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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김씨(羅州金氏)-씨족의 연원

작성자운영자-성진경|작성시간13.07.16|조회수828 목록 댓글 0

 

 

나주김씨(羅州金氏)

 

 

氏族의 연원
시조는 김운발(金雲發). 고려조에 벼슬이 문하시중(門下侍中)에 이르고 나주군(羅州君)에 봉해졌다. 자손들이 나주(羅州)를 관향(貫鄕)으로 삼게 된 연유가 여기에 있다.
‘기미보(己未譜)’ 서문에 보면, 그는 신라 경순왕의 둘째 아들 김횡(金鐄)의 큰 아들이다.
경순왕이 나라를 고려에 넘기자, 태자(太子) 김일(金鎰)은 개골산(皆骨山)에 들어갔고, 둘재 아들 김횡(金鐄)은 해인사(海印寺)에 들어가 승려가 되어, 고려조에서 평장사(平章事)를 제수하였으나 받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입사(入仕)하기 전에 두 아들을 두었다. 김운발(金雲發)은 큰 아들이다. 경순왕이 나주군(羅州君)에 봉함으로써 나주김씨(羅州金氏)의 시조가 되었다고 ‘기미보(己未譜)’ 서문에 나와 있다.

 

 

 

 

본관지 연혁
나주(羅州)는 본래 백제의 발라군(發羅郡)인데, 신라 경덕왕 때 금산군(錦山郡)으로 고쳤다.
견훤이 이 지방을 중심으로 후백제를 세웠으나 궁예가 빼앗아 나주(羅州)로 고쳤다.
고려조 성종 14년에 진해군(鎭海軍)이라 불러 해양도(海陽道)에 소속시켰으며 현종 9년에는 목(牧)으로 승격되었다.
조선 세조 때 진(鎭)을 두었으며 1894년 갑오경장(甲午更張) 때는 나주부(羅州府)로 되었다가 다음 해에 부(府)가 폐지되자 1군(郡)으로 전라남도에 속하게 되었다.
주요 성씨로 김(金)ㆍ나(羅)ㆍ오(吳)ㆍ정(鄭)ㆍ진(陳)ㆍ박(朴)ㆍ남(南)씨 등이 있었다.

 

 

 

주요 세거지
김운발(金雲發)의 10대손인 김완벽(金完璧)의 자손들은 21세 김시익(金時翼)의 후계(後系)가 25세 김석(金碩) 이래로 전북 옥구(沃溝)에, 20세 김해봉(金海奉)의 후계(後系)가 함북 경흥(慶興)을 거쳐 회령(會寧)에 세천지(世阡地)를 두고 있으므로 여러대 동안 이들 지역에 살았던 것 같다.
대체로 11세 김극순(金克淳)의 자손들이 널리 퍼져 각국 각지로 산거해 갔던 것으로 보인다.
김극순(金克淳)의 현손(玄孫) 김대경(金臺卿)이 당시의 국정(國政)이 일란(日亂)함에 직언하다가 전남 영암(靈岩)에 있는 안로(安老)로 유배된 바 있고, 그 자손들은 경기도 고양(高陽)ㆍ풍덕(豊德) 등으로 옮겨갔던 것 같으며, 22세 김세(金世)의 대에 이르러 황해도 안악(安岳)에, 다시 26세의 대에 평북 희천(熙川)ㆍ강계(江界), 평남 성천(成川) 등지로 계속 흩어져 살았던 것으로 믿어진다.
또 일부의 후손은 22세 김기가 충남 서산(瑞山)의 일교(一橋)로 이거한 이래 청양(靑陽)땅에 자리잡았고, 23세 김종신(金宗信)의 자손들은 청주(淸州)를 비롯한 충북 청원(淸原)과 충남 서천(舒川)ㆍ청양(靑陽)ㆍ보령(保寧) 등지를 세거의 터로 삼아 왔으며, 그중 일부는 함북 온성(穩城)을 거쳐 종성군(鐘城郡)으로 이거해 왔다.
김수신(金守信)의 자손들은 25세의 대부터 2~3대에 걸쳐 충북 괴산(槐山)의 청안(淸安)ㆍ진천(鎭川), 충남 홍성(洪城)ㆍ논산(論山) 등지에 정착했고, 일부는 강화(江華)ㆍ용인(龍仁) 등지에도 가 살고 있다.
김우신(金友信)의 자손들은 그 아들 대부터 서산군(瑞山郡) 성연(聖淵)에 자리잡아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
한편, ‘기미보(己未譜)’에 이하면 21세 김수남(金粹南)이 나주(羅州)의 거평(居平)에서 무안(務安)으로 이거하였고, 증손(曾孫) 김천성(金天成)과 김만성(金晩成)이 충남 공주(公州)로 다시 옮겨갔다. 형 김천성(金天成)의 후계(後系)는 평양(平壤)으로 피난하여 평북 박천(博川)ㆍ영변(寧邊) 등지에 세거의 터를 정한 25세 김승조(金承祖)의 자손들 외에는 공주(公州)의 탄천(灘川) 등지에 살았던 것 같다.
동생 김만성(金晩成)은 곧 충남 홍성(洪城)땅으로 옮겨갔으므로 이 무렵부터 홍성(洪城)ㆍ보령(保寧) 등지에 살았다고 믿어진다.
그밖에 23세 김재수(金載秀) 이래로 제주(濟州)에 자손들이 세거해 왔고, 대체로 21세의 대 이래로 충북 옥천(沃川), 전북 정읍(井邑), 경기도 연천(漣川) 등지에도 살게 되었다.
14세 김인충(金仁忠)이 제주(濟州)로 들어간 이래 그 후계(後系)가 그곳에 터를 굳히고 살아온 것 같다.
1930년경, 전남 무안군(務安郡) 일원, 평남 성천군(成川郡) 통선면(通仙面), 평북 태천군(泰川郡) 강동면(江東面), 영변군(寧邊郡) 태평면(泰平面) 등지에 집성촌을 이루고 있었다. 한편 19세 김이첨(金以瞻)의 후손은 충남 청양(靑陽)ㆍ당진(唐津), 충북 옥천(沃川), 경기도 영흥(靈興) 등지에서 살고 있다.
1980년대의 대표적 집성촌으로는 승사랑(承仕郞) 김수남(金粹南)이 터잡아 450여년동안 후손들이 살고있는 무안군(務安郡) 일대를 들 수 있다. 특이 몽탄면(夢灘面) 다산리(茶山里)에는 2백여호의 나주김문(羅州金門)이 모여 살고 있다.
또 군자감정(軍資監正) 김주(金鑄)의 후손들은 충남 홍성(洪城)에 1백50여호, 김만성(金晩成)의 후손들은 보령군(保寧郡) 청소면(靑所面) 일원에 2백50여호의 집성촌을 이루어 살고 있다.

 

 

 

 

씨족史
나주김씨(羅州金氏)는 고려조의 초기에는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았다. 씨족(氏族)의 연원편에서도 말한 바와 같이, 경순왕의 후예로 고려에 신라를 넘겨주는 것을 반대, 입산(入山)하고만 선조의 혈통을 이은 때문이겠다.
나주김씨(羅州金氏)가 자랑하는 ‘불복여조(不服麗朝) 입산위승(入山爲僧) 수작불수(授爵不受)’의 정신이 이것이다.
그러나 고려 중엽 이후에는 출사(出仕)하기 시작하여 평장사(平章事)ㆍ상서(尙書)ㆍ판서(判書) 등 문무(文武)에 걸쳐 많은 현관(顯官)과 달직(達職)을 배출하였다고 ‘기미보(己未譜)’ 서문에 씌어 있다.
그런 때문인지 손록(孫錄)편을 보면 10세 이후 현관(顯官)에 오른 분이 대를 잇고 있다. 김득장(金得章)은 시중사정(侍中司正)을 지낸 김서황(金瑞璜)의 아들로 시중(侍中)을 지냈으며, 안로현주(安老縣主)에 봉해졌고 이어 대장군(大將軍)에 추봉되었다고 하였다.
손자 김수연(金守淵)은 문과에 올라 은청광록대부(銀靑光祿大夫) 추밀원부사(樞密院副使)와 병부상서(兵部尙書)를 역임했고 그의 아들 김성고(金成固)는 충선왕 때 문과에 급제, 전의령(典儀令)이 되었으며, 아들 김대경(金臺卿)은 충숙왕 때 문과에 올라 보문각(寶文閣) 대제학(大提學)에 이르렀고 문충(文忠)이라 시호된 분이다.
문장이 뛰어나 ‘동문선(東文選)’에 그 시작(詩作)이 올랐는데, 이색(李穡)과 창수(唱酬)한 시(詩)가 유명하다고 한다.
김가구(金可久)는 그의 아들이다. 충목왕 때 문과에 올라 예의판서(禮儀判書)를 지냈고 손자 김정준(金廷儁)은 조선조에 들어와 중군도총부(中軍都摠府) 부총제(副摠制)를 지냈다고 한다.
증손 김양(金壤)은 해주목판관(海州牧判官) 권농병마절도위(勸農兵馬節都尉)를 겸했으며, 현손 김경근(金敬近)은 수의부위(修義副尉) 좌군섭사용(左軍攝司勇)이 되었다.
김봉서(金鳳瑞)는 20세로 조선 성종조에 남부선공감(南部繕工監)을 시작으로 사헌부감찰(司憲府監察)ㆍ평강현감(平康縣監)ㆍ박천군수(博川郡守)ㆍ한성부서윤(漢城府庶尹)ㆍ강화부사(江華府使)ㆍ남양부사(南陽府使)ㆍ군자감부정(軍資監副正)을 역임한 뒤 절충위호군(折衝衛護軍)ㆍ의흥위호군(義興衛護軍)에 이르렀다. 그의 아들 김경석(金景錫)은 무과에 올라 만포첨사(滿浦僉使)와 강계부사(江界府使)를 역임했다. 이어 동지돈녕부사(同知敦寧府事)겸 훈련원사(訓練院事)에 이르렀다. 그가 방어사(防禦使)로 있을 때 영암(靈岩)의 토적(土賊)을 평정, 정국(靖國)1등공신(等功臣)이 되었다고 고사촬요(故事撮要) 등에 기록되었다고 한다.
김취장(金就章)은 문과에 올라 춘추관기주관사(春秋館記注官事)ㆍ공조정랑(工曹正郞)ㆍ사간원사간(司諫院司諫)ㆍ의성현령(義城縣令)을 역임한 뒤 단종복위(端宗復位)운동이 탄로되어 금성대군(錦城大君) 이유(李瑜)가 화를 입자 벼슬을 버리고 입산해버렸다고 한다.
김우징(金祐澄)은 그의 손자로 21세가 된다. 선공감감역(繕工監監役)ㆍ형조좌랑(刑曹佐郞)과 남해현감(南海縣監)에 올랐다.
김세(金世)는 22세로 문과에 올라 수원(水原)ㆍ성천부사(成川府使)를 거쳐 정주목사(定州牧使)와 개성유수(開城留守)ㆍ홍문관제학(弘文館提學)을 역임한 뒤 호성군(扈城君)에 봉해진 분이다.
아들 김인명(金仁命) 역시 문과에 급제, 사헌부지평(司憲府持平)을 지냈으며, 손자 김상의(金尙義)는 음보(蔭補)로 사포서(司圃署) 별제(別提)와 니산현감(尼山縣監)을 지낸 뒤 문과에 올라 사헌부감찰(司憲府監察)과 태천현감(泰川縣監)이 되었다. 아들 김우한(金佑漢)도 별시(別試) 문과에 올라 태천현감(泰川縣監)을 지냈다.
22세 김적(金適)은 광주목사(光州牧使)를 지냈고, 그의 아들 김충수(金忠秀)는 임진왜란 때 선무(宣武) 1등공신으로 가선대부(嘉善大夫)ㆍ호조참판(戶曹參判)이 되었는데, 정유재란 때 부인 금성나씨(錦城羅氏)와 함께 순절, 정조 22년에 정려(旌閭)되었다.
나주김씨(羅州金氏)의 역대 인물들, 말하자면 대동보(大同譜)에 나타난 과환인명(科宦人名)을 중심으로 몇몇분을 소개하였다. 물론 이밖에도 벼슬길에 올랐거나 효행과 학덕으로 씨족의 성예(聲譽)를 빛낸 분들은 많다.
현대에 이르러 나주김씨(羅州金氏)에서 뛰어난 인물들이 더욱 돋보인다.
추강(秋江) 김용무(金用茂)가 그런 분이다. 한학자인 김기환(金錡煥)의 큰 아들로 태어나 일제시대 고등문관(高等文官) 사법과에 합격, 변호사로서 민족독립운동에 연계된 크고 작은 사건들을 무보수로 변론에 앞장섰다고 한다.
신간회(新幹會)사건, 조선어학회(朝鮮語學會)사건, 광주학생(光州學生)사건의 변호인으로 특히 헌신적인 활약을 하였다고 알려져 있다.
동아일보(東亞日報)의 중역으로 혹은 보성전문학교(普成專門學校)의 재단이사장(財團理事長)과 교장(校長)으로 민족문화진작에 끼친 공은 높게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해방 뒤에는 인촌(仁村)ㆍ애산(愛山)ㆍ가인(街人)ㆍ근재(芹材)ㆍ위당(爲堂)ㆍ유석(維石)ㆍ창랑(滄浪) 등과 뜻을 맞춰 정당활동에도 관여, 한국민주당(韓國民主黨)을 창당하였다.
남조선과도정부(南朝鮮過渡政府)수립과 동시에 초대 대법원장(大法院長)으로 사법부의 기틀을 세우는데 크게 기여했다.
제2대 민의원으로 당선, 국회에서의 활약을 앞두고 6ㆍ25 전쟁으로 납북당하였다.
금산(金山)은 상해임시정부에서 안창호, 김구 선생을 도와 임시정부와 남경 중국정부와의 연락사무에 종사하다가 1927년 귀국 후에는 청년운동ㆍ농민운동에 종사한 인물이다.
3ㆍ1운동 때부터 3차례의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항렬표(行列表)

용(用)○
기(基)○
갑(鉀)○
효(孝)○
교(敎)○
학(學)○
무(武)○
기(璣)○
재(栽)○
○구(九)
○탁(鐸)
○원(元)
○근(根)
○은(殷)
○겸(兼)
○문(文)
○하(夏)
○기(夔)
우(禹)○
병(昞)○
운(雲)○
인(寅)○
주(宙)○
연(演)○
○형(衡)
○우(宇)
○연(衍)
○욱(郁)
○경(卿)
○순
성(成)○
재(載)○
무(茂)○
진(振)○
량(良)○
농(濃)○
○기(起)
○희(熙)
○현(弦)
○홍(弘)
○필(弼)
○기(紀)
유(庾)○
병(秉)○
강(康)○
남(南)○
년(年)○
장(章)○
○창(彰)
○재(宰)
○엽(燁)
○수(守)
○래(來)
○영(榮)
병炳○
○충忠
○성星
○재載
○재在
진(珍)○
치(致)○
임(任)○
중(重)○
동(東)○
동(動)○
○규(揆)
○호(昊)
○발(發)
○우(雨)
○유(猷)
○순(醇)

 

 

세계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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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주요 인물
▲ 고려조

김운발(金雲發)(나주군(羅州君)·문하시중(門下侍中))
김중륜(金重輪)(시중(侍中)) 김성륜(金聖輪)(시중(侍中))
김인륜(金仁輪)(원윤(元尹))
김지경(金之敬)(안로현백(安老縣伯)·호장중윤(戶長中尹))
김율(金律)(시중(侍中)) 김원상(金源相)(예의판관(禮儀判官))
김낙도(金樂道)(평장사(平章事))
김시태(金始兌)(도총부부총제(都摠府副摠制))
김우해(金宇海)(판윤(判尹))
김광(金光)(보문각대제학(寶文閣大提學))
김려(金礪)(시중(侍中))
김한주(金漢周)(문하시랑(門下侍郞)·평장사(平章事))
김서황(金瑞璜)(시중(侍中))
김수황(金秀璜)(공주군(公州君)·문하시중(門下侍中))
김춘원(金春元)(시중(侍中)) 김득장(金得章)(시중(侍中))
김억서(金億瑞)(시중(侍中))
김수연(金守淵)(병부상서(兵部尙書))
김진빈(金進彬)(문하시중(門下侍中))
김려(金呂)(대호군(大護軍)) 김봉구(金鳳九)(시중(侍中))
김대경(金臺卿)(자(字) : 중시(仲始)·호(號) : 월당(月塘)·시(諡) : 문충(文忠)·보문각대제학(寶文閣大提學))
김가구(金可久)(예의판서(禮儀判書))

▲ 조선조

김정준(金廷儁)(도총부부총제(都摠府副摠制))
김양(金壤)(해주판관(海州判官))
김해회(金海淮)(호조참판(戶曹參判))
김봉서(金鳳瑞)(자(字) : 저성(著聖)·용양위부호군)
김경석(金景錫)(자(字) : 석지(錫之)·호(號) : 용주(龍洲)·동지돈녕부사(同知敦寧府事))
김조(金稠)(자(字) : 자실(子實)·대사성(大司成))
김이첨(金以瞻)(한성소윤(漢城少尹))
김무치(金茂致)(동지돈녕부사(同知敦寧府事))
김도(金堵)(금성군(錦城君)) 김치검(金致儉)(승지(承旨))
김석(金碩)(돈녕부도정(敦寧府都正))
김성임(金聖任)(자(字) : 양경(陽卿)·군자감정(軍資監正))
김세(金世)(자(字) : 자보(子甫)·호성군(扈城君)·홍문제학(弘文提學))
김일남(金鎰南)(자(字) : 규백(圭伯)·용양위부호군)
김신창(金信昌)(자(字) : 문보(文甫)·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김신만(金信萬)(자(字) : 중보(仲甫)·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김봉상(金奉尙)(자(字) : 여옥(汝玉)·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
김감묵(동지돈녕부사(同知敦寧府事))
김상일(金尙逸)(군자감정(軍資監正))
김득립(金得立)(공조참의(工曹參議))
김영순(동지중추(同知中樞))
김진(金鎭)(자(字) : 진지(鎭之)·호(號) : 매헌(梅軒)·부총관(副摠管))
김흥운(金興運)(자(字) : 군원(君遠)·부사(府使))
김수명(金壽鳴)(자(字) : 인수·선전관(宣傳官))
김선(金銑)(자(字) : 선지(銑之)·호(號) : 매송(梅松)·병조참판(兵曹參判))
김주창(金柱昌)(자(字) : 선갑(善甲)·부호군(副護軍))
김수신(金守信)(자(字) : 사부(士孚)·부사(府使))
김하명(金夏鳴)(자(字) : 하향(夏鄕)·선전관(宣傳官))
김의배(金義培)(자(字) : 의문(義文)·호(號) : 송은(松隱)·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김필신(金弼臣)(자(字) : 열경(悅卿)·용양위부호군)
김필상(金弼商)(자(字) : 몽뢰·동지중추(同知中樞))
김주(金鑄)(자(字) : 천강(千强)·군자감정(軍資監正))
김응하(金應夏)(자(字) : 문명(文明)·공주판관(公州判官))
김태수(金泰水)(자(字) : 진원(震元)·동지돈녕부사(同知敦寧府事))
김만업(金萬業)(자(字) : 성여(成汝)·무산부사(茂山府使))
김순책(金順策)(자(字) : 정일(正日)·병마절도사(兵馬節度使))
김적(金適)(자(字) : 희정(希正)·호(號) : 취암(鷲巖)·광주목사(光州牧使))
김충수(金忠秀)(자(字) : 중심(中心)·호(號) : 귀암(龜巖)·호조참판(戶曹參判))
김효동(金孝東)(훈련판관(訓鍊判官))
김선철(金善喆)(자(字) : 선우(善宇)·중추부사(中樞府事))
김륜태(金倫泰)(자(字) : 의중(儀仲)·첨지중추(僉知中樞))
김영후(金榮後)(자(字) : 요선(燿先)·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김시석(金時奭)(자(字) : 군우(君愚)·군자감정(軍資監正))
김진탁(金振鐸)(자(字) : 홍집(洪集)·호(號) : 월산(月山)·갑산군수(甲山郡守))
김평남(金平南)(자(字) : 영숙(永叔)·돈녕부도정(敦寧府都正))
김전(金典)(영암군수(靈岩郡守))
김춘립(金春立)(자(字) : 여시(汝時)·한성부서윤(漢城府庶尹))
김효재(金孝材)(오위도총부부총관(五衛都摠府副摠管))
김대현(金大鉉)(자(字) : 대유(大有)·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김수광(金秀光)(자(字) : 만수(萬洙)·군자감정(軍資監正))
김원협(자(字) : 일동(日東)·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김신협(자(字) : 시만(時萬)·좌승지(左承旨))
김몽동(金夢東)(자(字) : 몽뢰(夢賚)·남원부사(南原府使))
김수학(金秀鶴)(자(字) : 정서(正西)·안변부사(安邊府使))
김춘남(金春楠)(자(字) : 화삼(和三)·경성판관(鏡城判官))
김효일(金孝一)(자(字) : 경여(敬汝)·돈녕부도정(敦寧府都正))
김익채(金益采)(자(字) : 정보(鼎甫)·용양위부호군)
김인장(金麟長)(자(字) : 용서(龍瑞)·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김난익(자(字) : 행원(行元)·남원부사(南原府使))
김효신(金孝藎)(자(字) : 행선(行先)·남원부사(南原府使))
김계생(金癸生)(자(字) : 경호(景好)·병조참의(兵曹參議))
김세득(金世得)(자(字) : 영천(永千)·한성좌윤(漢城左尹))
김상구(金相九)(자(字) : 홍구(洪九)·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김언충(金彦忠)(자(字) :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
김응려(金應礪)(자(字) : 대원(大遠)·용양위부호군)
김수탁(金洙鐸)(자(字) : 원재(元哉)·돈녕부도정(敦寧府都正))
김세중(金世重)(자(字) : 운망(云望)·돈녕도정(敦寧都正))
김시정(金時鼎)(자(字) : 덕우(德祐)·동추(同樞))
김창규(金昌奎)(자(字) : 성규(性圭)·동중추(同中樞))
김덕선(金德善)(자(字) : 선문(善文)·용양위부호군)
김성장(金聲章)(자(字) : 재숙(載淑)·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김탁(金鐸)(자(字) : 명철(明哲)·공조참의(工曹參議))
김성해(金成海)(자(字) : 청경(淸庚)·한성서윤(漢城庶尹))
김해순(金海順)(자(字) : 배숙(背叔)·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김명선(金明善)(자(字) : 명국(明國)·의금부도사(義禁府都事))
김성문(金聖文)(자(字) : 내경(乃卿)·용양위부호군)
김순정(金舜廷)(군자감정(軍資監正))
김정추(金正秋)(공조참의(工曹參議))
김중현(金重鉉)(오위도총부부총관(五衛都摠府副摠管))
김치목(金致穆)(용양위부호군)
김종호(金鍾浩)(자(字) : 계연(啓然)·돈녕부도정(敦寧府都正))
김의준(金義俊)(용양위부호군)
김용제(金用濟)(자(字) : 진옥(振玉)·호(號)·옥봉(玉峰)·중추원의관(中樞院議官))
김경행(金景行)(자(字) : 손윤(遜尹)·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김렴(金濂)(자(字) : 응진(應振)·호(號) : 명어(明於)·중추부사(中樞府事))
김상관(金相寬)(자(字) : 윤관(允寬)·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김재학(金在鶴)(자(字) : 치삼(致三)·돈녕도정(敦寧都正))
김양현(金良鉉)(자(字) : 윤지(允之)·용양위부호군)
김의모(金義模)(자(字) : 화숙(和叔)·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김신모(金信模)(자(字) : 군실(君實)·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김세상(金世祥)(자(字) : 치대(致大)·병조참판(兵曹參判))
김용선(金用善)(자(字) : 원교(元敎)·호(號) : 송당(松堂)·승정원좌승지(承政院左承旨))
김성진(金聖鎭)(자(字) : 세원(世元)·강계부사(江界府使))
김태순(金泰淳)(오위장(五衛將))
김발(金渤)(용양위부호군)
김세빈(金世彬)(자(字) : 사옥(士玉)·용양위부호군)
김응구(金應九)(자(字) : 중내(仲乃)·호(號) : 경은(耕隱)·동지중추(同知中樞))
김우창(金禹昌)(자(字) : 낙서(洛瑞)·중추원의관(中樞院議官))
김학구(金鶴九)(자(字) : 천문(天聞)·의금부도사(義禁府都事))
김홍구(金弘九)(오위도총관(五衛都摠管))
김용채(金龍采)(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김진영(金鎭榮)(자(字) : 중록(仲祿)·사간원정언(司諫院正言))
김성범(金聖範)(자(字) : 원일(元一)·호(號) : 수당(水堂)·호조참판(戶曹參判))
김성호(金聖浩)(호(號) : 도일(道一)·승정원좌승지(承政院左承旨))
김헌구(金憲九)(자(字) : 기헌(基憲)·선전관(宣傳官))
김익화(金益化)(중추부사(中樞府事))
김영손(金永孫)(용양위부호군)


[등과(登科)·음사인명(蔭仕人名)]

▲ 조선조

문과(文科)
김적(金適)(문과(文科))
김소하(金韶夏)(현감(縣監)) 김초보(金楚寶)(현감(縣監))
김상려(金相礪)(현감(縣監)) 김형중(金衡重)(전적(典籍))
김대규(金大奎)(헌종경자을과(憲宗庚子乙科))


[음사인명(蔭仕人名)]

김운발(金雲發)(나주군(羅州君)) 김인륜(金仁輪)(원윤(元尹))
김율(金律)(시중(侍中)) 김원상(金源相)(판서(判書))
김시태(金始兌)(도총관(都摠管)) 김광(金光)(대제학(大提學))
김극순(金克淳)(대장군(大將軍)) 김요선(金堯瑄)(검교(檢校))
김수연(金守淵)(상서(尙書)) 김성고(金成固)(전의령(典儀令))
김대경(金臺卿)(대제학(大提學)) 김가구(金可久)(판서(判書))
김정준(金廷儁)(부총제(副摠制)) 김양(金壤)(목사(牧使))
김우운(金祐雲)(현령(縣令)) 김철하(金哲河)(좌랑(佐郞))
김수남(金粹南)(승사랑(承仕郞)) 김적(金適)(문과(文科)·예판(禮判))
김원(金遠)(진사(進士)) 김충수(金忠秀)(호참(戶參))
김덕수(金德秀)(진사(進士)) 김영후(金榮後)(중추(中樞))
김구하(金九夏)(증승지(贈承旨)) 김득장(金得章)(대장군(大將軍))
김영서(金永瑞)(증호참(贈戶參)) 김정(金鋌)(증복정(贈僕正))
김용해(金龍海)(증승지(贈承旨))
김상부(金相富)(증호참(贈戶參)) 김승현(金昇炫)(가선(嘉善))
김용은(金用銀)(참봉(參奉)) 김구석(金九碩)(통덕랑(通德郞))
김건(金鍵)(증장례(贈掌禮)) 김재해(金在海)(통정(通政))
김상호(金相顥)(가선(嘉善)) 김동현(金東鉉)(가선(嘉善))
김태현(金台炫)(통정(通政)) 김기후(金基厚)(가선(嘉善))
김언(좌장례(左掌禮)) 김상철(金相哲)(좌통례(左通禮))
김팔현(金八炫)(증승지(贈承旨))
김기의(金基義)(증참판(贈參判)) 김기환(金基煥)(복정(僕正))
김하탁(金夏鐸)(가선(嘉善)) 김문후(金文後)(만호(萬戶))
김시보(金時輔)(주부(主簿)) 김예수(金禮秀)(예판(禮判))
김성후(金聲後)(통정(通政)) 김구점(金九漸)(증판서(贈判書))
김영서(金永瑞)(통정(通政)) 김강(증참판(贈參判))
김순(金錞)(증자헌(贈資憲)) 김규해(金奎海)(증호참(贈戶參))
김상국(金相國)(참봉(參奉)) 김봉해(金鳳海)(증자헌(贈資憲))
김붕해(金鵬海)(증가선(贈嘉善))
김조해(金租海)(증가선(贈嘉善))
김상린(증호참(贈戶參))
김상회(金相會)(증참판(贈參判)) 김두섭(金斗燮)(참봉(參奉))
김명환(金明煥)(감찰(監察)) 김상언(金相彦)(수가선(壽嘉善))
김상빈(金相彬)(감찰(監察)) 김시오(金時五)(증참판(贈參判))
김희(金羲)(증승지(贈承旨)) 김총(증공참(贈工參))
김학수(金學洙)(증승지(贈承旨))
김학렴(金學濂)(증가선(贈嘉善))
김상희(金相熙)(증참판(贈參判))
김내현(金乃炫)(수통정(壽通政)) 김용대(金用大)(감찰(監察))
김상태(金相泰)(증승지(贈承旨))
김관현(金觀炫)(증참판(贈參判)) 김용연(金用沇)(참봉(參奉))
김지수(金智秀)(봉사(奉事)) 김경서(金慶瑞)(증참판(贈參判))
김필해(金弼海)(증승지(贈承旨))
김상렬(金相烈)(증참판(贈參判))
김기환(金琦煥)(증가선(贈嘉善)) 김용채(金用彩)(교관(敎官))
김두환(金斗煥)(진사(進士)) 김익해(金翊海)(증복정(贈僕正))
김상즙(金相楫)(증승지(贈承旨))
김량환(金亮煥)(증호참(贈戶參)) 김기석(金基奭)(동추(同樞))
김노중(金老重)(통정(通政)) 김징(金澄)(전적(典籍))
김의선(金義善)(증악정(贈樂正))
김순장(金順章)(증참의(贈參議))
김한일(金漢一)(증참판(贈參判)) 김성채(金聖采)(동추(同樞))
김세빈(金世彬)(부호군(副護軍)) 김인태(金仁泰)(사과(司果))
김응구(金應九)(동추(同樞)) 김우정(金禹鼎)(참봉(參奉))


[조선조 급제자 정록]

적(適)(중종(中宗) 38년·식년시(式年試)·병과(丙科)) 소하(韶夏)(현종(顯宗)1년·식년시(式年試)·병과(丙科)) 초보(楚寶)(숙종(肅宗) 28년·식년시(式年試)·병과(丙科)) 상려(相礪)(영조(英祖) 1년·증광시(增廣試)·병과(丙科)) 형중(衡重)(영조(英祖) 41년·식년시(式年試)·병과(丙科)) 영집(英集)(순조(純祖) 16년·정시(庭試)·병과(丙科)) 영업(英業)(순조(純祖) 16년·정시(庭試)·병과(丙科)) 대규(大奎)(헌종(憲宗) 6년·식년시(式年試)·을과(乙科))


[벌열(閥閱)]

●문형(文衡)
: 김대경(金臺卿)(태종조)
●호당(湖堂)
: 김대경(金臺卿)(태종조)
●청백리(淸白吏)
: 김두남(金斗南)(宣祖朝) 김응남(金應南)(宣祖朝)
●절의(節義)
: 김예수(金禮秀)(임진왜란(壬辰倭亂)·순의제인(殉義諸人)) 김충수(金忠秀)(임진왜란(壬辰倭亂)·순의제인(殉義諸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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