율동에 대한 그
무엇을지시하려는 분단(分段)은 없다.
이처럼 산문의 정의가 내려진다면 산문시는 정형시처럼 외형적 운율이 없고,자유시처럼 다양한 리듬의 변화나
행, 또는 연의 구분이 분명치 않으면서도 산문체로서 서정적인 내용을 가진 것을 말한다.
싯뻘겋게 타오르는 體內에 하얀 細菌들이 不可解한 腦를 饗宴하고 있다. 呻吟과 苦痛과 뜨거운 呼吸으로 自我의
始初이었던 하늘까지가 咀呪에 歸結되고 그結火의 生命에서 이즈러지는 눈
-金丘庸 「腦炎」에서
초현실주의 시라고 할 수 있는 이 시는 지극히 건조한 산문성을 띠고 있다. 하지만 산문으로 표현됨에 따라
이나 연을 구분하는 자유시보다 의식의 연속 활동을 뚜렷하게 볼 수 있다. 산문시가 갖는 특성의 하나는 단절감
이 아닌 이러한연속성이라 하겠다. 전체로서 파악되는 긴장감과 긴밀성이다.
내팔이면도칼을든채끊어졌다. 자세히보면무엇에몹시위협당하는것처럼새파랗다.이렇게하여잃어버린내두개팔을
나는燭臺세움으로내방안에裝飾하여놓았다. 팔은죽어서도오히려나에게겁을내이는것만같다.나는이런얇다란禮儀
를花盆草보다도사랑스럽다.
-이상 「시 제십삼호」에서
띄어쓰기를 전혀 무시한 산문시의 하나다. 산문시에는 이런 형태도 자주 쓰인다. 띄어쓰기를 무시한다는 것은
인간의 의식세계나 심리를 나타내는 한 극단의효과를 노리고자 하는 데 있다고 하겠다. 이 시는 산문으로 구사되
었을 뿐만 아니라 띄어쓰기조차 무시함으로 해서, 다시 말하면 극도의 비시적(非詩的)인 형태로 가장 시적인 효과
를 노리고자 하는 데서 씌어지지 않았나 싶다.
인간의 해체를 내보인 이 시에서 오늘날 우리는 인간성의 상실 같은 것을 전율이 느끼도록 볼 수 있다.
新婦는 초록 저고리 다홍치마로 겨우 귀밑머리만 풀리운 채 新郞하고, 첫날밤을 아직 앉아 있었는데 新郞이 그만
오줌이 급해서 냉큼 일어나 달려가는 바람에옷자락이 문 돌쩌귀에 걸렸습니다. 그것을 新郞은 생각이 또 급해서 제
新婦가음탕해서 그 새를 못 참아서 뒤에서 손으로 잡아다니는 거라고 그렇게만 알고 뒤도 안 돌아보고 나가
버렸습니다. 문 돌쩌귀에 옷자락이 찢어진 채로 오줌 누곤못쓰겠다며 달아나 버렸습니다.
그리고 나서 四十年인가 五十年이 지나간 뒤에 뜻밖에 딴 볼일이 생겨 이 新婦네 집 옆을 지나다가 그래도 잠시
궁금해서 新婦방 문을 열고 들여다보니 新婦는귀밑머리만 풀린 첫날밤 모양 그대로 초록 저고리 다홍치마로 아직도
고스란히앉아 있었습니다. 안스러운 생각이 들어 그 어깨를 가서 어루만지니 그때서야 매운 재가 되어 폭삭 내려
앉아 버렸습니다. 초록재와 다홍재로 내려앉아 버렸습니다.
-徐廷株 「新婦」에서
이 작품은 산문이라고도 할 수 있고 산문시라고 해도 된다. 어떤 면에서는 그러한 규범 자체를 다 떠나서 하나의
작품으로 완성을 의도하고 씌어진 것인지도모른다. 어떻든 이 시에 나타나 있는 리드미칼한 언어의 흐름을 유의
해 볼 만하다.
산문시도 그 창작에 따라 여러 가지로 나타날 수 있다. 이러한 산문시란 자유시가 가지는 형식에서 어떤 부족감을
느낀 나머지 생긴 형태라고 하겠다.
우리나라에 소개된 산문시는 투르게네프의 「비렁뱅이의 노래」를 김억이 번역하여 『태서문예신보(泰西文藝新
報)』에 실은 것이 최초라 한다. 그 후 산문시 형태의 시를 즐겨 써 온 시인들로는 한용운(韓龍雲),이상(李箱),김
구용(金丘庸,서정주(徐廷柱) 등이 있고 근래에는 정진규(鄭鎭圭),박제천(朴堤千)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