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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녕성씨 (昌寧成氏) 유래

작성자운영자-성진경|작성시간13.07.16|조회수624 목록 댓글 0

 

창녕성씨 (昌寧成氏) 유래

성(成)씨는 원래 중국 성(姓)씨로 주나라 문왕의 일곱째 아들의 후손이라고 한다. 그 자손이 나라 이름인 성(成에 읍변이 붙은 것)을 성씨로 삼았으나 초나라 에게 나라가 망하자 읍변을 떼어버리고 成씨라고 하였다.

그후 당나라 때에 학사 성경이가 우리나라로 건너왔고 백제에는 성충, 신라에는 성저라는 사람이 있었으나 우리나라의 성씨와 어떤 연관이 있는지 고증 할수 없다.

우리 성(成)씨의 본관 즉 관향은 창녕(昌寧)이다. 관향의 유래를보면 성(姓)이 없던 시기에는 그사람 의 출신지를 이름앞에 넣어 신분의 표시로서 성(姓) 의 구실을 했었다.

시조 성인보의 아버지는 성숙생으로 신라 대관성저의 후예라고 한다. 성인보는 창녕에서 대대로 살아온 선비이며 창녕 에서 호장윤을 지냈다.
삼국 말기에는 호걸이 각주군에 할거하고 있어 고려 태조는 관원을 파견하여 이를 다스리게 하였 는데 당시 장민자를 호장이라 하고 장병자는 장교라고 하였다 한다.
그 후손들도 창녕에 정착세거 함으로서 창녕을 본관으로 삼았다.

묘소는 창녕군 대지면 맥산에 있고 향사일은 음력 10월 1일이다.

 

 

 

 

창녕성씨와 창녕 조씨의 창씨(創氏) 유래;

 

1.성씨成氏): 周 文王第七子 郕叔武之後 子孫 因以國爲氏後爲楚所滅 子孫去邑 爲成氏.

                  昌寧成氏 始祖 仁輔, 戶長 中尹.

 

2.조씨(曹氏): 周 文王第十二子 振鐸 封於 曹(國). 其後世仍以國爲氏.

                  昌寧曹氏 始祖 繼龍. 脅下有曹字故仍姓 曹氏及長 爲眞平王女婿 封昌寧府院君.

 

1) 성씨: 옛 주나라 문왕의 일곱째 아들 성숙무의 자손이 성(郕)나라로 써 성씨(姓氏)를 삼었는데,

            뒤에 초(楚)나라로 바뀌면서 나라가 망하게 되자, 자손이 고을 읍(邑)자 즉,

            우부방변을 버리고 이룰 성(成)자로 하였다.

            창녕성씨 시조는 인보(仁輔)이며,호장과 중윤에 이르렀다.

 

2) 조씨: 주 나라 문왕의 열둘 째 아들 진탁에게 조(曹)나라로 봉하였는 데,

             그 뒤에 후손이 조(曹)나라의 이름으로 써 성씨(姓氏)를삼았다.

             창녕조씨 시조는 계룡(繼龍)으로, 신라 진평왕 때, 측근에 성씨(姓氏) 로

             조(曹)자를 가진 사람이 있었는데,조씨가 장에 이르니, 진평왕의 사위로 써

             창녕부원군(昌寧府院君)에 봉하게 되어 창녕을 본관으로 하였다.

              참고;창녕조씨의 조(曹)자는 나라조(曹)자로 표기하는 것이 옳다는 것으로

                     曺(성조)자는 원 뜻이 아니라는 것을 알립니다.

 

 □ 성씨(姓氏)의 유래(由來) □ [만성시조편(萬姓始祖編)]

                 http://www.optima.pe.kr/intro.php(죽암 선생님 홈페이지)

                 창녕성씨 시조에 대한 설명이 부족한 듯해서 조금 더 찾아봤습니다.

                 성(成)씨는 원래 중국 성(姓)씨로 주나라 문왕의 일곱째 아들의 후손이라고 한다.

                 그 자손이 나라 이름인 성(成에 읍변이 붙은 것)을 성씨로 삼았으나 초나라 에게

                 나라가 망하자 읍변을 떼어버리고 成씨라고 하였다.

                 그후 당나라 때에 학사 성경이가 우리나라로 건너왔고 백제에는 성충,

                 신라에는 성저라는 사람이 있었으나 우리나라의 성씨와 어떤 연관이 있는지

                고증 할수 없다.

             우리 성(成)씨의 본관 즉 관향은 창녕(昌寧)이다.

            관향의 유래를보면 성(姓)이 없던 시기에는 그사람 의 출신지를 이름앞에 넣어 신분의 표시로

            서 성(姓) 의 구실을 했었다.

            시조 성인보의 아버지는 성숙생으로 신라 대관성저의 후예라고 한다.

            성인보는 창녕에서 대대로 살아온 선비이며 창녕 에서 호장윤을 지냈다.

            삼국 말기에는 호걸이 각주군에 할거하고 있어 고려 태조는 관원을 파견하여

            이를 다스리게 하였 는데 당시 장민자를 호장이라 하고 장병자는 장교라고 하였다 한다.

            그 후손들도 창녕에 정착세거 함으로서 창녕을 본관으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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