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다운 음식을 자넨 몰라. 내가 어렸을땐 말야, 음식은 음식다웠어. 과학자 양반들께서 물을 오염시키고 토양을 썩게 하고 동식물의 씨를 말려버리기 전까진 그랬지. 그 시절에 자네가 태어났다면 아무데서나 고기를 살 수 있었을거야. 달걀에 진짜 버터, 가게엔 신선한 양배추도 있었지." "그랬겠죠, 솔. 예전에도 말씀 하셨잖아요." "이런 날씨에 뭔들 살아남을 수 있겠나. 일년 내내 찜통이잖아. 이놈의 온실효과가 모든 걸 다 태워버릴거야" ---------------------------------------------------- "도시 밖에 있는 폐기물 처리 공장으로 가게 됩니다."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엔 장례식이란걸 치뤘죠. 그땐 그랬어요" "그땐 그랬죠." ----------------------------------------------------------- "바다는 죽었어. 플랑크톤도 죽었네.... 사람들이었어.... 소일렌트 그린의 재료는 사람들이야![Soylent Green is people!] 그들은 사람을 먹을것의 재료로 썻다구. 다음 번엔 우리를 가축처럼 기르려 할 거야!" ---------------------------------------------------------------- 소일렌트 그린은 1973년도의 SF[현재시점으론 그냥 디스토피아 영화,....]영화로 원작은 1966년에 나온 'Make Room! Make Room!'입니다. 60년도에 온실효과나 환경파괴에 대한 소재를 쓴 것도 놀랍지만 더 놀라운건 이 원작을 토대로 만든 영화가 지금 봐도 재밌다는 것이죠. [물론 이건 보는 사람마다 다 달라서 검색하면 재미 없고 지루하단 평도 나옵니다.] 조잡한 소품, 특히 액션은 그 당시의 미국영화가 그렇듯 웃길 정도로 어설프지만 스토리 라인과 내용 전달에 충실한 연출, 연기는 현재의 몇몇 영화가 좀 보고 배우란 소리가 나올 정도입니다. 특히 사람을 식재료로 쓴단 아이디어에서 아브락삭스 회춘의 비약이 나오는 주피터 어센딩이 생각나기도 하는데 이 작품도 자본주의니 시장경제니 운운하며 금권주의를 비판 하려한 노력은 보이지만 미술과 특수효과 빼곤 폭망 했단 점이 소일렌트 그린과의 차이겠군요.[...] 포스터에도 나오는 지게차로 쓸려가는 소요 군중은 영화상에선 훨씬 작은 지게차에다 적은 사람들이 퍼올려집니다. 대신 만원버스 뺨치는 길거리의 콩나물 시루 연출은 당시의 인건비가 지금보다 싸다는걸 잘 보여줍니다. [중국이 아닌 천조국의 인해전술!!] 블레이드러너가 배경미술과 효과로 첨단 미래의 디스토피아를 성공적으로 표현했다면 소일렌트 그린은 미국의 맨해튼이 난민 소굴이 될 정도로 모든게 쇠락한체 인구만 폭증한 막장세계를 잘 그려내었습니다. 경찰서 무기보관소 처럼 엄중한 이곳은 식료품점입니다. 그나마 음식의 종류나 양이 많은것도 아니고. "쇠고기에요. 한 번도 본 적이 없으실 겁니다." 냉장고 안을 잘 보면 녹황색 채소 약간에 달걀, 우유도 보이네요. 경호원과 음식을 사러왔던 이 갈색머리 여성은 "가구"라 지칭되는 신분입니다. 나무위키에선 비서이자 집주인의 애첩 역할을 하는 일종의 노예라 소개되는데 제가 봤을땐 비서는 아닙니다... 비서라 할만한 각잡힌 모습을 보이는 가구는 등장하지 않습니다. 그냥 가정도우미 정도 되는듯 하더군요. 그 외에도 나무위키 설명과 안 맞는게, 거기엔 형사를 "책"으로 지칭한다고 하던데.... 제가 영알못이어 그런진 몰라도 형사는 그냥 영화속에서도 형사로 불리지 싶은데요. 일종의 고용 정보분석가인 전직 교수 "솔"이 책으로 불린다면 모를까?? 주인공인 형사 "쏜"의 질문에 가구의 처지가 잘 드러납니다. 하나같이 미인들로 이뤄진 이 노예들은 윤택한 환경을 누리지만 자기 결정권이 없죠. 주인의 폭력에 시달리는건 예사고 건물 소유의 가구라도 입주자의 결정에 따라 내쫒기기도 한단 언급이 나옵니다. 노예제가 되살아난 막장 미래의 상징이기도 한 이들은 자존감도 없고 외부에 대한 지식도 허술한 편입니다. 자기집이 없어 건물 복도에 누워 자는 사람들. 이 무슨 밀항선도 아니고.... 저 많은수의 차들은 주행용이 아닙니다. 주거용이죠. 영화에서 돌아다니는 차들은 시체 운반차들이 유일합니다. 그 미국에서 말이죠. 처음에 나왔던 쇠고기는 손버릇 나쁜 "쏜"에 의해 가족이자 파트너인 "솔" 앞에 대령하게 됩니다. 놀란 솔은 이 직후 복잡한 감정이 담긴 울음을 터뜨리는데..... 쏜이 슬쩍해온 샐러드 한 뿌리와 과일 두 알, 그리고 이 고기는 작중 유일하게 보여지는 "진짜 식사"에 쓰입니다. 이 장면은 스샷이 아닌 영상으로 봐야합니다. 배우들이 대사 하나 없이 정말 행복한 한 때를 연기해냅니다. 살해 당한 상위 1% 인물의 집에서 슬쩍해온 비누, 술, 음식들은 형사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의 환경도 비참함을 설명하는 소품으로 알뜰하게 쓰입니다. 이 사망포상금은 그 자체가 중요 복선이 되죠. 죽은 사람은 장례도 없이 폐기처리장으로 보내지고 남은 가족에겐 포상금이 지급됩니다. 한편 시내에선 타이어를 잘라 만든 신발을 팔고~ [없만갤 유저 같.....] 중고 플라스틱 용기들을 팝니다. 주인공 쏜과 솔이 식사를 할 때에도 이 빠진 플라스틱 그릇에 담아 먹죠. 환경오염으로 인해 자원이 고갈되면서 자연히 대량생산 시스템도 무너진 상황을 설명 하나 없이 한 두 장면만으로 잘 전달하는군요. 위에 보이는 블럭들이 문제의 소일렌트 그린입니다. 맛 없어 보이는 이걸 없어서 못먹는 세상..... 콩으로 만들었다는 소일렌트 옐로나 레드와 달리 해양 플랑크톤의 동물성 단백질로 만들어졌다는 솔일렌트사의 신제품 소일렌트 그린. 그나마도 이 소일렌트 그린이 맛있다 없다의 설명도 없습니다. 그냥 살려고 먹는거지. 생산량 부족으로 그나마도 모자라서 주인공을 포함한 형사들 까지 잦은 폭동에 진압경찰로 동원되는 상황입니다. 겨울도 아예 사라져 항상 30도 이상의 무더위가 지속되는 찜통 속에 먹을것도 못 구하면 당연히 빡치겠죠. 위에 나온 건장한 여성의 불만을 시작으로 군중들이 사나워집니다. 결국 지게차를 이용한 군중 진압이 시작되구요. 직접 표현되진 않았지만 저 과정에서 사상자가 꽤 나올 수 밖엔 없겠죠. 보면 참, 안전장치 있나 없나 싶은 맨몸 스턴트들이 돋보이네요. [화면 상태를 신경쓰면 지는 겁니다;;;] 재미있는건 이정도면 기아 문제도 심각하단 건데 나오는 사람들은 엑스트라들 까지 포함해 다 한덩치 합니다. 당시 분장 기술로선 이게 한계였던건지.... 그러고 보니 교회앞에 눈 뜨고 죽은 한 여성이 잠깐 나오긴 합니다. 옆에서 잘 걷지도 못할 만큼 어린 아이가 손목에 줄이 묶인채[미아 방지 줄??] 우는걸 주인공이 발견해 교회 안으로 데리고 가죠. 교회 내부는 역시나 난민들로 가득한 헬게이트가 펼쳐져 있었습니다. 이후에도 나오는 안락사 기관에서의 광경과 시체 처리장이 사실은 소일렌트 그린의 생산공장이었단 반전등등, 영화사에서도, SF 디스토피아 장르에서도 역사의 한 획을 그은 명장면들이 펼쳐집니다. .....옛날거라 효과는 좀 구닥다리지만. 이런 호러블한 소일렌트 그린의 진실과는 반대로 영화는 항상 숨막히는 더위를 화면속에서 보여줍니다. 지금이 한창 더울 때여서 인진 몰라도 보다보면 목마름과 후덥지근함이 느껴집니다. 화면도 옛날거라 더 그렇고 무엇보다 등장인물들이 항상 땀을 뻘뻘 흘리는 분장을 하고 나옵니다. 특히 주인공 쏜은 틈만나면 땀을 닦아 대면서 맨날 긴 겉옷에 모자까지 쓰고 다니죠. 왜인지 노숙자나 엑스트라들을 제외하면 반팔을 입고 돌아다니는 경우가 없습니다. 대체 왜?? 물자부족으로 다들 단벌신사인가??? 더구나 형사 직업인 주인공 외에도 이 영화의 인물들은 통행금지와 통행증이 있는 세상에서 밤에도 쉬지않고 돌아다니는 장면들이 많습니다. 초반에 가구 여성이 경호원과 고기를 사러 나온 시간도 밤이었고 이틈에 혼자 남은 그들의 고용주는 살해당하죠. 딱히 설명이 없지만 어쩌면 온실효과의 더위로 인해 사회의 밤낮이 바뀐것인지도 모르겠네요. 영화 도입부에 주인공이 이제 밤이 되었으니 출근해야 한단식으로 솔에게 말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존 밀턴이 1667년에 발표한 "실낙원"이었나, 아니면 단테의 "신곡'에서였나....? 하여튼 어떤 라틴어 작품에서 지옥에 대해 설명하길, 펄펄 끓는 유황불의 열기가 가득한 지옥에서 악마들은 결코 휴식을 취할 수 없다....라 쓰였단 얘기를 들은 적 있습니다. 악마들은 무더위에 시달리면서 잠을 잘 수도 없단 것이죠. [가운데 잘 보면 검은 옷 입은 사람이 정면의 큰 건물을 향해 걸어갑니다] "오, 신이시여...."[솔이 진실을 알게 된 직후에] "신이라구요? 그 신은 어디에 있는 걸까요?" "집에 있을겁니다. .....그래요, 집에 처박혀 있을 겁니다." 어디에서도 편안히 쉴 수 있는 집이 없기에 영화 후반 전직 교수였던 솔이 향하는 "집"은 완벽한 휴식을 제공하는 장소로서 그 상징성이 부여됩니다. 그 휴식이란 바로 "죽음"이죠. 그것도 키시로 유키토의 "총몽"에도 잠깐 나온 자살을 도와주는 전문 기관. 물론 총몽보담 소일렌트 그린의 안락사가 더 구체적으로, 인간적으로 표현됩니다만..... 영화 시작하고 금방 보여주는게 늙은 솔이 꺼져가는 전구를 보고 자전거를 이용한 인력 발전을 힘겹게 돌리는 겁니다. 그리고 두 사람의 대화, "그러다 심장마비 걸리면 어쩌시려구요?" "그렇게라도 되면 좋겠군!" 에어컨과 온수가 펑펑 나오는 부르주아들의 저택은 그야말로 천국이지만 주인공에겐 결국 뜬구름이며 쏜 자신도 "가구"가 있는 "좋은 집"에 대한 부러움을 노골적으로 표현해[훔치는 습관] 본인의 집이 그다지 편안한 장소는 아님을 간접적으로 전달합니다. "집"에서 죽어가는 솔과 뒤늦게 따라와 같이 그 광경을 공유한 "쏜"은 잃어버린 세계=과거의 자연풍경을 보며 한쪽은 회한에 잠기고 한쪽은 경이로움에 잠겨 서로 마지막 대화를 나눕니다. 여담으로 이 때 솔을 연기한 배우 에드워드 G. 로빈슨은 이 영화 촬영 후 12일 뒤 암으로 타계했다는군요. 옛날 영화라 표현이 구리고 조악해 그렇지.....상황 전개와 소품 배치가 참.... ..... 고전적 지옥 이미지가 상관이 있건 없건 간에 식물도 옹색한 보호구역[그냥 작은 온실]외엔 전멸하고 바다의 플랑크톤도 다 죽은 마당에 유일한 단백질원이 인간이란 상황은 이미 생지옥 그 자체나 다름 없습니다만....
주인공이 목숨 걸고 알아낸 비밀이건만 이를 타개할 해결책도 없는 암울함은 덤이구요. 정말 자살이 권장되는 사회가 맞는 소일렌트의 세계입니다. 이 소일렌트 그린은 이후의 많은 작품이 오마쥬와 패러디를 하는 명품소재[ 심지어는 현실에서도 "소일렌트"란 이름의 대체식품이 시판되기에 이르.....;;;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ngpnephilim&logNo=220311743238 http://cafe.daum.net/kgolfcom/SbOn/528?q=%BC%D2%C0%CF%B7%BB%C6%AE&re=1 뭔가 미숫가루나 선식 같다??? 소일렌트가 아니어도 식량부족의 미래는 많이 화자되는 주제이고 실제로 곤충을 이용한 대체식품 개발을 시도중인 사례도 많습니다. ㅡ>"곤충은 미래 대체식량" http://returntooza.tistory.com/900 http://news.heraldcorp.com/view.php?ud=20150730000090&md=20150730080130_BL
좀 삼천포로 빠졌는데, 이 오래된 영화가 지금까지도 문제시 되는 환경오염과 식량문제를 이런식으로 담아냈음은 지금 봐도 감탄스럽네요. 고전 영화 소일렌트 그린의 누설이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