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해빠진 독서
기형도
휴일의 대부분은 죽은 자들에 대한 추억에 바쳐진다
죽은 자들은 모두가 겸손하며, 그 생애는 이해하기 쉽다
나 역시 여태껏 수많은 사람들을 허용했지만
때때로 죽은 자들에게 나를 빌려주고 싶을 때가 있다
수북한 턱수염이 매력적인 이 두꺼운 책의 저자는
의심할 여지없이 불행한 생을 보냈다, 위대한 작가들이란
대부분 비슷한 삶을 살다 갔다, 그들이 선택할 삶은 이제 없다
몇 개의 도회지를 방랑하며 청춘을 탕진한 작가는
엎질러진 것이 가난뿐인 거리에서 일자리를 찾는 중이다
그는 분명 그 누구보다 인생의 고통을 잘 이해하게 되겠지만
종잇장만 바스락거릴 뿐, 틀림없이 나에게 관심이 없다
그럴 때마다 내 손가락들은 까닭 없이 성급해지는 것이다
휴일이 지나가면 그뿐, 그 누가 나를 빌려가겠는가
나는 분명 감동적인 충고를 늘어놓을 저 자를 눕혀두고
여느 때와 다를 바 없는 저녁의 거리로 나간다
휴일의 행인들은 하나같이 곧 울음을 터뜨릴 것만 같다
그러면 종종 묻고 싶어 진다, 내 무시무시한 생애는
얼마나 매력적인가, 이 거추장스러운 마음을 망치기 위해
가엾게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과 흙탕물 주위를 나는 기웃거렸던가!
그러면 그대들은 말한다, 당신 같은 사람은 너무 많이 읽었다고
대부분 쓸모없는 죽은 자들을 당신이 좀 덜어가 달라고
나의 시 읽기
요절한 시인의 시를 읽는다. 이 시를 기-승-전-결 읽어보라. 나가 굵게 음영한 것이나
붉게 처리한 문구와 결국 만나지 않겠는가?
이 시인의 삶에 나는 관심이 없다. 다만, 이 시인이 지향하려는 가치와 목소리에 나는
이끌리는 것인바, 우린 시인의 말처럼 대부분 비슷한 삶을 살다 가는 존재들인 것이다.
그러나 내가 이 시인의 영민한 화두에 놀라는 것은 그가 죽은 자들에 대하여 " 겸손"하다는
이해 불가능한 추억과 "턱수염이 수북한 두꺼운 책의 저자"에 대한 환유이다.
말하자면 " 수부룩한 턱수염이 매력적인 두꺼운 책의 저자"는 바로 블란서의 부지런한 우체부
그 가스통 바술라르가 아닐까 한다.
그가 우체부라서 이 시인이 " 대부분 비슷한 삶을 살다 갔"는 것으로 노래될 수 있지만
- 그 시기 바슐라르가 대한민국 시단에 어떤 긍정적인 효과를 낸 것인가에 대하여는 그 시대의
논문과 주석을 밝힐 필요가 있다고 사료됨-
이 시인의 일상에 매력이란 무엇인가?
무시무시한 생의 거리?
나에게 관심이라곤 없는 후일의 행인같은 거리?
- 말하자면 나에게 관심이라곤 없는 생?
그래, 그러니 시인의 말처럼
그런 시간은 결국" 쓸모없는 죽은 자들의 " 시간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일까?
불행한 삶이란 무엇일까?
나는 시인의 흔해빠진 독서처럼
이 시대 가장 불행한 자아는 그 스스로를 헛된 자아로 탕진한 무지가 아닐까?
세상은 아픈데 그 아픔을 모르는 내 병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저녁의 거리가 아닐까?
나는 아픈데 그 아픔도 모르는 그 병이 아닐까?
요절한 시인의 삶을 두고
저 하늘에 물어본다
내가 아프면 그 뿐 그 누가 나의 아픔에 울음을 터뜨릴 것인가?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