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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人의 詩를 읽다

가을 황사 - 추영희

작성자전재완|작성시간26.06.10|조회수8 목록 댓글 0

가을 황사   

추영희


이례 없는 황사라 했다
아름다운 것들은 쉬이 상처가 드는 틈  
수천 수백만 번 그리다가 지우다가
뿌연 습자지처럼 우려진 바람의 뼈
목마른 것들이 올리는 제의 연기이다
구름을 향해 엎드리던 땅
낙타의 울음으로 태어난 종족의 영역에서
가장 광활한 성지는 바람의 서식처이다
어디에고 길무늬를 그리지만 어디에고 길을 지우는
광야의 오랜 갈망을 휘돌아 모래를 다 읽어낸 바람
사백년을 떠돌던 족속의 외경이다  
젖과 꿀의 무늬 친절하게 물 밴 땅으로
걷어온 바람의 누런 내피가 습자지로 덮인다
근질근질 베끼는 영근 열매와 씨앗의 원본들
술렁거리는 바람의 관 속으로 들어
사막의 경계를 넘어갈 되바람의 예보 한번쯤 가상하면
잘 우린 빛깔로 탁본한 가을 한 뙈기
목마른 낙타의 등에 붙여주지 않겠는가 약속의 땅처럼
바람만 가득 밴 모래, 틈이란 틈으로도 들어맞지 않겠는가
물을 찾아 수만리 헤매는 맨발의 아이들 즐거운 비명으로 놀라
물동이에 넘치도록 담고도 남을 단물의 낙과들 우르르
오병이어 열두 광주리로* 되불어가는 후폭풍을
사하라 모래들이 목마르게 끌어당기는 복선이라 하면 이 황사 속
둥근 지구의 절반들이 너그럽게 섞여지지 않겠는가  
아이의 입속에서 나온 까만 사과씨 하나
황량한 모래기둥 한 곳 광야의 고된 언약처럼
마침내 움트고 있지 않겠는가 몰라 이런 돌연변이로
어려운 땅이 한번쯤 설득되지 않겠는가 몰라

* 보리떡 5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배고픈 군중 오천 명을 먹이고도
    열두 광주리에 가득 남았다는 그리스도가 행한 이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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