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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人의 詩를 읽다

운주사 깊은 잠 - 이명윤

작성자전재완|작성시간26.06.10|조회수11 목록 댓글 0

운주사 깊은 잠

이명윤



그들의 꿈에 잠시
스쳐가는 풍경처럼 다녀왔다
눈썹이 지워지고 입술이 지워져가는 석불들이
나란히 앉아 있었다
어느 날 눈이 사라졌으니
잠에서 번쩍 눈뜰 염려가 없고
입술이 지워졌으니
또다시 저녁이 와도 끼니 걱정 안하실 일
무심한 얼굴을 더듬어 내려오다
두 손으로 곱게 모은 기도를 보았는데
언젠가 불타는 세월이
기도 앞을 쿵쿵거리며 뛰어다녔을 때도
철없이 눈썹을 쪼던 새가 어느덧 눈이 멀어
발등에 떨어져 죽었을 때도
꿈쩍하지 않았던 것은
분명 기도보다 깊은 잠에 빠진 까닭이다
점점 얼굴이 지워져가는 얼굴들이
착한 아이들처럼 나란히 앉아
세월 좋게 주무시고 있었다
덩그러니 코만 남은 얼굴이
아침도 벗고 저녁도 벗고 훌훌 표정도 벗고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어떤 분은 아예
자리를 깔고 하늘 아래 누워 계셨다
신기한 듯 쳐다보는 사람들을
(허공에 주렁주렁 박힌 창백한 눈과 입들을)
본체만체
저들끼리 야속하게
태초의 모습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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