삑사리
허형만
점심을 마치고 친구 따라 참 오랜만에 당구장에 갔다.
얼마 만인가, 초크를 묻힌 큐가 가볍다.
내 차례가 되어 독수리처럼 노려보는 공
각도를 재고 조심스럽게 큐를 미는데, 아뿔싸
풀기 없는 손가락에서 큐가 그만 미끄러져 공을 헛치고 말았다.
친구들이 깔깔대며 늙어서 힘이 없다고 놀린다.
그날 당구 점수는 내가 제일 낮았다.
세수 팔십을 앞둔 나이에 돌아보니 큐가 미끄러지듯
그동안 얼마나 많이 미끄러졌던가. 얼마나 많이 헛쳤던가.
용 가는데 구름 가듯 순리 따라 살아온 삶인 줄 알았는데
어쩌다 부르는 노래는 음정이 어긋나고
지는 꽃 앞에서 속울음 한번 제대로 토하지 못하고
그렇게 한 생애가 삑사리 삶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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