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자꽃이 피었습니다.
봄철 여러 작물 중에서 가장 먼저 땅에 내려앉는 것은 감자입니다.
감자는 씨를 뿌리는 것도, 모종을 내는 것도 아닙니다. 그저 눈이 튼 씨감자를 조각내어 묵묵히 땅에 묻어둘 뿐입니다.
밭을 일구다 보니 문득 권태응(權泰應, 1912~1951) 시인의 <감자꽃>이라는 시가 마음속에 피어납니다.
짧고 단순한 언어 속에 깊은 진리와 민족의 아픔, 그리고 삶을 꿰뚫어 보는 혜안이 담겨 있는 명작이지요.
"자주 꽃 핀 건 / 자주 감자 / 파 보나 마나 / 자주 감자
하얀 꽃 핀 건 / 하얀 감자 / 파 보나 마나 / 하얀 감자"
문득 작년에 수확해 보관해 둔 감자들이 떠오릅니다. 흙도 없고 물도 없는 척박한 창고 바닥에서도, 감자는 제 몸집만 한 순을 스스로 틔워냅니다. 땅에 심지도 않았는데 저절로 순이 난다는 것은 참으로 경이로운 일입니다.
외부의 환경이 아무리 척박할지라도, 내면에 생명의 힘과 소망을 품고 있다면 언제든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자연의 묵직한 가르침처럼 다가옵니다.
이러한 감자의 씨눈처럼, 사람의 몸 안에도 스스로를 치유하고 회복하는 '자아 회복력'이 내재해 있습니다.
다만 더 온전하고 빠른 치유를 위해 병원을 찾고 전문의의 도움을 받는 것이 현대인의 일상이 되었을 뿐이지요.
더 나아가 이 감자꽃 시는 성경 속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라는 말씀을 떠올리게 합니다.
사람의 중심에 무엇이 들어있는지는 결국 그가 맺는 말과 행동, 즉 '꽃'과 '열매'를 통해 세상에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마음속에 사랑과 선(善)을 품은 사람은 삶에서 아름다운 꽃을 피우고, 아무리 숨기려 해도 그 선한 영향력이라는 알찬 감자가 땅속에서 드러나게 됩니다.
인간 존재에 대한 깊은성찰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어느덧 올해 첫 수확이자, 하지(夏至) 감자 추수를 코앞에 두고 있습니다. 밭의 모든 작물과 감자를 통해 오늘도 삶의 거룩한 지혜를 배웁니다.
척박함을 뚫고 나오는 감자의 씨눈처럼, 우리의 영혼도 영적으로 한 뼘 더 자라나는 복된 한 날이 되기를 소망해 봅니다.
호정골에서
정종병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