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에 의한 삶

작성자포도나무|작성시간26.06.05|조회수9 목록 댓글 0

요한복음 1416- 21

예수님은 부활하시고 승천하시며 제자들에게 나아가서 온세상에 복음을 전하라고 하시지 않으십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하나님아버지의 약속하신 성령이 임하시기까지 기다리라고 하십니다. 바로 하나님의 일은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서 위대한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먼저 행하시며 보이시는 그 일에 참예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의 일에 동참하려면 우리는 성령안에 거해야 하고 성령의 지시하심을 따라야 합니다. 사도바울도 소아시아로 복음을 전하러 가길 원했지만 드로아에서 성령님의 지시하심이 없어서 잠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밤에 환상을 보는데 바로 마게도니아사람의 복장을 한 사람이 건너와서 도와 달라고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자 그 환상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인지 분별합니다. 그래서 주의 명령인 것을 알았을 때 바다를 건너 유럽으로 가는 것입니다. 이처럼 사도행전은 철저하게 성령님이 주도권을 잡으시고 행하시는 복음전도라 일명 성령행전이라고도 합니다. 그만큼 성령님이 함께 하시고 인도하시는 것이 너무나 중요하기 때문에 예수님은 성령님이 임하시기까지 기다리라고 하십니다.

성령님은 믿는 자들 마음을 성전삼고 임마누엘하십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실 때 주신 약속의 말씀 즉 세상끝날까지 제자들과 함께 하시겠다고 하신 약속이 성령으로 이루어 지는 것입니다. 바로 아버지의 영이시며 주의 영이신 성령님이 예수님이 다시오시는 그 때까지 우리안에 거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제자들은 하나님을 아는 자들입니다. 안다라고 하는 말은 인격적인 관계를 말합니다. 우리가 주를 알 듯이 주님도 우리를 아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성령으로 이루어 집니다. 그러나 믿지 않는 이 세상은 성령을 알지 못합니다. 성령은 영이시라 사람이 보고 만지고 할 수 있는 그런 대상이 아닙니다. 오직 주의 영이 거하시는 자들만이 주의 영을 압니다. 하지만 성령을 근심되게 하거나 완악함으로 성령을 대적하면 성령의 임재가 걷히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보고 느끼고 그리고 생각하는 모든 것이 성령님을 거역하는 것이 되지 않도록 늘 성령님께 예민해야 합니다. 성령님을 비둘기에 비유하는데 우리가 공원에서 보는 그런 비둘기를 말하지 않습니다. 공원에서 보는 비둘기는 욕심이 많고 감각이 둔합니다. 바로 산비둘기를 예로 듭니다. 산비둘기는 예민함이 특징입니다. 성령님은 우리안에서 예민하신 분이십니다. 성령을 거슬려 행하여서는 안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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