一以貫之

작성자전재완|작성시간26.06.13|조회수19 목록 댓글 0

 

一以貫之




전재완




세상을 살아가는 자세이자 안목이다. 하나의 철학을 가지고 세상을 초월하기!
그게 일이관지일 것이다. 그러니까 사물을 대하는 자세이거나 세상을 마주하는 
입장에서 나만의 안목, 나만의 생각이나 주관(이즘)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휘둘리며 살면 안 된다는 뜻이다.
그러나 우리는 얼마나 자주 줏대를 잃고 흔들거리는가 말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나 자신에 대한 심사숙고다. 고상한 옛님의 말씀을 차용하자면
수기치인일 것이다. 그렇다. 나를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수기란, 결국 나를 다스리는 
능력이다.
소크라테스가 너 자신을 알라라고 한 말이 떠오른다.
나를 알고 나를 다스릴 줄 알게 되면 사물의 격물치지가 드러나게 되는 것이며
일이관지 치국 평천하가 되는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그러나 문제는 따른다.
그 마음의 병의 근원을 밝히지 않은 이상 일이관지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그 마음의 병을 치유하는 것이 우선일 것이다.
그 마음의 병이란 무엇일까?
신독이다.
나를 다스릴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남이 나를 어떻게 볼까?  이렇게 했을 때 누군가가 혹시 나에게 태클을 걸지나 않을까?
따위의 불편한 마음의 동요.  일상을 살아가며 일상인들이 흔히 범하기 쉬운 그런 마음의 
어리석은 가출을 신독하며 밧줄로 꽁꽁 묶어야 할 것이다.
만물일체유심조라는 불가의 조언에 귀를 담으시라.
그렇다. 내가 누구인지를 먼저 파악할 필요가 있다.
나를 알아야 비로소 타자에 대하여 살펴볼 여유가 생길 것이다.
모든 것이 나로 시작하여 나로 끝난다는 이 단순하지만
일이관지의 역설에 대해 여러분들이 가슴에 손을 얹고 신독 하여 주길 바란다.
예나 지금이나 변한 것은 풍습이다.
그러나 풍습이 변한 것 외 우리의 모습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
그 시절이나 지금이나 불완전한 꿈에서 회복되지 못한
현실의 사상누각은 변함이 없지 않을까?
나에 대한 자각(반성)이 더더욱 필요한 시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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