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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제4회 계간 파란 신인상 시 부문 당선작

작성자전재완|작성시간26.06.20|조회수22 목록 댓글 0
문예지) 아스마라 / 장대승


아스마라 / 정대승


국경을 넘어 우리가 이곳에 도착했을 때 멈춘 시계탑 앞에서 광장 가득한 사람의 행렬을 바라볼 때 더는 숨을 내뱉을 필요가 없다고 느낄 때


당신은 우체국에 들어가 금빛 보에 둘러싸인 모래시계를 들고나왔다 이게


내가 여기 있다고 믿을 수 있는 시간이라고


한국의 고원은 대체로 배추밭인데 이곳에는 아름다운 근대식 건물과 극장이 있다 상영 중인 영화는 없지만 이 이름 모를 영웅을 기리는 특별전이 열리고 있었고


두 세기 전의 혁명가였어
춤을 참 잘 췄다고 당신이 말할 때


모래바람과 함께 귓속에 질문이 스민다 언제부턴가 당신은 나와 죽을 고비를 몇 차례 넘겨 왔고


우리는 서로의 국적도 모른 채 밤하늘 보며 소원을 빌었다 가족, 없고 건강, 그럭저럭 빛, 그건 왜


사랑을


말할 때쯤 당신은 코를 골았다 나는 모닥불 타오르는 사막 한가운데서 나무에 묶인 낙타처럼 하염없이 아침을 기다렸다 당신이 눈을 떴을 때 맑은 하늘이 나타나길 바라는 마음으로


발을 아무리 뻗어도 중심부는 경계 지역이라 들어갈 수 없었다 뿌리를 도려낸 나무를 바라보다가


아픈 걸 알면서도 바깥을 향해 돌아서 걸어야 했다


손이 따뜻한 사람이라 좋았어


말하는 당신을 따라 이어지는 긴 행렬 모두 다른 인종 다른 눈동자 다른 언어를 썼지만


알고 있었다
돌아갈 사람이 누구인지에 대해


마음을 가진 사람과
마음밖에 남지 않은 사람에 대해


나는 문득 당신의 이름이 떠올라 소리치고 싶었는데


모래시계가 멈춰 있다
그렇다면 무엇이 귓가를 간지럽히는 걸까


강을 거슬러 오르니 숲이 나왔다
나무에 상처를 내며 잊히지 않을 길을 걷는다 까마귀 떼가 하늘을 어둑하게 만들고


사람들이 강에 뛰어들고 있다 솟구쳐 오르는 물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보는 내게 처음 보는 할머니가 다가와 나 일곱 살 때는, 말하며 앳된 웃음을 짓는다


그 웃음 너머 어두운 숲속에서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2024 제4회 계간 파란 신인상 시 부문 당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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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찾아본 바로는, 이 시의 제목인 '아스마라'는 아프리카 에리트레아의 수도라고 합니다. 고원 지대에 위치한 이 도시는 이탈리아 식민지 시대의 근대 건물이 남아 있고, 독립 혁명과 전쟁의 흔적이 겹쳐 있는 곳이라고 하네요. 시 속 화자와 '당신'이 국경을 넘어 도착하고, 멈춘 시계탑과 모래시계, 근대식 건물과 혁명가의 흔적을 바라보는 장면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시간과 존재, 정체와 생존을 증명하는 상징적 공간처럼 느껴집니다.


아스마라를 배경으로 한 이유는, 시가 다루는 '떠돌이 인간의 삶'과 '경계 속 존재'라는 주제를 역사적 현실과 자연스럽게 연결하기에 적합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이 시를 읽으면서, 아스마라를 한국적 공간으로 상상하면 군산, 부산, DMZ·파주가 섞인 이미지가 떠올랐습니다. 군산은 근대 건물이 남아 있는 시간의 흔적과 멈춘 듯한 도시 분위기를, 부산은 전쟁과 피난으로 사람들이 모여든 생존의 공간을, DMZ와 파주는 들어갈 수 없는 중심과 국경이라는 의미를 가진다고


이 세 공간의 특징을 혼합하면, 시 속 아스마라처럼 시간이 멈춘 듯하면서도 경계와 이동의 흔적이 남아 있는, 동시에 사랑과 생존이 교차하는 공간을 상상할 수 있습니다. "이게 내가 여기 있다고 믿을 수 있는 시간이라고"라는 모래시계 장면은, 이런 한국적 공간과 겹쳐지면서, 시간과 존재의 증거라는 감각을 선명하게 만들어주는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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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에서 등장하는 ‘당신’은 단순한 인물이 아니라, 화자의 삶과 감정을 이어주는 온기와 존재의 상징으로 읽힙니다. 화자가 의지하고 기억하는 존재로서의 ‘당신’은 사람일 수도, 혹은 모래시계나 모닥불 같은 사물일 수도 있으며, 독자에게도 화자의 감정과 경험을 따라가게 하는 중심축 역할을 합니다.


개인적으로 몇 군데 유심히 보면 좋겠다고 생각되는 구절은, 먼저 ‘이게/ 내가 여기 있다고 믿을 수 있는 시간이라고’처럼, ‘이게’에서 줄 바꿈을 하고 한 줄을 띄워 호흡을 조절한 장면인데요. ‘이게’라는 한 단어에 주목하게 하면서, 모래시계가 화자의 존재와 시간을 상징한다는 느낌을 줍니다.


또 ‘두 세기 전의 혁명가였어/ 춤을 참 잘 췄다고 당신이 말할 때’ 같은 장면은, 대화가 갑작스럽게 끼어들지만 어색하지 않거든요. 아마도 화자의 기억과 ‘당신’과의 순간이 겹쳐 있는 심리적 흐름 덕분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런 구조 덕분에 역사적 이미지와 개인적 경험이 한 장면 안에서 동시에 살아납니다.


마지막으로 ‘사랑을’이라는 세 글자를 한 연으로 처리한 장면도 흥미롭습니다. 이렇게 하면 순간적으로 속도가 늦춰지면서, 감정이 독자 마음에 단독으로 각인되죠. 뒤이어 코를 고는 ‘당신’의 모습과 대비되면서, 현실과 감정이 함께 존재하는 느낌도 생기고요.


그리고 초반에 화자가 말하듯, ‘당신은 우체국에 들어가 금빛 보에 둘러싸인 모래시계를 들고나왔다’가 등장하고, 후반부에는 ‘모래시계가 멈춰 있다 / 그렇다면 무엇이 귓가를 간지럽히는 걸까’라는 장면이 나옵니다. 처음에는 모래시계가 화자의 현재와 존재를 증명하는 도구로 등장했다면, 나중에는 멈췄다고 하는데요, 이건 시간과 존재의 불확실성을 보여주는 거라 생각합니다.


귓가를 간지럽히는 것’이라는 표현은, 시적 공간에서 직접적인 사건보다 화자의 내적 감각과 질문, 불안과 사유를 강조하는 장치로 볼 수 있겠네요. 즉, 모래시계가 들려오는 소리가 아니라, 멈춰버린 시간 속에서 화자가 느끼는 존재와 감정의 떨림을 독자와 함께 느끼게 한달까요. 다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바로 여기부터 이어지는 강과 숲, 할머니, 울음소리 장면은 전반부와의 서사적 연결이 약해, 화자의 이동과 경계, 존재에 대한 자연스러운 감각이 다소 희미해질 수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일부 독자에게는 후반부의 이 장면이 독립적으로 느껴지거나 중심 이미지가 흐려지는 듯한 인상을 주지 않을까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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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심사자는 이 시의 어떤 점이 눈에 들었을까요? 제가 지난날의 해설에서도 말했듯이 심사자가 단순히 이미지나 표현 기교 때문에 뽑지는 않았을 겁니다. 제 개인적 견해로는 시의 마음을 움직이는 구절, 특히 ‘손이 따뜻한 사람이라 좋았어라는 한 줄에서 심사자는 마음을 잡혔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는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국적도 모른 채 함께 생존을 이어가면서, 거창한 사랑 대신 작은 온기와 기억이 남는 장면이 인간적인 진실과 감정을 그대로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심사자들은 흔히 ‘독자를 끌어당기는 구체적인 순간’에 마음이 흔들리기 마련인데, 이 구절이 바로 그런 순간이거든요.


또 다른 심사 포인트로, ‘돌아갈 사람이 누구인지에 대해// 마음을 가진 사람과/ 마음밖에 남지 않은 사람에 대해’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이 장면은 단순한 여행 묘사가 아니라 인간 존재의 경계와 운명을 보여주는 순간처럼 느껴집니다. 돌아갈 곳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 삶을 이어가는 사람과 기억만 남은 사람의 대비가 선명하게 드러나면서, 심사자는 화자의 감정과 시가 담고 있는 인간적 고뇌를 직감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 시는 단순한 서사가 아니라 존재와 감정의 진실을 보여준다’는 판단으로 끌렸을 겁니다.


심사자가 그렇게 끌렸다면 이후는 일사천리입니다. 이 시의 장점이라 할 수 있는 이미지와 상징이 화자가 의도했던 것보다 더 깊이 있게 보일 거라는 말이죠. 이를테면 모래시계, 사막의 모닥불, 뿌리를 도려낸 나무, 강을 거슬러 오르는 장면, 까마귀 떼와 숲속 울음소리 등은 심사자에게 시각적이고 감각적이면서 동시에 심리적 긴장을 만들어 냅니다. 한국적 공간으로 읽으면, 군산의 근대 건물, 부산 항구, DMZ의 경계선이 자연스럽게 겹쳐서, 시간·경계·생존의 이미지가 더욱 구체적으로 다가온다는 말이죠.


마지막으로 하나 더 덧붙이자면, 이 시처럼 현대시의 이미지와 상징, 감각이 풍부할수록 우리는 대개 난해하게 느낀다는 겁니다. 하지만 읽자마자 바로 이해되는 전통 서정시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사유(궁리나 고민)의 시간을 가진다는 건 가장 큰 장점일 겁니다. 그러니 괜찮은 문예지 당선작을 접할 때는 한 걸음 물러서서 천천히 시간을 들여 읽고 마음을 열 필요가 있습니다. 여행에 관한 글을 읽으면 덩달아 떠나고 싶듯이, 결국 이 시는 한 편의 역사적·감각적 여행이면서, 동시에 존재와 인간적 온기에 관한 사유를 제공하거든요. 그러한 사유가 또 다른 창작의 힘으로 연결되는 거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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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연한 봄입니다. 제가 자주 다니는 산책길에도 조만간 벚꽃이 만발할 기세입니다. 이 좋은 봄날, 마음껏 울고 웃으며 서로 사랑하시길요. 지금의 감정은 내년에 맞이할 봄과는 또 다른, 한 번뿐인 봄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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