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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人의 詩를 읽다

흔해빠진 독서 -기형도

작성자전재완|작성시간26.06.14|조회수17 목록 댓글 0

흔해빠진 독서

 

기형도

 

휴일의 대부분은 죽은 자들에 대한 추억에 바쳐진다

은 자들은 모두가 겸손하며, 그 생애는 이해하기 쉽다

나 역시 여태껏 수많은 사람들을 허용했지만

때때로 죽은 자들에게 나를 빌려주고 싶을 때가 있다

수북한 턱수염이 매력적인 이 두꺼운 책의 저자는

의심할 여지없이 불행한 생을 보냈다, 위대한 작가들이란

대부분 비슷한 삶을 살다 갔다, 그들이 선택할 삶은 이제 없다

몇 개의 도회지를 방랑하며 청춘을 탕진한 작가는

엎질러진 것이 가난뿐인 거리에서 일자리를 찾는 중이다

그는 분명 그 누구보다 인생의 고통을 잘 이해하게 되겠지만

종잇장만 바스락거릴 뿐, 틀림없이 나에게 관심이 없다

그럴 때마다 내 손가락들은 까닭 없이 성급해지는 것이다

휴일이 지나가면 그뿐, 그 누가 나를 빌려가겠는가

나는 분명 감동적인 충고를 늘어놓을 저 자를 눕혀두고

여느 때와 다를 바 없는 저녁의 거리로 나간다

휴일의 행인들은 하나같이 곧 울음을 터뜨릴 것만 같다

그러면 종종 묻고 싶어 진다, 내 무시무시한 생애는

얼마나 매력적인가, 이 거추장스러운 마음을 망치기 위해

가엾게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과 흙탕물 주위를 나는 기웃거렸던가!

그러면 그대들은 말한다, 당신 같은 사람은 너무 많이 읽었다고

대부분 쓸모없는 죽은 자들을 당신이 좀 덜어가 달라고

 

 

 

 

나의 시 읽기

 

요절한 시인의 시를 읽는다. 이 시를 기-승-전-결 읽어보라. 나가 굵게 음영한 것이나

붉게 처리한 문구와 결국 만나지 않겠는가?

이 시인의 삶에 나는 관심이 없다. 다만, 이 시인이 지향하려는 가치와 목소리에 나는

이끌리는 것인바, 우린 시인의 말처럼  대부분 비슷한 삶을 살다 가는 존재들인 것이다.

그러나 내가 이 시인의 영민한 화두에 놀라는 것은 그가 죽은 자들에 대하여 " 겸손"하다는

이해 불가능한 추억과 "턱수염이 수북한 두꺼운 책의 저자"에 대한 환유이다.

말하자면 " 수부룩한 턱수염이 매력적인 두꺼운 책의 저자"는  바로 블란서의 부지런한 우체부

그 가스통  바술라르가 아닐까 한다.

그가 우체부라서 이 시인이 " 대부분 비슷한 삶을 살다 갔"는 것으로 노래될 수 있지만

- 그 시기 바슐라르가 대한민국 시단에 어떤 긍정적인 효과를 낸 것인가에 대하여는 그 시대의

논문과 주석을 밝힐 필요가 있다고 사료됨-

이 시인의 일상에  매력이란 무엇인가?

무시무시한 생의 거리?

나에게 관심이라곤 없는  후일의 행인같은 거리?

- 말하자면 나에게 관심이라곤 없는 생?

그래, 그러니 시인의 말처럼

그런 시간은 결국" 쓸모없는 죽은 자들의 " 시간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일까?

불행한 삶이란 무엇일까?

 

나는 시인의  흔해빠진 독서처럼

이 시대 가장 불행한 자아는  그 스스로를  헛된 자아로 탕진한  무지가 아닐까?

세상은 아픈데 그 아픔을 모르는 내 병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저녁의 거리가 아닐까?

나는 아픈데  그 아픔도 모르는 그 병이 아닐까?

 

요절한 시인의 삶을 두고

저 하늘에 물어본다

내가 아프면 그 뿐 그 누가 나의 아픔에 울음을 터뜨릴 것인가?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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