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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북종선(北宗禪)과 남종선(南宗禪)

작성자전재완|작성시간26.06.09|조회수15 목록 댓글 0

중국 북종선(北宗禪)과 남종선(南宗禪)

 

 

중국 당나라시대 5조 홍인(弘忍, 601~674)에게 걸출한 두 제자가 있었다.

 

신수(神秀, 606?~706)와 혜능(慧能, 638~713)이다.

선종은 이들에 의해 북종(北宗)과 남종(南宗)의 두 파로 나뉘었다

 

지역적으로 북종선은 양자강 북쪽 낙양장안 지방에서

활약한 사람들을 통칭하며남종선은 대유령(大庾嶺이남,

즉 양자강 남쪽소위 강남(江南)에서 활약한 사람들을 통칭한다.

 

이러한 나뉨은혜능의 제자 가운데 꽤 공격적인

하택신회(荷澤神會, 684~758)라는 사람이 있어그에 의해서였다.

 

그는 종론을 제기하면서 보리달마(菩提達磨)의 정법은

남종(南宗)의 혜능(慧能)이 계승했으며,

북종(北宗)의 신수(神秀)는 방계라고 주장한 데서 남종북종이 구분됐다.

그리고 거기에는 북종은 남종의 방계라며,

북종을 폄하하려는 의도가 있었다.

따라서 신수의 추종자들은 스스로를 북종이라 하지 않았다.

 

그런데 남북종의 차이는,

신수의 북종이 점교(漸敎)를 주장한 데에 비해,

남종의 혜능은 돈교(頓敎)를 가르진 데에 있다.

이를 통칭 남돈북점(南頓北漸)이라 한다.

 

점교(漸敎)란 중생의 근기에 따라 단계적으로 설법하는 것을 말한다.

 

깨달음의 내용을 그대로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얕은 가르침으로부터 깊은 가르침으로 또는 작은 것에서

점차 큰 것으로 순서를 밟아가며 중생을 교화시키는 방법이다.

순서에 따라 점진적으로 수행해 깨달음에 이르게 하는 가르침으로 점수(漸修)와 같은 맥락이다.

 

그리하여 점수(漸修)는 수행에 있어서 차차 점진하며 한발씩 앞으로 나아가

점진적으로 닦아 깨달음에 이르는 것을 말한다.

깨달음이 벼락 치듯 갑자기 올 수도 있고,

점진적인 수양을 통해서 천천히 올 수도 있다.

 

돈오(頓悟)란 진리를 한꺼번에 깨친다는 말이고,

점수란 점진적으로 수행을 하는 것을 말한다돈오 이전에

점수 과정이 있어야 한다는 주장과돈오 후에 점수한다는 주장이 있다.

 

번뇌의 존재를 인정하는 신수의 북종은 점진적인 방식으로

혜를 통해서 닦아야 한다고 했다.

 

혜능의 남종은 자성(自性), 본성(本性)에 대한 깨달음을 통해서 보면,

혜가 자성에 그 자체로 갖춰진 까닭에

별도의 닦음을 가차(假借)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와 같이 혜능은신수의 계혜 삼학에 대한 가르침과는 다르게,

혜 삼학을 아예 세우지 않는다고 말하면서

자기 성품을 보는 견성(見性)’을 강조했다.

 

전통적인 수행체계인 계혜 삼학에 대해서

<육조단경>의 혜능은 점차적인 점수(漸修)의 입장을 세우지 않고,

급진적인 돈수(頓修)의 입장을 견지했다.

 

왜냐면 계혜 삼학은 이미 자성본성에 갖춰진

공덕이고 자질이기 때문이다.

 

마음의 질서와 평화와 지혜는 개발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우리의 본성에 온전하게 갖춰진 까닭에

발견만 하면 된다는 입장이었다성기(性起)의 입장이다.

 

 

인도불교의 입장이 점수적인 관점을 대변한다면,

중국의 혜능은 돈오를 강조했다.

이런 점에서 <육조단경>의 혜능은 동아시아의

새로운 불교의 탄생을 주도했다고 평가할 수가 있다.

 

그런데 처음엔 신수(神秀)를 중심으로 한 북종선이 우세했다.

 

신수는 100세를 넘길 만큼 장수한 명승이었다.

어려서 제자백가의 서에 통달하고,

652년 낙양의 천궁사에서 구족계를 받았다.

그리고 50세 가까이 돼서 홍인의 문하에 들어갔으며 6년간 사사했다.

홍인의 법을 이은 후 형주 옥천사 등에서 활약해 그의 주변에는

많은 수행자가 모였다고 한다.

 

북종선은 장안과 낙양의 황실 및 귀족의 귀의로 인해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신수는 701년엔 측천무후의 부름을 받아 어전에 들어가서 법문을 했다.

그리하여 그는 삼제(三帝)의 국사라 불릴 정도의 명성을 얻었다

 

북종선은 안록산(安祿山)과 사사명(史思明)의 난이 일어나기 직전까지의

반세기 동안 계속 융성했지만 그 후로는 점차로 쇠약해져서

주류의 자리를 완전히 남종선에 넘겨주게 됐다.

 

신수는 요심수도(了心修道)를 설했는데,

요심(了心)은 자심(自心)을 깨닫는 것이다.

 

그는 마음의 작용을 <기신론>에 의거해

정심(淨心)과 염심(染心)이라는 두 종류의 차별을 두고,

정심(淨心)은 진여(眞如)의 마음이며,

염심(染心)은 무명(無明)의 마음이라고 했다.

마음은 본래 정심과 염심을 갖추고 있다.

만약 진여를 자각해 염심(染心)이 없으면 바로 성인이며,

악업을 따르면 범부로서 삼계에 침륜하게 되는데

이는 진여의 본체를 염심(染心)이 덮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마음을 다스려 망견(妄見)에서 떠날 것을 강조했다.

그런 신수의 저서에 <관심론(觀心論)>, <화엄경소>,

<묘리원성관(妙理圓成觀)> 등이 있었다고 하지만 현존하지 않고,

다만 타 서적에 인용된 단편이 전하고 있을 뿐이다.

 

 

남종선(南宗禪)의 시조는 혜능(慧能)이다.

 

혜능은 속성이 노()씨이며, 638년 지금의 광동성(廣東省)

신주(薪州)에서 태어났다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자

땔나무를 해다 팔아서 모친을 봉양할 만큼 가난하게 살았다.

 

어느 날 장터에서 돌아오다가 어느 집 담 너머에서

<금강경>을 독송하는 것을 듣고 깨친 바가 있어

홍인(弘忍)의 문하에 들어갔다거기서도 8개월간 방아지기로

생활하다가 우여곡절 끝에 홍인의 법을 이었다.

 

이 때 혜능의 나이 24세 때의 일이라고 전한다.

그 후 676년에 <열반경>의 학자로서 이름난 인종(印宗)에게 발견돼

구족계를 받았으며이후 소주의 조계 보림사(寶林寺)

거주하면서 많은 제자를 키우고 선풍을 날렸다.

그의 선법을 기록한 것이 <육조단경(六祖壇經)이다.

 

혜능의 선사상은 돈오견성설(頓悟見性說)이다.

그 구체적인 실천은 무념(無念), 무주(無住), 무상(無相)의 사상이다.

또 반야삼매에 들어가고자 하는 자는 곧 반야바라밀을 닦아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견성(見性)을 하는 것이 반야삼매에 드는 것이라고 했다.

 

혜능은 자성청정심의 자각과 무념무주무상의 반야 실천을 일체화했다.

 

혜능의 제자 하택 신회(神會)는 달마로부터 전래된 선불교의 근본은

여래선(如來禪)이며북종의 좌선관심(坐禪觀心)은 달마의 진의가 아니라고 배척하고,

무념(無念)의 근저에 있는 청정한 자성(自性)을 곧바로 자각하는 돈오견성(頓悟見性)을 주장했다.

 

그리고 신회에 의해선종의 소의경전도 북종의 <능가경>에서

남종에서의 <금강경>으로의 전환이 이루어졌다.

 

 

다음은 이가량 님의 글을 옮긴 것이다.

 

역사가 승자의 기록임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래서 승자의 기록은 실제 이상으로 부풀려지기도 하며,

반면에 패자의 역사는 실제와 다르게 왜곡되기도 한다.

 

한국 선불교(禪佛敎역사에서 혜능(慧能, 638713)의 전통을 계승한

남종은 승자이고신수(神秀)의 북종은 패자라 할 수 있다.

그래서인지 북종선(北宗禪)에 관한 기록은 찾아보기 힘들며,

남종선(南宗禪위주의 선불교 역사에서 소외되고 때로는 폄하되기도 한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북종선 역시

선불교의 정체성을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선불교의 본질은 마음이 부처임을 깨치는 데에 있다.

북종선 역시 이 본질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다만 북종선과 남종선의 차이는

가능태(可能態)와 현실태(現實態)의 차이라 할 것이다.

우리는 모두 부처가 될 수 있는 가능성(佛性)을 지니고 있으므로

열심히 수행하면 부처가 될 수 있다는 입장이 북종이라면,

남종은 우리가 이미 부처임을 깨치는 것(見性)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이를 한마디로 표현하면 장래의 부처와 이미 부처의 차이라고 할 것이다.

 

이러한 차이는 선불교가 발생하기 이전에도 있었다.

천태의 성구설(性具說)과 화엄의 성기설(性起說)이 바로 그것이다.

 

불성()이 갖추어져(있으므로 수행을 통해 부처가 될 수 있다는

입장이 천태사상이라면우리는 이미 불성()이 실현된(세계에

존재한다는 입장이 화엄사상이다.

 

천태와 화엄은 선불교가 등장하기 전까지

중국의 교학불교에서 양대 산맥을 구축하면서 많은 발전을 이루었다.

이러한 가능태와 현실태의 차이는 선불교가 발전하면서 유사하게 전개된다.

 

한국에 들어온 선불교가 남종선 중심으로 발전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북종선의 역사와 가치를 간과해서는 안 된다

 

엄연히 북종선은 지증(智證, 824~882) 대사 도헌(道憲)까지 이어졌으며,

그는 구산선문(九山禪門가운데 한 곳인

희양산문의 개조로 평가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혜은(慧隱)으로부터 북종선을 배운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런데 그 인연은 좀 더 거슬러 올라가는 것 같다.

부석사에서 도헌에게 화엄을 가르친 범체(梵體)

숭업(崇業화상으로부터 신수의 북종선을 전해 들었다고 한다.

따라서 도헌은 이미 북종선에 대한 이야기를 범체로부터 듣고

혜은에게 가서 이를 전수 받은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렇다면 도헌이 당시 유행하던 남종선이 아니라

북종선으로 마음이 간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자세한 내용이 전하지 않아 이를 쉽게 판단할 수 없지만,

비문에 남아있는 몇 가지 기록 등을 통해 그의 속내를 헤아려보고자 한다.

 

도헌의 비문을 쓴 최치원(崔致遠)은 독특한 방식으로

그의 삶을 기록했는데육이(六異)와 육시(六是)가 바로 그것이다.

여섯 가지 기이한 행적과 바른 일을 중심으로 그의 생애를 정리한 것이다.

 

이 가운데 다섯 번째 기이함(異五)으로

그가 꿈속에서 보현보살을 친견한 내용이 전하고 있다.

보현보살이 꿈속에서 도헌의 이마를 어루만지고 귀를 끌어당기면서

고행을 실천하기는 어려우나 이를 행하면 반드시 성공할 것이다.’라고 말했다는 내용이다

 

이 꿈을 계기로 도헌은 명주옷을 입지 않았으며,

실이 필요할 때는 명주실이 아닌 반드시

삼나무나 닥나무에서 나온 것을 사용했다뿐만 아니라

어린 양가죽으로 만든 신을 신지 않았으며,

새의 깃으로 만든 부채나 털이 들어간 방석을 사용하지 않았다.

이런 그를 보고 평소 별다른 문제의식 없이

풍족한 생활을 누렸던 승려들은 스스로 부끄럽게 여겼다고 한다.

 

이 이야기를 통해 도헌의 청빈한 수행생활을 엿볼 수 있다.

 

그에게 있어 고행은 그저 자신의 몸을 괴롭히는 것이 아니라,

계율과 무소유의 실천을 통해 자신의 불성을 드러내는 수행이었다.

아무리 자신의 본질이 부처라 하더라도 철저한 수행을 통하지 않으면

불성이 드러날 수 없는 법이다자신이 이미 부처라는 것만을 믿고서

막행막식(莫行莫食)하는 승려들에게 이는 커다란 귀감이 됐다.

 

계율을 지키며 선정과 지혜를 닦는 수행을 통해

자신의 불성이 드러날 수 있다는 것이것이 북종선의 가치와 의미이다.

도헌이 북종선에 마음이 끌린 이유도 비록 조금은 느릴지 몰라도

끊임없이 정진하는 수행정신에 있지 않았을까싶다

 

북종선에는 닦음만 있고 깨달음이 없다는 평가는 너무 지나치다는 생각이다.

견성(見性)은 북종선이나 남종선 할 것 없이 모두가 지향하는 목표이기 때문이다.

 

달마(菩提達磨, ?~528) 이래로 선불교는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標月之指)에 머물고 있는 우리의 시선을

직접 달로 돌이키는 전통을 이어왔다.

 

손가락에 집착하지 말고 직접 달을 보라는 뜻이다.

달은 곧 본래가 부처인 우리들 마음을 상징한다.

이는 북종선이라고 예외일 수는 없다.

 

비문에는 이와 관련해 흥미로운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도헌이 헌강왕의 요청으로 경주에 갔을 때 왕이 마음()에 대해서

물은 적이 있다이때 선사의 답변이 매우 인상적이다.

 

이것이 곧 이것이니(是卽是), 더 이상 할 말이 없습니다(餘無所言).”

 

앞의 이것()은 달을 가리키며 뒤의 이것은 마음을 가리킨다.

이를 풀이하면 달이 곧 마음이니 다른 말이 필요 없다는 뜻이다.

둘이 대화를 나눌 때 마침 밝은 달이 고요한 호수에 비추고 있었던 모양이다.

이 모습을 보고 도헌은 왕에게 마음이란 말로 표현할 수 없으며,

직접 깨쳐야 한다는 것을 달을 비유해서 보여주었던 것이다.

이에 감동한 왕은 이렇게 말한다.

 

부처님께서 꽃을 들어 보이신 것과 선사의 말씀이 진실로 다르지 않습니다.”

 

이를 계기로 왕은 도헌에게 예를 갖추어 망언사(忘言師)로 삼았다고 한다.

말을 떠난 마음의 이치를 깨친 스승이라는 뜻이다그랬다.

도헌은 닦음만 있다고 폄하됐던 북종선을 공부하고 마음을 깨친 인물이었다.

 

북종선은 닦음만 있고 깨침이 없으며반대로 남종선은 깨침만 있고

닦음이 없다는 주장은 편견에 지나지 않는다

 

물론 남종선의 전통에서

유각무수(有覺無修)’와 같은 얘기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는 닦음이 필요 없다는 말이 아니라 우리 존재의 실상이

본래 부처임을 깨쳐야 함을 강조하기 위한 방편일 뿐이다.

북종 역시 마찬가지이다깨침과 닦음돈오(頓悟)와 점수(漸修)

서로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다닦음 없는 깨침이나

깨침 없는 닦음은 있을 수 없는 법이다.

 

도헌이 활동했던 당시에도 북종과 남종의 차이에 대한 인식이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북종선의 길을 걷고 있는 자신을 두고

이러저러한 평가를 내리는 상황이 못내 아쉬웠던 모양이다.

비문에는 이런 내용이 전하고 있다.

 

외로운 구름을 두고 남과 북을 정하지 말라.”

 

외로운 구름(孤雲)은 도헌을 가리킨다.

외로운 구름처럼 청빈한 수행자로 살았던 자신의 삶을 두고

남종이니 북종이니 규정해 논하지 말라는 뜻이다.

흥미로운 것은 최치원의 호 역시 고운(孤雲)이란 사실이다.

어찌 보면 도헌은 남종이니 북종이니 하는 관념에

얽매인 인물은 아니었던 것 같다그저 단순하게()

자신의 마음을 본(것뿐이다그것이 곧 선()이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혜능이 홍인에게 던졌던 물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사람에게는 남과 북이 있지만불성에도 남과 북이 있습니까?’”

이 말은 불성에는 남종과 북종이 있을 수 없으며,

오직 사람에게 남종과 북종의 차이가 있을 뿐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한쪽에 치우친 나머지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를 일이다.

사람에게는 각자의 성향이나 근기에 따라 빠름과 느림의 차이가 있지만,

목표와 방향이 옳다면 둘의 차이는 중요한 것 같지 않다.

 

정상을 향해 급경사로 빨리 오르는 사람도 있지만,

조금 늦더라도 완만한 경사를 택해서 돌아가는 사람도 있다.

어느 길을 가더라도 방향이 틀리지 않았다면

둘은 정상에서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출처블로그 아미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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