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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보도자료

유의양의 남해문견록6(수십리 물밑에서 생복따는 포작이)-2002/08/02 최초작성

작성자소장|작성시간11.11.15|조회수13 목록 댓글 0

보지 못했던 남해의 물산과 풍속

『섬 가운데서 나는 물산은 전복ㆍ홍합ㆍ미역 따위들이 있어 매양 장날이면 벌여 놓은 것이 다 생선지속이요 또 입는 것들은 무명ㆍ모시ㆍ베ㆍ명주 등 모두 다 있으되 풍속이 무명과 모시를 별로 더 숭상하고 명주는 드물게 합니다. 하였다.

읍촌 여인들이 치마를 물들이지 아니하고 입기에 내가 물어 보았더니, 물들이기 천리 길에 어려워 흰대로 입습니다. 하였다.

하루는 주인의 집에 물 속에 들어가 전복을 따는 포작(해녀)이가 생복을 이고 왔거늘 내가 종에게, 사라! 하고 이르되, 불쌍한 포작이니 값은 달라는 대로 주라! 하고 포작이더러 묻되, 네 어데서 살며 생복을 어데서 잡느냐 하고 물으니,

저희 살기는 읍내서 수 십리 떨어진 한 갯가에서 살고 생복은 물길로 오륙십리 혹 백여리를 들어가 캐고 멀리 갈수록 더 굵습니다. 하고 다른 사람들이 이르되,

생복 따는 거동을 본 즉 포작이들이 겨울이라도 옷을 벗고 물 속에 개구리처럼 뛰어들어 물 속에 거처없이 빠져 있다가 수식경이 지난 후에 도로 나와 바닷물 위에 뒤웅박을 대고 엎드려 숨이 복받쳐 숨을 두르지를 못하고 겨우 쉰 후, 즉시 또 들어가 따내어 오니 포작의 거동이 극히 불쌍하고 생복 하나의 값이 여러냥 싸오이다. 서울 양반님네 그런 일을 모르는 이가 많으신되 나으리는 불쌍한 줄 아시니 고마우시니이다. 하였다.

원이 마침 나와 보거늘 포작의 불쌍한 말을 일컫고 옛 말을 일컬으되,
우리 계구 한공이 제주어사로 갈 때에 대궐에 들어가 임금을 알현하니 나라에서 바닷 섬 백성의 고생을 염려하시어 생복 따는 불쌍한 말씀을 누누이 일컫자오시고

'옛 사람의 시에 이르되 소반 가운데 밥이 쌀낱이 몹시 고생한 것이라고 일렀으되, 나는 밥상 가운데 생복이 낱낱이 몹시 고생한 것이라고 이르노라 하교하오시니 우리 성상이 구중궁궐에 계시오면서도 천리 밖 갯가에서 고기잡이하는 백성들의 고생을 친히 보오시는 듯 이렇듯 아시니 방백(지방관의 우두머리. 관찰사)과 수령 되는 이는 백성에게 가까운 있는 까닭으로 더욱 청렴하염직 하오이다. 하니 원의 대답도 그렇소이다' 하였다.』

1530년 발행한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남해의 토산품은 살조개, 문어, 홍어, 오징어, 전복, 조개, 대구, 석류, 유자, 석이, 미역, 활대 뽕나무, 비자, 닥나무, 청어, 모래무지, 홍합, 송이, 청어, 낙지, 전어, 조기, 숭어, 농어, 해삼, 치자라고 하였다.

남해는 사면이 바다이기 때문에 각 해산물이 풍부하여 사람이 살기에는 좋은 곳이지만, 포작이들은 바다 속 수십리를 헤엄쳐 들어가 생복을 잡아오는 고생을 표현하였다. 고생에 비하여 생복 값은 싸지만 포작이들의 성실함이 있으니 임금님께서 지방관과 수령들도 청렴하라는 것을 비유하였다.


금산의 사슴을 진상하지 말게 하였다

『금산에 사슴이 많기 때문에 이전에 본현의 녹용과 사슴의 머리통의 진상이 있어 매양 사냥할 때에 민폐가 자심하더니 칠 팔년 전에 어사 이휘중이 서계하여 녹용 잡는 폐단을 자세히 아뢰니 위에서 녹용을 공물로 바치게 하고 남해 진상을 말게 하셨다.

막중한 약방에 쓰이는 것을 이리 변통하여 갯가 어부들을 진념하시는 일이 극진하시니 백성에게 성은이 미칠 뿐 아니라 은혜가 섬 속의 짐승들에게까지 미쳤으니 '중국의 은나라 시조인 성탕의 덕화와 같자오시다'고 말할만하다.』

남해의 물산과 해녀의 생복 따는 모습. 임금의 수라상에 오른 생복은 백성들의 고생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그리고 금산의 사슴 진상 금지. 위의 내용을 보면, 임금께서 백성을 사랑하는 것이 중국의 은나라 시조인 성탕이 덕행으로 남을 감동시킨 것과 같다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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