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광장
서문
'메시아'가 왔다는 2천 년래의 풍문이 있습니다.
신이 죽었다는 풍문이 있습니다. 신이 부활했다는 풍문도 있습
니다. 코뮤니즘이 세계를 구하리라는 풍문도 있습니다.
우리는 참 많은 풍문 속에 삽니다. 풍문의 지층은 두껍고 무겁
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역사라고 부르고 문화라고 부릅니다.
인생을 풍문 듣듯 산다는 건 슬픈 일입니다. 풍문에 만족지 않
고 현장을 찾아갈 때 우리는 운명을 만납니다.
운명을 만나는 자리를 광장이라고 합시다. 광장에 대한 풍문도
구구합니다. 제가 여기 전하는 풍문에 만족지 못하고 현장에
있으려고 한 우리 친구의 얘깁니다.
아시아적 전제의 의자를 타고 앉아서 민중에게 서구적 자유의
풍문만 들려줄 뿐 그 자유를 '사는 것'을 허락지 않았던 구정권하
에서라면 이런 소재가 아무리 구미에 당기더라도 감히 다루지 못
하리라는 걸 생각하면 저 빛나는 4월이 가져온 새 공화국에 사는
작가의 보람을 느낍니다.
- 새벽, 1960년 11월
@ 최인훈씨의 소설 광장을 다시 읽는다. 그의 소설을 처음 찾아 읽은 기억이
대학입시를 준비할 때의 단골 기출문제라 겉핧기 식으로 암기한 것이 전부였다.
광장에 대해 제대로 읽은 기억이 군대를 마치고 복학생이 되어 학교 도서관을
기웃거릴 그 시절이었다. 내 기억이 틀리지 않다면 1995년~96년 무렵이다.
그 시절 나는 최인훈 작품에 빠져 광장- 회색인- 서유기 등등의 소설집을 찾아
읽었다.
소설 광장의 매력이라면 주인공 이명준의 비참한 일대기에 대한 작가 최인훈의
애착일 것이다.
1973년판 서문의 글을 읽은 독자라면 필자의 그 심정을 조금은 이해가 가리라 본다.
잠시 1973년판 서문의 글을 소개한다.
나는 12년 전, 이명준이란 잠수부를 상상의 공방에서 제작해서, 삶의 바다 속에 내려보냈다.
그는 '이데올로기'와 '사랑'이라는 심해의 숨은 바위에 걸려 다시는 떠오르지 않았다.
여러 사람이 나를 탓하였다. ....(중략)
이명준 이후로 나는 연이어 적잖은 수의 잠수부를 같은 해역에 내려보냈다. 말할 것도 없이,
지금이라면 이명준이 혹시 목숨을 보전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을 만큼의 심해 정보를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슬프다, 그런들 한번 간 사람에게야 무슨 쓸모가 있겠는가. 그저 마음을 달래볼 수 있는 한 가지 길은,
지금 내가 가지고 있고, 잘 쓰기만 하면 숱한 잠수 벗들에게 유익할 수 있는 심해 정보의 쌓임이 이명준에서
비롯되었고, 그는 안내 없는 바다에 내려간 용사였음을 다짐하는 일이다.....(중략)
이명준, 나의 친구여. 그제나 이제나 다름없는 나의 우정을 받아주기를. 그리고 고이 잠들라 (1973년 7월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