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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과 함께 걷고 싶은 '운주사에 눕다'

작성자전재완|작성시간26.06.06|조회수20 목록 댓글 0

시인과 함께 걷고 싶은 '운주사에 눕다'

2006. 2. 8.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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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쪽 차창 가에 앉으십시오/버스가 요동하더라도/불안해 하지 마십시오/길이 나쁠 뿐입니다/고갯마루 올라설 때마다 주의깊게/골짜기를 내려다 보십시오/악 소리나게 놀라운 풍경 있거든/차를 세우십시오/지나치면 중장터까지 가야 합니다"(윤제림 '운주사 가는 법')

시인의 말을 듣지 않고 왼쪽 차창가에 앉았다가 정류장을 놓칠 뻔 했다. 중장터가 운주사인 줄 알았으니 그냥 종점까지 가도 몰랐을 것이다. 운주사 가는 법은 먼저 광주에서 시내버스를 타고 오른쪽 차창에 자리를 잡아야 한다. 차에서 내려 십여분 걸으면 운주사다.

 

"가까스로 여기까지 왔습니다//눈 코 없는 돌부처들/마당 가운데 서서/그냥 비를 맞고 있습니다//못난 제 얼굴에도/세차게 비를 뿌리소서"(정희성 '운주사에 와서')

일주문을 지나자 좌우로 탑과 불상이 전라도말로 허천나게 널려있다. 하나같이 입이 없거나 코가 뭉개졌거나 눈이 파인 못난 얼굴들이다. 부처가 저리 못났으니 한낱 어리석은 인간임에랴. 탑 주위의 땅을 밟으면 푹신푹신한 느낌이 드는데, 그 비밀을 알려주는 시인이 있다.

"운주사 깊은 계곡/그중 아름다운 폐허는/그 잔디밭에 묻혀 버린 계단식 논밭이다/불탑을 둘러보는 동안 우리는/폐허에 안착한 논밭을 밟을 수밖에 없다/노도 없이 바다도 없이/배를 밀고 가는 구름을 우러를 수밖에 없다"(이정록 '운주사 천불천탑')

발걸음이 바쁘다. 작은 불상들을 거느린 탑과 절벽에 기대어 탑을 받들고 있는 불상들. 그 윤곽 없는 희미한 표정들을 좇아 구석구석을 헤집고 다닌다. 사람의 몸 두께만큼 야윈 불상들은 모두 서있거나 벽에 기대어서, 잘린 목을 우는 듯 웃는 듯 바라보고 있다.

"비록 누군가 이미 다녀간,/엿보아버린 낙원이었을지라도/그리하여 그날의 시체처럼 딱딱하고/앙상한 흰 뼈들만 목잘린 석불처럼/나뒹굴고 있었을지라도/우린 잠시나마 그 숲에서 행복했었다"(임동확 '기억만으로 행복한 -운주사 가는 길5')

끝내 이루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을 시인은 행복하게 기억하고 싶었나 보다. 황석영 역시 '장길산'의 끝부분을 마지막 한 개의 불상을 세우지 못해 이루지 못한 미륵세상에 대한 아쉬움으로 장식했다.

지금 이루지 못하면 57억년을 기다려야 하니 인간의 마음이 조급해져 우매하게 되는 것인가. 아니면 사람의 삶이란 원래 그런 것이어서 기다림의 순환속에 있는 것인가. 임영조 시인의 '와불이야기'가 해답이 될 수 있을는지.

"먼 옛날 키 크고 마음 착한 미남 석공과 키 작지만 요염한 공주가 살았는데, 한가윗날 밤 우연히 눈이 맞아 연정을 품게 됩니다. 하지만 두 사람은 유부남 유부녀라 사랑이 깊어질수록 괴로워하자 하늘도 이들의 애틋한 순애보에 감복하여 구름배 한 척을 내려주었습니다. 그런데 하필 비바람이 몰아치던 날 밤, 북두칠성 모서리에 부딪혀 땅에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하늘은 천상의 석공을 내려 보내 천불천탑을 세우면 다시 하늘로 갈 수 있다고 약속했는데, 그만 새벽닭이 우는 바람에 석공들이 놀라 떠나버렸다고 합니다. 그래서 아직도 두 사람은 지금 돌이 된 채 누워 구름배 한 척을 기다리고 있다고......"

 

공사바위에 올라 내려다보면 동쪽 산에는 탑이 있고, 서쪽 산에는 와불이 있다. 뜨는 해는 때가 되면 질 터이고, 쌓은 탑 또한 한 조각 바위가 될 것이다. 와불은 북두칠성이 가장 잘 보이는 자리에 누워 별들의 운항을 지켜보며 사람의 운명을 틀어쥐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운주사 와불님을 뵙고/돌아오는 길에/그대 가슴의 처마끝에/풍경을 달고 돌아왔다/먼데서 바람 불어와/풍경소리 들리면/보고 싶은 내 마음이/찾아간 줄 알아라"(정호승 '풍경 달다')

운주사 와불님을 뵙고 광주로 돌아가는 길. 누군가 이미 다녀간 길 같은, 낯익어서 슬프기도 하고 행복하기도 한, 운주사 그 숲을 또 걷고 싶다.

[북데일리 김연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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