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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人의 詩를 읽다

석류- 이형기

작성자전재완|작성시간26.06.14|조회수10 목록 댓글 0
석류








이형기




아 가을
석류가 익는다
익어서 반쯤 벌어져 있다


실은 지난봄
어느 시인의 대뇌 좌우반구
그 뇌막에 퍼지기 시작한 작은 물집들
물집 모양의 종양들이 하나 가득 알알이 익어서
석류처럼 절로 벌어진 이 가을


사람들아
와서 그 속을 들여다보아라
정원의 석류나무 그늘에 흔들의자를 내놓고
흔들흔들 바람을 타고 가는 시인의
반쯤 열린 의식의 병소(病巢)
아니 그 꿈의 밀실을


가을이 없는 킴벌리광산의
깊이 감추어진 가을의 속살
눈부신 노다지가 거기 있다
그리고 또 늙은 창녀의
한평생이 담긴 보석 상자가 ... ...,


밤이면 밤마다
머리를 쥐어뜯곤 하던
지난봄부터의 가려움의 발작이
이제는 갈 데까지 가서 도리어
석류처럼 알이 찬 이 결정(結晶)




그러기에 시인은
봄이 아니라 가을에 미친다
맑은 정신으로






- 이형기 시전집 


찬하여 무엇하리?  
다만, 그토록 뜨겁던 여름이 막바지에 이르렀는가?
귀뚜라미 울음소리에 그나마 창틈으로 하늬바람
노크소리가 들리는 이 가을을 알리는 전령같은 이형기 시인의
시를 이 자리에 소개한다.
맑은 정신으로 쓴 시인의  보석같은 시에 왈가왈부 찬을 달아 무엇하랴?
좋은 글은 군더더기 비평마저 거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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