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운동서원 경자바위에 대한 역사적 고찰 전재완 안동에서 영주를 지나 소백산 입구로 드는 길목에 소수서원이 위치하고 있다. 알다시피 역사에서는 우리나라 최초의 사립대학이라고 불린다. 서원의 시초이고 보면 조선 성리학의 맹아가 바로 이곳 영주 소수서원에서 비롯되었다 하여도 무방하다. 다만, 이 서원의 건립배경을 두고 우리가 순진하게 역사를 통하여 배워온 인재양성 이니 따위의 어불성설에는 침묵하기로 한다. 왜 이 곳이 최초의 사액이 될 수 밖에 없었는지를 밝히는 것이 필자의 목적인 바 필자는 주세붕이 풍기군수로 와서 바로 서원건립을 시도한 배경에 그 이전 이 지방에서 일어난 끔찍한 민간인 학살에 대한 역사 지우기의 의도가 작용하지 않았을까? 추론해보는 것이다. 주세붕이 백운동 서원을 건립할 시기의 전해지고 있는 전설이 있는데 요는 이렇다. 원래 이 터는 숙수사라는 신라시대 설립된 오래된 절이 있던 자리였다. 이 터를 정리하고 여기에 서원을 세웠다는 것으로 이것은 조선왕조가 내세운 지배이데올로기의 하나인 승유억불정책이 최초로 시행되었다는데 그 의의가 있다. 새로운 통치이념인 유교를 중앙이 아닌 지방으로 옮겨 이식하는 최초의 사건이 백운동서원이 되는 것이다. 여기에는 당시 지배층의 두가지 노림수가 있지 않았을까? 필자는 조심스럽게 추측하는데 그 하나는 87년 전 이 지방에서 일어난 어린 선왕(단종)의 복위운동 실패에 따른 무참한 학살의 기억을 지우는 것이 목적이며, 또 하나는 그러한 민간의 흉흉한 기억을 유교라는 이데올로기로 지방의 인재들을 중앙관직으로 복권시켜 더이상은 그 이전의 참극이 재발하지 않도록 충과 효를 가르쳐 계몽하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상상하는 것이다. 조선왕실의 왕족인 금성대군이 그 역모의 가운데 있었으니 사건의 파장이 얼마나 크고 대단하였음을 짐작할 수 있겠다.이는 1차 단종복위 운동이 중앙의 사육신을 위시한 성균관 유생들의 모의 실패가 일어난 후 금성대군과 지방의 뜻있는 유생들이 의기투합하여 단종복위를 시도하려다 결국, 실패로 돌아난 사건이었다. 이 사건의 파장이 얼마나 큰 것이냐하면 안동지방이나 영주, 예천 등지의 당시 명문가의 집안이 멸족을 당하거나 겨우 목숨을 피하여 인가가 드문 산골로 숨어 드는 계기가 되는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2차 단종 복위가 실패한 이후 금성대군은 살해되고 만다. 금성대군이 죽고 바로 다음 해 비운의 어린왕 단종 역시 역사의 이슬로 사라지고 말았다. 지금도 영주를 지나 순흥을 가기전 동촌마을을 지나야 하는데 그 동촌마을의 옛이름이 '피끝 마을'이라고 불리고 있다는 사실에 그 시절 참극이 얼마나 끔찍한 것인지 눈을 감고 떠올려 본다. 고증을 찾다 아래의 류시언씨의 글이 당시 그 시절의 참극이 어떠하였을지를 알 수 있지 않을까 하여 소개하여 올린다. *경자 바위 전설 그렇다면 서원을 건립하고 주세붕이 왜 죽계천에 경자라는 바위를 만들었을까? 나는 그 물음에 대한 정답은 아닐테지만 이 바위의 전설을 읽으며 그 숨은 뜻을 알 수 있게 되었다. 전설을 잠시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소수서원 입구에는 죽계수가 흐르고 있어 운치를 돋우고 있다. 죽계수는 멀리 소백산 초암계곡에서 발원하여 계곡으로 주변의 바위가 병풍처럼 펼쳐져 있으며, 울창한 노송 숲이 어우러져 절경을 빚어내고 있다. 그 밑에 깊은 소(沼)가 있다. 소수서원의 경렴정에서 죽계의 풍경을 바라보면 경(敬)과 백운동(白雲洞)이란 글씨가 음각된 바위가 있는데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있습니다. 주세붕이 숙수사를 헐어내고 서원을 건립하던 당시, 밤만 되면 혼령들이 울 게 되므로 연유를 물어보니 사연은 다음과 같았다. 1457년(세조 3년) 단종복위운동 실패로 참절당한 제 의사들의 시신을 죽계천 백운담에 수장시킨 후로는 밤마다 영혼들의 울음소리가 요란하므로 유생들이 밤 출입을 꺼리자, 주세봉선생이 영혼을 달래기 위하여 날을 택해 위혼제(慰魂祭)를 드리면서 경(敬)자에 붉은 칠을 한 뒤에는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고 한다. 그때 흘린 의사들의 피가 죽계천을 따라 이곳에서 약 7㎞ 떨어진 동네 앞까지 가서 멎었다고 해서 지금도 동네 이름을 ”피끝마을“이라고 부르고 있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또한 다른 이야기도 전한다. 주세붕이 숙수사를 헐어내고 서원을 건립하던 당시, 숙수사에 있던 불상들을 모두 이 바위 아래 소(沼)로 던져버렸다. 그러자 한이 맺힌 불상들이 밤이면 소(沼)로 첨벙 거리며 뛰어올라 사람들을 혼비백산하게 만들었다. 이를 전해들은 주세붕이 소(沼) 위의 바위에 경(敬)자를 음각하였더니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고 한다. 경(敬)은 주자철학의 근본으로 공경의 의미가 담겨 있는데, 이로써 불상들의 한이 위로 받았기 때문이다라고 전한다. " 경자바위 전설을 따라 읽어가면 두가지 서사를 읽을 수 있다. 하나는 절터를 허물고 승려들을 내쫒은 뒤 불상이나 부대시설물을 물에다 버린 사건의 결과 절터를 지키던 귀신들이 노하여 밤이면 귀신울음소리를 내며 민간인들을 놀라게 하였다는 것, 다른 하나는 정축년의 사화로 억울하게 수장당한 혼령들이 밤이면 물가에 나타나 울부짖어 민간인들이 그 일대를 지나갈 수 없다는 것이다. 주세붕이 이러한 사연을 전해듣고 제사를 지내고 경자를 써서 귀신들을 계몽시켜 다시는 울부짖는 소리가 안들렸다는 것? 나는 이 전설을 읽으며 유교라는 이데올로기의 모순을 본다. 유교가 내세우는 인.의.예. 지 - 4단이라는 것과 삼강오륜이 강조하는 것이 무엇일까? 그것은 알고보면 역성혁명(구데타)을 일으킨 장본인들이 자신의 구데타를 옹호하기 위한 - 그게 용비어천가인지 뭔가에 구체적으로 쓰여 있지만(역사의 아이러니라면 한글을 창제하였다는 세종이 글을 창안한 배경에 용비어천가를 이용하였다는 것 나는 이것이 과연, 무엇을 뜻할까? 이른바 한자를 만들었다는 창힐의 설화와 역사는 다시 조우하는 것이니 (창힐이 글자를 만들었을 때 귀신들이 여러날을 울부짖었다는 말이 이제서야 이해가 된다.) 결국은 지배계층이 피지배계층을 일종의 제도에서 다스리기 위한(수기와 치인) 통치기술이었다는 것이다. 경자바위 전설을 다시 읽을 때 귀신이 출몰하였을 때 수령이 할 수 있는 것이 우리네 민족적 정서인 억울한 혼령을 위로하고 씻김굿이라 하여 돌려 보냈다는 사실, 그리고 붉은 경자를 쓰니 그 이후로는 귀신이 출몰하지 않았다는 것인데 이후 이 경자바위 전설은 일종의 유교이데올로기를 지도하는 교과서같은 역할을 한다. (이 바위의 전설을 모태로 장화홍련전이 창작되지 않았나 조심스럽게 유추하여 본다) 이것은 조선왕조가 내세운 유교라는 이데올로기를 학살의 진원지인 민간(바위)에게 각인하는 사건이 된다. 결국에는 경자바위를 둠으로서 그 이전의 잔혹했던 역사의 흔적 지우기를 시작한 것이다. 또한 불교의 무속신앙과 단절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민간의 무속신앙에 유교의 경자를 바위에다 전시함으로 지방에서도 불교의 흔적지우기가 시작되었음을 세상에 알리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서원의 폐단을 역사를 통하여 보게 되는 바, 서원을 중심으로 한 명분없는 땅따먹기 싸움의 맹아 역시 백운동 서원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것이다. 보라, 조선시대를 거쳐 우리의 역사가 얼마나 헛된 망상의 탑을 쌓았던가? 내용과 형식이 조화를 이루지 못한 이데올로기, 나는 그게 조선이 만든 망령, 성리학이라 본다. 역사에 문외한인 내가 이 글을 끌고 가기가 힘들어 오늘은 여기에서 멈추기로 한다. 다만, 성리학이라는 관념으로 말미앎아 우린 오늘까지도 니편 내편 편가르기로 말장난하는 정치판의 꼴불견들을 만나고 있지나 않나 씁쓸하다. 부연) 단군 이래 이나라의 역사를 보건데 조선왕조처럼 피비린내 나는 참극을 보지 못했다. 내가 공자를 존경하지만 거부하는 까닭이다. 공자의 사상은 무위가 아닌 인위 즉, 가르치려 드는 것이다. 그러니까 내버려 두면 자연은 스스로 정화하는 질서가 있거늘, 망할 인간들이란 욕망하는 존재라 타박하면 타박한다고 내버려 두면 내버려 둔다고 아우성이 아닐까? 나는 그게 싫다. 얼마전 김형효 선생의 책을 읽다가 조선이란 시대의 그 망할 성리학- 성과 리-을 읽다가 두손 두발 들어 버렸다. 과연, 이 디지털의 시대에 그 누가 공자왈, 맹자왈 과거의 음풍농월을 읊조린단 말인가? 유가는 이런 것은 안좋으니 이렇게 해라! 늘 가르치려 든다. 가르침에 서구 유럽의 싸늘한 구조주의가 될지 모른다. 내버려 두라. 나는 그리하여 장자를 이기적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이란 불일이불이라는 모순과 역설(패러독스)이기에 더 찾아 읽게 되는 것인지 모르겠다. 노답 그게 삶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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