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석류 이형기 아 가을 석류가 익는다 익어서 반쯤 벌어져 있다 실은 지난봄 어느 시인의 대뇌 좌우반구 그 뇌막에 퍼지기 시작한 작은 물집들 물집 모양의 종양들이 하나 가득 알알이 익어서 석류처럼 절로 벌어진 이 가을 사람들아 와서 그 속을 들여다보아라 정원의 석류나무 그늘에 흔들의자를 내놓고 흔들흔들 바람을 타고 가는 시인의 반쯤 열린 의식의 병소(病巢) 아니 그 꿈의 밀실을 가을이 없는 킴벌리광산의 깊이 감추어진 가을의 속살 눈부신 노다지가 거기 있다 그리고 또 늙은 창녀의 한평생이 담긴 보석 상자가 ... ..., 밤이면 밤마다 머리를 쥐어뜯곤 하던 지난봄부터의 가려움의 발작이 이제는 갈 데까지 가서 도리어 석류처럼 알이 찬 이 결정(結晶) 그러기에 시인은 봄이 아니라 가을에 미친다 맑은 정신으로 - 이형기 시전집 찬하여 무엇하리? 다만, 그토록 뜨겁던 여름이 막바지에 이르렀는가? 귀뚜라미 울음소리에 그나마 창틈으로 하늬바람 노크소리가 들리는 이 가을을 알리는 전령같은 이형기 시인의 시를 이 자리에 소개한다. 맑은 정신으로 쓴 시인의 보석같은 시에 왈가왈부 찬을 달아 무엇하랴? 좋은 글은 군더더기 비평마저 거부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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