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주김씨계보[羅州金氏系譜] 자료조사[資料調査]를 하면서
조사자인 나주김씨(羅州金氏) 광진[34세손]이 조사한 바에 의하면, [한국성씨보감] 한국민족문화진흥원 간(1995. 2. 23) 1질 총3권(상,중,하권)에서 상권 369면에서
1. 경주김씨(慶州金氏)편에 김씨의 유래를 살펴보면,
[유래]
우리나라김씨는 김해김씨(金海金氏)를 제외하면 모두 김알지(金閼智)의 후예이며 김주원(金周元)의 후손인 강능김씨(江陵金氏)처럼 신라 김씨왕계(金氏王系)가 내려오면서 분관조(分貫祖)로 하는 김시성도 있으나 대개는 신라 마지막 왕인 경순왕(敬順王)의 아들로서 세계(世系)가 시작 되었다. 경순왕은 아홉 아들을 두었는데 서열별로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아들 김일(金鎰 : 麻衣太子)-入山
둘째 아들 김황(金鍠)- 羅州金氏 始祖 * 鼻祖인데 始祖로 오기된 것임
셋째 아들 김명종(金鳴鐘)-慶州金氏 永芬公派
넷째 아들 김은열(金殷說)-慶州金氏 殷說公派
다섯째 아들 김석(金錫)- 義城金氏 始祖
여섯째 아들 김건(金鍵)- 江陵金氏
일곱째 아들 김선(金鐥)- 彦陽金氏
여덟째 아들 김추(金錘)- 三陟金氏
아홉째 아들 김덕지(金德摯)- 蔚山金氏 등으로 각각 일세조가 되었다.
[이하 생략]
2. 나주김씨(羅州金氏) [한국성씨보감] 478면에서의 유래를 살펴보면,
[유래]
신라 경순왕(敬順王)의 둘째 아들인 김굉(金鍠)은 나라가 망하자 해인사(海印寺)에 들어가 승려가 되었는데 임산하기 전에 두 아들을 두었다.
나주김씨(羅州金氏)의 시조인 김운발(김운발)은 그의 아들이다. 따라서 선대(先代)는 대보공(大輔公) 김알지(金閼智)로 신라김씨(경주)에서 시원(始原) 한다.
그는 고려 때 문하시중(門下侍中)을 지냈으며 나주군(羅州君)에 봉해졌다.
[이하생략}
3. 울산김씨(蔚山金氏)[한국성씨보감] 675면에서의 유래를 살펴보면,
[閥歷]
<정사보(丁巳譜)>의 기록에 의하면 신라말(新羅末) 왕자(王子)인 학성부원군(鶴城府院君) 김덕지(金德摯)가 학성(鶴城)을 관향(貫鄕)으로 받음으로 하여 그때부터 시조가 되었다고 한다.
그는 형인 김일(金鎰 : 麻衣太子)과 함께 신라의 고려 귀부(歸附)를 반대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자 개골산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학성(鶴城)은 곧 울산이며 시조는 대보공(大輔公) 김알지의 28세손인 경순왕(敬順王: 金傳)의 아홉째 아들이다.
그러나 시조이후 13대까지의 세계(世系)는 실전되어 14세손 김환(金環)이후부터 소목(紹穆)이 밝혀지고 있다.
[이하생략]
4. [한국성씨보감]을 발간하기 위한 각 종친회 원고감수자 명단으로서 편집위원을 살펴보면,
1) 울산 김씨는 김성수(金性洙)[직위: 임원]가 참여 함. 아마도 이 분은 울산김씨 대종회장을 지내신 분으로 알고 있다. [한국성씨보감 21면]
2) 나주김씨는 김인형(金仁衡)[직위: 총무]이 참여 함.[한국성씨보감 21면]
3) 경주김씨는 김학열(김학열)[직위: 임원]이 참여함.[한국성씨보감 21면]
4) 금녕김씨는 김성진(金成鎭)[직위: 사무국장]이 참여함.[한국성씨보감 21면]
5. 조사자 의견
1) 역사를 왜곡해서는 아니 된다고 생각한다.
**(나는 어린 시절에 아버님이 종친회일도 잘 돌보시면서 경주김씨인 형님 친구들이 우리집에 놀러오면 경주김씨는 우리 집안의 동생집안이라는 것을 고집하셔서 믿기지 않았으나 1972년도에 소방서에 근무하면서[한국인의족보]라는 책자를 월부로 25,000원에 구입하여 성씨별로 조사를 하다 보니, 지난날에 아버님이 주장하시던 말씀이 기억에 살아나고, 역사를 알게 된 것이다.)
2) 조상이나 시조에 대하여 잘 모른다면 역사학자를 찾아가서라도 옛 문헌을 살펴보기 바라는 마음이다.
3) 울산김씨 종친회 대변인[울산김씨 홈 관리자: 김강]이 주장하는 학성군은 분명히 울산지방이 맞다. 그러나 울산 광역시교육청을 통하여 울산광역시에 문의하여 조사한 자료에 의하면 학성군은 지방을 분배 해준 직함이 아니고, 별호[고려 제6대 성종 14년]라고 울산군 관계자가 말하는 것으로 보아 그 당시 연대는 995년인 것이 분명하다.
4) 나주김씨 비조이신 김황 신라마지막 왕자는 경순왕이 고려에 귀부한 해는 935년인 것이다. 연대별 차이가 너무 많이 벌어지는 것으로 보아도 분명 역사를 왜곡한다는 사실이 드러난 셈이다.
5) 울산김씨종친회에서 신라 마지막 왕자이신 김 황(金 鍠-굉)[羅州金氏 鼻祖]이 김덕지(金德摯)[蔚山金氏 始祖]와 동일한 인물이라는 것을 역사 기록으로 밝혀 주시기를 바란다.
6) 우리 나주김씨중앙종친회에서는 울산김씨종친회에서 홈페이지에 주장하는 시조가 우리 나주김씨를 창시 해준 시조의 아버님이라는 비조를 밝히기 위하여 역사기록을 찾아서 나선 것이 막연히 신라마지막 왕자로서 부왕의 고려 귀부에 반대하여 해인사에 들어갔다는 것을 더욱 자세히 알기위하여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기록을 찾아서 법수사지삼층석탑[法水寺址三層石塔)[경상북도유형문화재 제86호. 경북 성주군 수륜면 백운리 1214번지]을 찾아서 문화재 보존 기록을 발취하고 우리 종친회 주간으로 다례회도 거행한 바가 있다.
7) 울산김씨 측에서 신라김씨연합대종원에 항의하여 경순왕의 9왕자를 8왕자라고 주장하면서 아홉번째 왕자인 김덕지 학성군을 삭제를 요구하여 8왕자라고 주장하는 것은 자기 조상을 버리는 일이라 생각하고, 신라김씨 대 종원은 역사를 왜곡하는데 동참하는 격이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출처] 나주김씨계보[羅州金氏系譜] 자료조사[資料調査]를 하면서|작성자 제주몽생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