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산마애삼존불
조 근 호
극락으로 향하는가
돌계단을 오른다.
번뇌가 번뇌를 낳고
자비가 자비를 낳는다는데
누천년 이어온 숨결 꽃이 되어 피어라.
백제의 역사가 그대 품에 있었나니
빙 둘러 정(釘)자국이 흉터로 남아 있어
상처는 뼛속까지 박혀
생가슴을 후비는데,
잘게 썰린 햇살마저 바람결에 날리면서
빈 골짝 정적 앞에서
무슨 할말 있으랴.
떨어진 곡식 낱알에도
벅찬 계절은 오는 것.
늘 살아있는 눈빛
아미타 여래시여.
설산(雪山)까지 녹아내릴 미소로
시방(十方)을 밝히시며
해 도는 방향 따라서 억조창생 살피소서.
*** 부산대 임종찬 교수의 평입니다
둘째 연을 시조답게 장 구분을 하면 이렇게 된다.
백제의 역사가 그대 품에 있었나니
빙 둘러 정자국이 흉터로 남아 있어
상처는 뼛속까지 박혀 생가슴을 후비는데,
잘게 썰린 햇살마저 바람결에 날리면서
빈 골짝 정적 앞에서 무슨 할말 있으랴.
떨어진 곡식 낱알에도 벅찬 계절은 오는 것.
표기를 위와 같이 안해서 문제가 생긴 것이 아니라
시조로서 완결성을 포기했기 때문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상처는 뼛속까지후비는데'는 詩意(시의)를 마무리해야하는
종장 구실을 못하고 오히려 다음 행으로 연결되면서 종장
구실은 '빈 골짝 정적 앞에서 무슨 할말 있으랴'가 하고 있고
그 뒤 행 '떨어진...'은 앞 행들과의 무슨 연계성을 가지는지
모를 말이 불쑥 나타났다. 2수를 연합한 시조형태를 시도하려
했다면 그것은 시조와는 다른 시 형태일 뿐 시조라고는 할 수
없는 것이다. 시조는 시조형태상의 완결성이 드러나지 않는다면
시조랄 수가 없는 것이다. 이러한 점을 경계한 박제천 시인의
다음과 같은 말은 시조시인들이 의미심장하게 새겨들어야 할
말이라 본다.
'이미 몇 백년 전에 씌어진 황진이의 시조처럼 종장에서
확연한 시적 전환과 결말의 묘미로써 시조의 미학적 특성을
살리지 못하고 초장, 중장의 내용이 전환의 의지없이 종장으로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면 이것은 현대시에서의 3번째 행의 역할
과 다를 바 없다... 연시조 역시, 단형의 서술 길이가 갖는
탄력성을 잃어버리고 평면화되어버린 작품들을 많이 보게 된다.
記寫(기사) 형식마저 자유롭게 풀어 쓴 경우 형태상으로 현대시
와의 차별성이 없어진데다 그 내적인 의미체계마저 허물어저,
이것이 시인지 시조인지 도무지 분간할 수 없는 경우도 있다...
현대시조가 자유시를 대신하여 전통적 율격을 계승해야 한다는
의무감을 자각하고 있다면, 이제는 고시조가 보여준 의미의
완벽한 표현체제에 주목, 현대적으로 복원해내지 않으면 안된
다고 본다.'
연작시조가 이러한 문제성을 가지고 있음을 간파한 이호우 시인
은 즐겨쓰던 연작시조를 포기하고 단수 위주로 일관하는 작품세
계를 보여준 것은 의미있는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