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목 (裸木)
최 탁 환
어디론가 가을이 소리 없이 떠나간 뒤
숨길 것 없어 가릴 곳 없어진 나무가
내 곁으로 다가와 나직이 속삭였다
꿈이란 아름답게 채색된 욕망이었음을
그래서 산다는 게 죄다 죄짓는 일이었음을
발아래 수북히 쌓인 낙엽을 보고 알았다고.
얻을 것도 없고 잃을 것도 없는 삶에서
내 것일 수 없는 것을 내 것으로 하기 위해
언제나 내가 나를 불행하게 만들었다고.
그리고 잎 진 나뭇가지의 잔 잔가지까지
투명한 겨울 하늘에 낱낱이 비추어 놓고
가릴 곳 많은 나에게 팔을 벌렸다
그러나 난 덥석 나무에게 안길 수 없었다
그저, 발가벗은 나무 앞에 장승처럼 서서
내 부끄러운 나이테만 들여다보았을 뿐
나는 차마 나무에게 안길 수 없었다
*** '꿈이란 아름답게 채색된 욕망'이었고, '산다는 게
죄다 죄짓는 일이었음을' 알기까지는 발아래 낙엽이 수북
쌓일 만큼의 세월이 지나야겠지요. 나목에게 덥석 안길 수
없음은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듯 부끄러움을 느꼈기
때문이겠지요. 한 점 부끄럽지 않을 삶이 과연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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