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책읽기
6.16
자기가 쓴 글들을 읽을 때마다, 문장과 문장 사이의 거리가 매우 멀
다는 느낌을 받곤 한다. 문장들 사이의 침묵이 무서워진다.
6.28
세계의 문학 40호에 실린 김영호의 다산학 연구사 서설과 임철
우의 볼록거울을 흥미 있게 읽었다. 김영호는 다산의 조선시 선언
이 그렇게 중요한 것이었나를 되묻고 있으며 - 그것은 김만중의 자
국어 선언과 비교될 수 있겠다-, 다산 문학의 민중문학적 성격이
논자들의 주장과는 다르게 그렇게 선명하지 않다고 조심스레 항변
하고 있다. 음미해야 할 주장이다. 임철우의 소설은 학원 사태를 더
까발려놓은 소설이다. 최인훈의 창의 이미지가 볼록거울로 변모된
어 나타나고 있다. 이미지의 끈질김.......
김현 선생의 행복한 책읽기를 다시 찾아 읽는다. 선생의 날카로운
그러나 다독의 습관, 책을 읽는다는 것이 선생의 사후, 이 시대
과연, 문학을 전공한 이라도 쉽지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선생의 책읽기를 다시 탐독하기로 한다. 물론, 모든 사물
사건에는 작용과 반작용의 불문율이 따른다. 그게 삶이다.
나는 선생의 글을 통해 다시, 나의 글쓰기에 대한 자세를 다독이려
한다.
김영효에 대한 변론 한 가지
그러니까 다산이 조선의 성리학에 있어 주리냐 주기냐라는 이분법적인 갈라 치기가 아닌
김형효의 입장에서는 다산이 실학의 선구자라는 교과서적인 광고가 마땅하지가 안았음이라.
이는 두 개의 논어를 쓰신 한영조 선생의 입장을 들어보면 이해가 되리라 본다.
즉 , 여기서 김현선생이 김형효 선생의 논리를 숙독한 사실에 만족한다. 한형조 선생의
두개의 논어 속 다산은 지극히 실사구시적인 겉모습에 반하여 정작 그의 이데올로기는
퇴계선생의 형이상학적인 주리론의 함정( 온고이지신@ 술이부작)에서 결코 벗어나지 못했다.
그게 조선이란 지식인들의 세상을 보는 눈의 아집이자 뼈아픈 한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