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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사공파 29세손 성언창입니다. 돌아가신 선친께서 족보학에 일가견이 있으셨고, 종중일에 관심이 많으셔서 저도 예전부터 우리 성가 종친회에 들락거렸다가 오늘에야 늦게 가입했습니다.
저 개인적으로 우리 성씨의 뿌리에 대하여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상고사 관련 서적을 뒤적거리고 있었습니다.
저도 역사책에 나오는 백제의 '성충'이라는 분이 우리 조상일 거라는 데에 회의적입니다. 제가 읽은 책중에 충남대 국문학과에 계셨던 도수희분이 쓴 백제어 관련 서적에 우리나라 성씨의 기원에 대하여 쓴 글이 있는데 여기에 보면 일찍부터 성과 이름을 쓴 중국과는 삼국시대까지 왕족과 극히 일부 귀족을 제외하고 성과 이름을 쓴 경우가 거의 없었다고 합니다.
특히 백제의 경우는 중국 사서나 일본사서에 왕의 경우만 성과 이름이 기록되어 있지 우리나라 사서에는 성이 기록되어 있지 않다고 합니다. 따라서 '성충'이라는 이름은 성이 아니고 이름일 가능성이 높다고 볼 수 있습니다. 성환윤님의 윗글에서 이 성충의 동생의 이름이 '윤충'이었다면 더욱 성충이 이름과 성이 아니라 이름만일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제가 요즈음 관심을 두고 있는 것이 555년 경 신라에 멸망한 창녕에 있었던 비사벌 가야입니다. 역사학자들의 삼한 중 진한과 변진한의 연구에 따르면 비사벌 가야가 있던 창녕지방은 변한에 속했는데 진한과 변한은 주민의 종족 (부족)이 달랐다고 합니다.
시조할아버지가 득성할 당시, 즉 고려 고종 당시에 우리 조상들이 창녕지방에 대대로 세력을 가지고 있던 호족이었고, 이러한 세력을 형성한 시기가 적어도 통일신라까지 소급될 수 있는 여지가 있습니다. 위 성환윤님이 소개해 주신 분 중에 성저라는 분이 신라 대관으로 창녕인 (이라는 정확한 기록 못찾음)으로 알려져 있어서 이러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신라에 멸망한 비사벌 (=> '빛벌판'이라는 뜻) 가야의 후손이나 비사벌 지방의 그 이후의 역사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알 길이 없어 보입니다. 다만 가능성이 두가지인데 비사벌 가야의 유력 집안이 신라 통치 하에 남아서 우리 시조할아버지까지 연결된 경우와 아니면 신라 점령후에 어떤 집단이 이동하여 이 집단이 창녕지방의 유력집단이 되어 신라의 대관 성저라는 분을 거쳐 시조할아버지까지 연결되는 경우 입니다.
성저라는 분의 관직인 신라 대관은 찾아 보니 확실한 것을 알 수는 없지만 아마도 관 = 성 = 군은 같은 의미였다는 기록도 있어서 한 지방에 이끄는 수령이었을 가능성이 있어 보입니다.
하여튼 저 개인적으로 '성'씨를 중국의 '성'씨에서 왔을 가능성이 있지만 혈통상으로 중국으로 부터 넘어왔을 가능성은 낮다고 봅니다.
예전 기억을 더듬어 저의 집안의 풍습을 소개하고, 그 풍습의 기원과 관련된 어른들이 전해주신 전래된 이야기를 소개하면서 이 이야기 (신화 혹은 전설) 속에 우리 성씨의 기원이 있는지 생각해 보는 것도 의미있다고 봅니다.
제가 어렸을 때 어른들께서 우리 집안은 잉어와 가물치를 먹지 않는 집안이라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 집안이 잉어의 자손이라는 이야기였습니다. 지금 오십이 넘은 저도 아내가 아이들을 임신했을 때 임산부와 아이에게 좋다는 잉어와 가물치는 먹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제 숙부님은 집안에 잉어가 헤어치는 그림을 걸어놓으시기도 했습니다.
하여튼 그때 제가 어른들에게 우리 집안이 잉어를 안먹는 이유를 여쭤보고 들은 이야기를 간추리면 다음과 같습니다.
"옛날에 우리 성씨의 관향인 창녕에 아주 잘나가는 집안이 있었답니다. 그 집안에 아주 예뿐 외동딸 하나가 있었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처녀가 집 근처의 시냇가에 빨래를 하러 갔답니다.
시냇가에서 빨래를 하던 처녀는 시냇물속에 아주 잘생기고 큰 금빛 잉어한마리가 놀고 있는 것을 발견했답니다. 그런데 갑자기 주변에 상서로운 기운이 일며 안개가 끼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 상서로운 안개 속에서 잉어가 건장한 남자로 변하여 걸어나왔습니다.
이 건장한 남자와 결혼한 처녀는 아이를 갖게 되었고 이윽고 아들 세쌍동이를 낳았는데 아들 셋 등에 각각 큰아들은 '성'자, 둘째는 '조'. 막내는 '허'자가 각각 씌여있어 각성의 시조가 되었다고 합니다."
이상이 제가 들은 우리 집안이 잉어를 안먹는 풍습의 기원에 관한 전설입니다. 그 이후 제가 좀 더 커서 창녕을 관향으로하는 우리 성가와 같은 관향인 창녕 조씨가 결혼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듣고 평소 성리학과 족보학에 조예가 깊은 아버님께 여쭤보았더니 창녕 조씨들은 그렇게 이야기하는 우리 창녕 성씨들은 일가라고 하지 않는다고 하시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하여튼 창녕 조씨의 시조 설화는 위 이야기와는 좀 다르지만 화왕산에 있는 연못과 관련한 비슷한 전설이 있습니다.
위의 잉어 자손 이야기는 신화학에서 말하는 전형적인 도래신화, 즉 고대사회에 이동 집단이 한지역에 정주한 집단에 칩입하여 동화한 사실을 반영하는 것으로 아마도 아주 먼 과거에 우리 조상들이 창녕 지방에 이주하여 현지인들과 동화한 사실을 그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한편으로 잉어는 또 다른 의미를 갖고 있는데 원래 가야가 물고기 문양과 관련 있어 보입니다. 즉 수로왕과 허황후 신화에서 허황후와 관련하여 가야에 물고기 문양이 남아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저는 제가 소개한 전설 (씨족신화)이 우리 성씨의 신화라면 우리 성씨는 비사벌 가야의 후예와 관려되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창녕 지방의 고대 지명, 구전되는 지명, 구전되는 이야기들을 수집하면 우리 성씨 조상님들에 대한 어떤 그림은 그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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