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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에 대해 다시 생각하기

작성자전재완|작성시간26.06.16|조회수11 목록 댓글 0

詩에 대해 다시 생각하기

 

전재완

 

 

젊은 시인들의 시가 궁금하여 포털을 검색하고 AI에게도 질의응답을 하였다. 

결과는 시가 요즘 핫한 어떤 소통의 장르가 된 듯하다. 시를 쓰는 입장에서

정말 고무적인 현상이다. 젊은이들이  장문의 소설이나 고전 따위 무시하고

시가 가지고 있는 촌철살인의 미학에 빠져 들었다니 고무적이지 않을 수 없다.

다만, 그들이 시의 정신에 대해 얼마나 진지하게 고민하고 시를 쓰는가?

나는 거기에 동의할 수 없다. 그래서 나는 꼰대가 된다.

시가 생각나는 대로 일상의 대화체로 구술하는 기술적 방법(글쓰기의 테크닉)에는 문제가 없다. 

요는, 시를 쓰는 당자가 도대체 무엇을 전달하려는지 의미에 대한 고민 없이

랩가수가 주절주절거리듯  백지에다 툭툭 내뱉는 것, 그 필터링되지 않은

언어가 , 과연 이 시대의 풍속은 될 수 있어도 묵직한 이 세상을 혁명(레볼루션: 전환의 글쓰기)할 수 있을까?

나는 그게 출판사와 야합한 그들의 일시적인 상업적 유행으로 그칠 것이라 장담한다.

시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란 이 시대를 살아가는 가장 아픈 사람들의 등불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예나 지금이나 시란 가장 쓰기 힘든 , 어떤 도의 경지가 필요하지 않을까?

시가 악세사리나 다이어리의 팬시문구처럼 여겨진다는 것에 나는 동의하지 못한다.

조용필의 킬리만자로의 표범이란 노래가 대중가요이지만 나름의 철학을 노래하는 것 

거기에 대중이 박수와 갈채를 보내지만 그건 가요일 뿐이다. 차라리 백석의 시나

소월의 시에 깔려있는 묵직한 시대의 노랫말은 미안하지만 오늘날 젊은 시인들의

글에서는 찾기가 어렵다. 

로스트 제너레이션이라 했던가. 시대가 바뀌는 과정의 혼란한 개념정의 같다.

나는 시에 대해서만은 꼰대의 입장이다.

젊은 시인들은 젊고 패기 넘치는 시를 이 세상에 선물할 의무와 책임이 있다.

그들이 다시 그들의 시를 쓰고자 한다면, 이 시대 가장 소외받는 이들의 가장

상처받는 이들의 응어리와 헌디를 백지에다 한풀이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

나만의 미친 투정일까?

시는 결국 이 세상의 가장 낮은 납자들의 하소연이다.

명심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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