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량사
- 나희덕에게
최두석
만수산과 무량사에 가거든
영산전과 부고찹 사이를 걸어요
온 생애를 길에서 보낸 자의 발걸음
잠시라도 흉내 내면서
얼마나 세상이 못마땅했으면
얼마나 속을 끓였으면
영정마저 잔뜩 이마를 찌푸리고 있을까
영산전에서 벙거지 쓴 영정을 보고
생애의 마지막 인연이 수습된
부도밭에서 가서
부도의 깨진 자국 어루만져요
상처 많은 사내의 흉터를 만지듯이
얼마나 많은 강과 시내를 건넜을까
탁류를 거슬러 맑고 차게 자신을 지키려
스스로 유배의 길로 내몬
떠돌이 시인 김시습
만수산 무량사에 가거든
영산전과 부도밭 사이를 걸어요
온 생애를 길에서 보낸 자의 영정과
사리 사이의 거리를 가늠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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