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일시; 2026. 6. 14.(일)
ㅇ날씨; 흐림(오후 소나기)
ㅇ홀로 탐방.
2. 교통
ㅇ갈 때
*북한산우이역; 우이 신설선 경 전철 이용.
ㅇ올 때
*초안산 근린공원 창북중교 입구 4거리 버스정류장에서 그린라인 1127번 시내버스 이용 귀가.
3. 진행경과
ㅇ최근 도봉구청이 2022년부터 추진중인 도봉 둘레길2.0(21.3km) 순환형 산책로가 거의 완공단계라는
기사를 보고, 금일 방학동 연산군묘에서 창동 초안산근린공원까지 편안한 숲길과 잠시 도봉로를 지나는
길을 걸었습니다.
ㅇ정의여고 뒷길부터 시내구간은 코스를 임의 변형해 편하게 진행 하였습니다.
물론, 오늘 진행한 코스는 평소 산책로로 우이천과 더불어 몇 차례 오가던 길입니다.
ㅇ오늘 일기예보가 늦은 오후에 소나기가 내린다하여, 느긋하게 진행하였는데 예보 보다 3시간여
이른 오후 2시 조금지나 빗방울이 드리기 시작하여 창동역에서의 마무리 계획을 변경, 초안산
근린공원 입구에서 마무리를...........
ㅇ진행코스
*북한산우이역-서울둘레길21코스입구-갈림길 2곳-연산군묘역-은행나무보호수-원당샘공원-원당한옥
마을도서관-서울도봉 라온풋살장-갈림길 3곳-숲길-북한산 전망쉼터-해등로 생태육교-숲길-꽃동네책
숲 쉼터-어린이놀이 시설-하늘유아숲 체험장-쌍문그린공원(다리)-둘리유아숲 체험장-정의여고뒷길-
배드민턴장-쌍문역갈림길-창경초교-희락장로교회-감포숯불갈비-도봉구민회관 맞은편(도봉로)-정의
여중고입구4거리-쌍문역-KT 도봉지점-창북중교 입구 4거리-초안산 근린공원 입구.
ㅇ탐방거리
*Gps측정거리 8.3km.(아래 개념도 참조)
4. 도봉 둘레길 2.0
ㅇ도봉 둘레길 2.0은 도봉구의 외곽을 걸으며 풍요한 자연환경과 생태를 느끼는 순환산책로 입니다.
ㅇ총거리; 21.3km.
ㅇ구간 구성;
*중랑천 제방길; 5.5km. 창포원-창동 주공 17단지.
맨발길;1.7km. 항톳길; 600m. 수변 테라스, 카페등 조성.
*초안산 구간; 2.16km. 창 3동 어린이집-초안산. 무장애 데크 로드와 조명시설.
하늘곷정원, 창골 축구장. 세대공감 공원등이 조성됨
*둘리(쌍문)공원 구간; 꽃동네 책쉼터에서 어린이놀이터.
둘리 유아숲 체험원, 목재 바닥 무장애 데크로드 설치, 야간조명 휴게정원 등.
*무수골 생태치유 구간; 무수골에 녹색복지센터, 명상의 숲 건립으로 산림치유 공간 마련.
*서울둘레길 21코스와 연계; 북한산 우이역에서 도봉산역까지 7.3km 구간은 기존 서울둘레길과
같이 가는길.
*2027년 완공 예정인 창동소재 2만석 규모 "K팝 공연장"인 "서울 아데나" 주변 470m 연결구간은
서울시에서 공사를 진행중에 있슴.
*燕山君
1)가계및 인적사항
1476년(성종 7년) 11월 7일 성종과 중전 윤씨의 적장자로 태어났다. 본관은 전주(全州)이고, 이름은 이융(李㦕)이다.
성종의 맏아들로 왕위를 계승하였다.
모후는 판봉상시사(判奉常寺事) 윤기견(尹起畎)의 딸인 폐비 윤씨(본관 함안)이다.
1483년(성종 14년) 2월 7세 때 세자로 책봉되었으며, 1488년(성종 19년) 2월 신승선(愼承善, 본관 거창)의 딸과
가례를 올렸다.
1494년(성종 25년) 12월 성종이 붕어하자 그뒤를 이어 18세의 나이로 즉위하였다.
세자로 책봉되기 전인 1482년 8월 모후 윤씨가 성종에게 사사(賜死)되었는데, 즉위한 직후인 1495년 3월(연산군
1년) 그런 사실을 알게 되었다.
2)연산군의 주요 활동 사항
연산군이 즉위하였을 무렵 형성된 중앙 정치의 중요한 변화는 삼사가 중요한 관서로 떠올랐다는 것이었다.
그런 현상은 성종 중반부터 나타났다.
성종은 세조 때부터 공신과 주요 관직을 독점하면서 강력한 세력으로 자리 잡은 훈구 대신들을 견제하기
위해 삼사를 지원하였다.
그런 후원에 힘입어 삼사는 탄핵과 간쟁을 활발히 수행하였고, 그 결과 성종 후반 삼사의 영향력은 대신을
압박할 정도로 커졌다.
국왕에 대한 간쟁이 삼사의 중요한 임무라는 것을 고려하면, 삼사가 왕권도 제약한 것은 자연스런 결과였다.
연산군은 성종 후반 조성된 이런 정치 상황을 매우 불만스럽게 생각하였다.
그의 궁극적 목표는 전제적 왕권의 구축과 행사였다. 그는 그런 목표에 저해되는 모든 발언과 행동을 ‘능상
(凌上)’으로 규정하고 탄압하였다.
그 결과는 두 차례의 사화와 수많은 폭정, 그리고 강제적 폐위였다.
즉위한 직후부터 연산군은 수륙재(水陸齋)의 설행, 폐모의 추숭 등 많은 사안에서 삼사와 충돌하였다.
그동안 삼사의 탄핵에 위축된 대신들은 국왕을 옹호하였다. 이를테면 영의정 노사신(盧思愼)은 대간의 간언을
거부한 연산군의 행동을 "영주(英主)의 위엄 있는 결단"이라고 칭송하였다.
삼사는 대신을 격렬히 비판하였다.
"노사신의 고기를 먹고 싶다"는 사간원 정언(정6품) 조순(趙舜)의 발언은 극단적 사례였다.
ㅇ무오사화
첫 번째 사화인 무오사화는 이처럼 국왕 · 대신과 삼사의 갈등이 고조되던 상황에서 일어났다.
사화는 1498년(연산군 4) 7월 11일 김일손(金馹孫)의 사초에 세조를 비판한 내용이 들어 있다는 사실이 적발
되면서 시작되었다.
나흘 뒤 유자광은 김종직의 「조의제문(弔義帝文)」이 세조에 대한 역심(逆心)을 담은 글이라고 고발하였다.
사건은 김종직과 그의 제자인 김일손 등이 세조에게 역심을 품고 불온한 문서를 작성한 음모로 규정되었고,
7월 27일 김종직을 부관참시하고 김일손 등을 처형하는 등 모두 52명을 처벌하면서 마무리되었다.
무오사화 이후 삼사가 위축되고 왕권이 강화된 것은 자연스런 결과였다.
그러나 연산군은 강화된 왕권을 국정 개혁 같은 긍정적이고 본질적인 문제가 아니라 연회 · 음행 · 사치 · 사냥 ·
민가 철거 같은 부정적이고 지엽적인 사안에 소비하기 시작하였다.
국왕의 부정적인 행태가 확대되자 기존의 삼사뿐 아니라 대신들도 간언을 올리게 되었다.
이를테면, 1502년(연산군 8년) 3월 삼정승 한치형 · 성준 · 이극균은 시폐(時弊) 10조를 올려 당시의 현안과
국왕의 문제점을 지적하였다.
ㅇ갑자사화
두 번째 사화인 갑자사화는 국왕이 점차 극단적인 폭정으로 치닫고, 대신과 삼사가 간헐적으로나마 간언을
제기하던 상황에서 일어났다.
발단의 직접적 계기는 모두 '능상'과 관련된 것이었다.
1503년(연산군 9년) 9월 인정전에서 열린 양로연에서 예조판서 이세좌가 하사 받은 술을 엎질러 국왕의
옷을 적셨고, 이듬해 3월 경기도 관찰사 홍귀달이 손녀를 입궁시키라는 명령에 따르지 않았다.
무차별적 숙청이 확산되는 데 결정적 원인으로 작용한 폐모 문제는 신하들이 선왕의 잘못된 행동을 막지
않아 현재의 국왕에게 엄청난 슬픔을 안겨준 대표적 '능상'으로 규정되었다.
갑자사화는 여러 측면에서 무오사화와 달랐다.
우선 모두 239명이라는 많은 인원이 피화되었고, 사형이 절반을 넘었다.
곧 그것은 전면적이며 가혹한 숙청이었다.
외형적으로는 대신보다 삼사가 많이 처벌되었지만, 영의정을 지낸 한명회 · 정창손 · 윤필상 · 성준 · 한치형
과 좌의정을 지낸 이극균 · 어세겸 등 주요 대신이 사형이나 부관참시를 당해 대신의 피해도 컸다.
갑자사화 이후 중종반정으로 폐위되기까지 2년 반 동안 연산군의 폭정과 황음은 더욱 격화되었다.
사간원과 경연을 포함한 여러 관서와 제도를 폐지하였으며, 사냥을 위해 민가를 철거하고, 금표를 도성에서
사방 100리까지 확대하였다.
기녀인 흥청(興淸) 300명, 운평(運平) 1,000명을 선발해 연회와 음행을 즐겼다
ㅇ중종반정.
1506년(연산군 12) 9월 2일 반정이 일어난 것은 자연스런 결과였다.
반정은 하룻밤 만에 성공하였고, 연산군은 즉시 폐위돼 강화도 교동에 안치되었다.
9월 24일 폐세자 이황 등 4남도 사사되었다.
연산군은 11월 6일 역질로 죽었는데, 일단 교동에 안장되었다가 1512년(중종 7) 폐비 신씨의 주청에
따라 경기도 양주 해촌(海村)으로 이장되었다.
부인 신씨는 1537년(중종 32) 죽어서 같은 곳에 안장되었다.
*연산군 묘
*서울 방학동 은행나무
*원당샘
*도봉 둘레길2.0 개념도
*쌍문동 유래
*둘리 유아숲 체험원
5. 풍광사진
1)북한산 우이역-연산군 묘역 구간의 풍광
▲북한산 우이역 1번 출구
▲방학로 생태통로; 시루봉 능선 연결
▲나팔꽃
▲이상, 연산군 묘소 방향 오름 계단 길
▲연산군 묘 입구 계단; 좌측 아래 방향에 재실이 있다.
▲묘소 앞줄 연산군 사위(좌)와 딸(우), 가운데 의정 궁주묘(태종후궁), 뒤 좌 연산군 묘, 우 거창군부인 신씨묘.
▲연산군(좌) 과 거창 군부인 신씨(우)
2)원당샘 공원 모습
▲은행나무 보호수
▲원당샘; 현재도 음용 가 샘물.
▲이상, 원당샘공원 연못의 연꽃과 정자 모습
▲원당마을 한옥도서관
▲원당샘 공원 솔숲
3)시루봉(121.3m)능선 숲길-세심천 갈림길(연산군 묘 뒷 능선길) 구간의 풍광
▲이상, 한적한 숲길 모습; 동남 방향의 초안산 근린공원 방향 길
▲북한산 전망 쉼터; 백운대는 나무 잎에 가려 안 보인다. 만경대와 인수봉 만이...........
▲전망대 쉼터
▲해등로 생태교 위에서 멀리 수락산 방향 조망
▲이상, 생태통로의 나리꽃등 생태 모습
▲생태통로를 지나면 정비된 데크 로드가 시작 된다.
▲갈림길 숲길 모습
4)꽃동네 책 쉼터-시루봉로 구간의 풍광
▲곷동네 책 쉼터; 오늘은 휴무일 이다.
▲어린이 놀이 시설
▲4각정자 쉼터
▲이상, 말끔하게 정비된 데크 로드 구간
▲이상, 데크 로드 쉼터에서 본 주변 풍경
▲산스장도 요소마다 설치 되어있다.
▲이상, 데크 로드와 쉼터
▲나리꽃
▲하늘 유아숲 체험장
▲이상, 기존 산책길 목교와 무장애 데크 로드 마무리 부근 모습
5)쌍문공원교-초안산 근린공원 구간의 모습
▲쌍문공원교; 홍살문이.......쌍문동 유래와 연관이 있는 듯.
▲쌍문공원교 위(시루봉로)에서 북한산과 영봉능선 조망
▲원형 황토 맨발 길
▲둘리 유아숲 체험장
▲정의 여중,고교 뒤 숲길
▲대우 파크빌(A) 부근의 마무리 숲길
▲초안산 근린공원 입구
▲창북중교 입구 4거리; 오늘 걷기의 마무리 "초안산 근린공원" 입구.
6)트랭글 궤적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