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배 씨
김남극
돌배는 딱 깨물어 씨방을 갈랐을 때 씨가 까맣게 두 눈을 동그랗게 뜨
고 세상을 내다보면 다 익은 것이다
그러니까 검은 눈동자가 늘 문제다
유년기를 갓 벗어난 어느 날 개울을 건너다 본 그 허벅지가 유난히 흰
그 계집애의 눈동자가 별나게 검었다
최루탄 속에서 돌아갈 길이 아득한 눈물 속으로 내 손을 끌어주던 그
여자의 눈동자도 별나게 검은 빛이었다
지금 내 옆에 반듯하게 조용히 잠든 아내가 하늘거리는 짧은 치마 속
으로 내 마음을 끌고 들어갔을 때 어둠 속에서 본 그 유난히 검은 눈동
자
검은 빛은 완숙의 경지고 매혹의 경지고 그래서 그 속에 들면 자발적
수형자가 될 수밖에 없다
하늘 가득 매달린 돌배들이 어설픈 푸른 빛 얼굴로 나를 내려다본다
돌배를 하나 따서 딱 깨물어본다
씨가 검다
물기가 남았다
씨는 씨방 속에 참 많이도 울었나 보다
울음 속으로 들어가 본다
나는 이 마가리*를 떠날 수 없다
*마가리: 영동 방언, 골짜기의 맨 끝
@ 돌배 씨는 검다. 그 검은 돌배 씨와 내 유년기를 갓 벗어난 그 계집애의 눈동자가 그렇고
자라나 가투를 하고 돌아갈 길을 끌어준 그 눈물 속 여인의 눈동자도 별나게 검은빛이었다.
지금 내 옆에 반듯하게 조용히 잠든 아내 역시 유난히 검은 눈동자라니... 그런데 검은 눈동자의
공통점이라면 딱 깨물면 울음을 우는 공통점이 있다. 첫사랑이 그렇고 동지애가 그렇다. 또한
인생의 동반자인 아내의 검은 눈동자가 그렇다. 눈물의 씨방, 내가 마가리를 떠날 수 없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