無法
오규원
사람이 할 만한 일 가운데
그래도 정말 할 만한 일은
사람 사랑하는 일이다
- 이런 말을 하는 시인의 표정은
진지해야 한다
사랑에는 길만 있고
법은 없네
- 이런 말을 하는 시인의 표정은
상당한 정도 진지해야 한다
사랑에는 길만 있고
법은 없네
나의 시 읽기)
시라는 것을 두고 설왕설래하는 평자들이 많다. 또한 시라는 것의 격물치지를 두고 너무 곡해하는 것이 많다.
그러니 시를 창작하는 이들은 많아도 정작 시를 읽고 다독하는 자들은 드문 것이 세태이다. 아주 잘못된 현상이다.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진 시를 타박하려는 것이 아니라 시라는 고유한 정형의 율격을 왜 대중들에게 속속들이
다가서지 못하고 멀어지게 만드는가?
시라는 것이 알고 보면 촌철살인의 미학이거니와 망령되이 작시를 하는 헛것들의 축제로 인하여 시가 본연의
자리인 인간 마음의 정화작용을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한다.
시는 곧 언어로 쓰인 인문철학이다. 시에 문외한인 일반 독자도 잘 쓴 시인의 시를 읽으면 감동을 하고 다시 읽게
되는 것이다.
문제는 시가 가진 은유와 상징의 메타포를 작시하는 그들이 함부로 특권적인 의식으로 내부 검열을 하기 때문이다.
보라, 소개한 오규원의 시를 읽어가는 독자들이라면 무엇이 이해하기 어려운가? 인간이 인간을 사랑하는 것이야말로
지극한 인간의 본성이 아니겠느냐 말이다. 성경 말씀에 너희 이웃을 사랑하는 말이며 불가에서 말하는 자비를 베풀어라
는 그 어려운 말을 시인은 가장 인간적인 논조로 이럿듯 : 사람이 (태어나) 할 만한 일( 권력욕?) 가운데 (돈도 벌고 싶고, 좋은 여자 만나고 싶고, 오래 살고 싶고, 등등) 그래도 정말 할 만한 일은 " 사람 사랑하는 일이다"라고 말하는 시인의 담담한 고백에 충격을 받는 것이다. 욕망에 젖어 사는 현대인에게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들어 비꼬는 표현인지 모른다. 이런 말을 하는 시인의 표정은 진지해야 한다는 말에는 시가 가진 카타르시스효과를 강조한 표현 같기도 하지만 시를 쓰는 시인이 늘 경계해야 하는 인본주의 - 휴머니즘을 항상 창작의 근본으로 삼아야 한다는 시 쓰기의 명제인 것이다.
사랑에는 길만 있고
법은 없네
이 말은 결국 사랑은 마음 가는 것이지 누가 어떻게 하라는 규칙이나 규율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시인이 공자의 인위사상이 아니라 장자와 노자의 무위사상을 더 높이 치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