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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人의 詩를 읽다

정든 유곽에서 - 이성복

작성자전재완|작성시간26.06.17|조회수17 목록 댓글 0
정든 유곽에서






1


누이가 듣는 음악 속으로 늦게 들어오는
남자가 보였다 나는 그게 싫었다 내 음악은
죽음 이상으로 침침해서 발이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잡초 돋아나는데, 그 남자는
누구일까 누이의 연애는 아름다워도 될까
의심하는 가운데 잠이 들었다




목단이 시드는 가운데 지하의 잠, 한반도가
소심한 물살에 시달리다가 흘러들었다 벌목
당한 여자의 반복되는 임종, 병을 돌보던
청춘이 그때마다 나를 흔들어 깨워도 가난한
몸은 고결하였고 그래서 죽은 체했다
잠자는 동안 내 조국의 신체를 지키는 자는 누구인가
일본인가, 일식인가 나의 헤픈 입에서
욕이 나왔다 누이의 연애는 아름다워도 될까
파리가 잉잉거리는 하숙집의 아침에




2


엘리,엘리 죽지 말고 내 목마른 나신에 못 박혀요
얼마든지 죽을 수 있어요 몸은 하나지만
참한 죽음 하나 당신이 가꾸어 꽃을
보여 주세요. 엘리, 엘리 당신이 승천하면
나는 죽음으로 월경할 뿐 더럽힌 몸으로 죽어서도
시집가는 당신의 딸, 당신의 어머니






3


그리고 나의 별이 무겁게 숨 쉬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혈관 마디마다 더욱
붉어지는 신음, 어두운 살의 하늘을
나는 방패연, 눈을 감고 쳐다보는
까마득한 별


그리고 나의 별이 파닥거리는 까닭을
말할 수 있다 봄밤의 노곤한 무르팍에
머리를 눕히고 달콤한 노래 부를 때,


전쟁과 굶주림이 아주  멀리 있을 때
유순한 혁명처럼 깃발 날리며
새벽까지 행진하는 나의 별




그리고 별은 나의 조국에서만 별이라
불릴 것이다 별이라 불리기가 후세
찬란할 것이다 백설탕과 식빵처럼
구미를 바꾸고도 광대뼈에 반짝이는
나의 별, 우리 한족의 별






나의 시읽기




지금도 이 시를 처음 읽었을 때의 충격을 나는 기억한다. 1991년 어느 늦은 가을  국문학도들의 과방에서
담배꽁초가 재떨이에 즐비한 밤색의 테이블에서 전공과목을 마치고 잠시 들렀던 그 시간에 누군가 두고 간
시집이 지금 소개한 이성복 시인의 시였다.
나 역시 시에 초면인 시기였지만 이 시를 쓴 시인 당자 역시 시라는 장르에 충실하기보다 패기 왕성한 젊은
시인이었음을 알겠다.


이 시를 읽으면 누이에 대한 동정으로 시작한다. 그러니까 누이에 접근하는 남자는 일종의 거리감이랄까?
내가 듣는 음악은 누이가 듣는 음악이지만 누이가 듣는 음악 속으로 늦게 들어오는 남자는 싫다고 거부하는
것에 이게 무슨 사연일까?  씨는 도대체 무슨 말을 표현하려는 것일까? 의문이 들기 시작할 것인데


결국 정든 유곽에서의 주제란 누이를 지켜주지 못한 시적화자를 비롯한 그 시대 청춘들의 극일을 하지 못한
한족의 아픔일 것 같다.




목단이 시드는 가운데 지하의 잠, 한반도가
소심한 물살에 시달리다가 흘러들었다 벌목
당한 여자의 반복되는 임종, 병을 돌보던
청춘이 그때마다 나를 흔들어 깨워도 가난한
몸은 고결하였고 그래서 죽은 체했다
잠자는 동안 내 조국의 신체를 지키는 자는 누구인가
일본인가, 일식인가 나의 헤픈 입에서
욕이 나왔다 누이의 연애는 아름다워도 될까
파리가 잉잉거리는 하숙집의 아침에




착하게 살아야지 바르게 살아야지 하는 내 누이의 아름다운 음악은 들려오지 않고
내 누이를 벌목하는 남자의 정체가 드러나는 순간인데, 결국, 시적 화자의 입장에서
그가 누이의 동생이 되어 그 시기를 접신하는 것이라 시적화자인 나는 파리가 잉잉거리는
하숙집에서 잠든 체 조용히 바라보고만 있는 것이다.




이 시의 기승전결로 미루어보면 결국 나라 잃은 아픔에 대한 내적 성찰로 읽을 수 있지만
시 속의 화자는 의심도 많지만 물러터진  유순한 사람인 것이다.


별이라 불리기가 후세
찬란할 것이다 백설탕과 식빵처럼
구미를 바꾸고도 광대뼈에 반짝이는
나의 별, 우리 한족의 별


백설탕과 식빵처럼 구미를 바꾸고도  광대뼈에 반짝이는
미소를 지을 수 있다니 그게 우리 한족의 별이라고 
그 별로 불리는 것이 후세 찬란할 것이라는 모호한 정의 역시
그가 아직은 젊고 경험이 부족한 청춘이었기 때문에 가능하리라 본다.




결국, 이 시를 처음 대하였을 때의 나의 충격이라면  그 시절에 이런 시를 쓰던 이가 이성복이 처음이었기 때문인 것이다.
이제와 이 시를 감상한들 별로 생경할 것도 없지만 시대를 거슬러 저 군사독재 정권하 언론출판결사의 자유가
구속받던 시기에 젊은 시인이 이런 시를 세상에 상재했다는 사실만으로 그는  제법 파닥거린 것이다.




시라는 것이 어떤 것인가?
알지 못했을 당시 나는 왜 이 시인의 시를 읽고 충격을 받았을까?
그에 대한 일말의 단서로 아래의  문장을 들며 시감상을 끝내겠다.




엘리, 엘리 죽지 말고 내 목마른 나신에 못 박혀요
얼마든지 죽을 수 있어요 몸은 하나지만
참한 죽음 하나 당신이 가꾸어 꽃을
보여 주세요. 엘리,엘리 당신이 승천하면
나는 죽음으로 월경할 뿐 더럽힌 몸으로 죽어서도
시집가는 당신의 딸, 당신의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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