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쪽의 집수리 최선( 본명:최란주) 전화로 통화하는 내내 꽃 핀 산수유 가지가 지지직거렸다. 그때 산수유나무에는 기간을 나가는 세입자가 있다. 얼어있던 날씨의 아랫목을 찾아다니는 삼월, 나비와 귀뚜라미를 놓고 망설인다. 봄날의 아랫목은 두 폭의 날개가 있고 가을날의 아랫목은 두 개의 안테나와 청기聽器가 있다. 뱀을 방안에 까는 것은 어떠냐고 수리업자는 나뭇가지를 들추고 물어왔지만 갈라진 한여름 꿈은 꾸고 싶지 않다고 거절했다. 오고 가는 말들에 시차가 있다. 그 사이 표준 온도차는 5도쯤 북상해 있다 천둥과 번개 사이의 간극, 스며든 빗물과 곰팡이의 벽화가 문짝을 7도쯤 비틀어지게 한다. 북상하는 꽃소식으로 견적서를 쓰고 문 열려있는 기간으로 송금을 하기로 한다. 꽃들의 시차가 매실 속으로 이를 악물고 든다. 중부지방의 방식으로 남쪽의 집 수리를 부탁하고 보니 내가 들어가 살 집이 아니었다. 종료 버튼을 누르면서 계약이 성립된다. 산수유 꽃나무가 화르르 허물어지고 있을 것이다. - 2020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당선작 ■ 최선(본명 최란주) 시인 - 전남대 범과대학 졸업 - 현 서울행정법원 근무 ◆ 심사평 (...) '남쪽의 집수리'는 눈에 번쩍 띄는 시였다. 꽃핀 산수유나무를 매개로, 자연과 계절의 변화와 순환에 따른 삶의 이치를 시로 넌지시 일깨우고 있다. 봄이 오면 저절로 꽃망울을 터뜨리는 게 아니라, 산수유나무도 '집수리'라는 부단한 자기 삶의 갱신으로 꽃을 피운다는 것이다. "전화로 통화하는 내내/꽃핀 산수유 가지가 지지직거렸다."라고 생동감 있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이 시는, 삶의 시차와 간극을 좁힐 수도 없고 매양 어긋나기만 하는 현실과 이상 사이의 불화를 체감하면서도, 북상하는 꽃소식에 귀 기울이며 봄이 오는 길목 어디쯤에서 자기 나름의 '남쪽의 집수리'에 골몰하는 인간살이를 적실한 언어로 표현했다. 요란한 시적 장치를 동원하지 않고도 시의 깊이와 무게를 확보한 좋은 예이다. ...중략 이태수 시인. 송찬호 시인 |
* 최란주 시인
2020년 신춘문예로 등단 후 다음 해 생을 마감한 시인, 나는 이 시인과 유사한 삶을 산 여류시인(전남 군산이 고향인 이연주 시인)을 알고 있다. 시인이 쓴 글, 허투루 내뱉지 말라!는 어느 요절시인(강원 춘천이 고향인 진이정 시인)의 경고를 들으며 나는 이 시인의 시에 어떤 귀기가 흐르고 있는지? 분석하고 싶어졌다. 대개의 영민한 시인들이 삶과 대적하여 너무 빨리 늙고 시들어 가듯 최란주 시인의 소개한 남쪽의 집수리라는 시에서 그 조락의 냄새가 시의 분위기를 이끌고 있음을 알게 되리라.
시의 소재는 봄날의 산수유나무다. 겨울을 나고 봄날의 꽃을 가장 서둘러 피우는 나무가 - 시인에게서는 산수유나무라는 것- 그날 산수유나무에는 기간을 나가는 세입자가 있다.
전화로 통화하는 내내 / 꽃 핀 산수유 가지가 지지직 거렸다. -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던가 보다 에서처럼 산수유 가지에서 꽃이 피어나는 자연현상을 지지직거리는 전화 통화음으로 처리하는 표현이 놀랍기도 하지만 , 시인은 산수유 가지가 꽃을 피울 때 (봄의 시작이거나 , 꽃을 피움과 동시에 시작되는 낙화의 예감) 기간을 나가는 세입자가 있다고 본다.
(봄이 왔으니 기간을 나가는 세입자는 겨울이 아닐까? 어림짐작하였으나 틀렸다. 기간을 나가는 세입자는 꽃샘추위가 맹위를 떨치는 삼월, 겨울도 봄도 아닌 그 경계에 선 시간이며, 산수유가 지지직 꽃을 피운 그 시간일 터!
얼어있던 날씨의 아랫목을 찾아다니는 삼월,
나비와 귀뚜라미를 두고 망설인다.
나비와 귀뚜라미는 경동나비엔과 귀뚜라미 보일러라는 우리나라 보일러 업계의 대표적 회사명을
빌려와 얼어있던 날씨의 아랫목을 어떻게 데울까를 고민하는 장면을 이토록 개구지게 고민중인 장면.
봄날의 집수리를 위해
오고 가는 말에 시차가 있음을 알게 되고 그 사이 표준온도가 5도쯤 북상하게 되자
시인은 갈라진 한여름 꿈을 꾸고 싶지 않다며 방안에 뱀을 까면 어떻냐는 수리업자의 말을 거절한다.
오고 가는 말처럼 천둥과 번개 사이의 간극, 물과 곰팡이의 벽화가 그 이 표준온도의 차이만큼
문짝을 7도쯤 비틀어지게 한다.
꽃들의 시차가 매실 속으로 이를 악물고 든다.
여기서 시인이 말하는 갈라진 한여름 꿈을 꾸고 싶지 않다는 말에 주의가 필요하다. 산수유나무는
시를 쓰는 시인에게 있어 기간을 나가는 봄날의 세입자다. 시인은 봄날의 얼어있는 아랫목을
북상하는 봄소식과 같이 구들에다 보일러 배관을 깔고 불을 지펴 얼어있는 아랫목을 데워 꽃들이
더 활짝 개화하기를 바라면서도 정작 산수유나무 가지가 활짝 만개한 꽃을 피워 화르르 허물어지는
것이 또 싫은 것이다. 결국, 시인은 산수유나무가 아닌 자기만의 방식으로 수리업자에게 부탁한 것을
깨닫게 된다.
(중부지방의 방식으로 남쪽의 집수리를 부탁하고 보니
내가 들어가 살 집이 아니었다.)
삶과 죽음의 경계, 시인의 집수리가 어떠할 지
알게된다.
산수유 나무가 꽃을 피우기 시작한 것과 화르르 허물어 지고 있을 것이다는
봄과 가을을 사이에 두고 갈라진 한 여름의 꿈을 시인은 꾸고 싶지 않았다.
중부지방의 방식으로 남쪽의 집수리를 하고나니 내가 들어가 살 집이 못되는 것
산수유 나무가지에 시인이라는 꽃을 피웠으되
너무 서둘러 시인의 이름을 화르르 허물어 버린 시인이여!
부디 그대 계신 천상에서도 살아생전 못다한 아름다운 시를 지어
지상에다 산화공덕하시라!
산수유 꽃나무가 화르르
허물어지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