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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日不作 一日不食

한암 대종사

작성자전재완|작성시간26.06.16|조회수22 목록 댓글 0

"절과 함께 나도 태워라", 한암(漢巖) 대종사

Hanam Jungwon (1876-1951) Photo

believed to have been taken at Sangwon Temple

sometime between 1926-1935

중원(重遠, 일본식 이름: 山川重遠, 1876년~1951년)은 대한민국승려이다. 법호한암(漢巖)이며, 중원(重遠)은 법명이다. 속성은 방(方)이고 속명은 알려지지 않았다. 본관온양이다.

1876년 강원도 화천에서 온양(溫陽) 방씨(方氏) 기순(箕淳)과 선산(善山) 길씨(吉氏)의 3형제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9세에 서당에서 공부했으며, 22세에 금강산 장안사에서 수도생활을 시작했다. 성주 청암사 수도암에서 경허성우의 설법을 들었고, 30세가 되던 1905년에는 양산 통도사 내원선원의 관실이 되었다.

선계일치(禪戒一致)

대한불교조계종 초대 종정(宗正)을 지낸 한암(漢巖) 대종사

한암 스님(1876~1951)은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의 암울했던 시기에 총 4차례나 교정과 종정으로 추대된, 시대를 대표하는 최고의 선승(禪僧)이다.

그가 한국불교의 위대한 고승으로 추앙받는 이유는 가장 큰 어른인 종정의 위치에서도,

늘 대중과 함께하면서 청정한 계율 정신을 몸소 실천하며 선계일치(禪戒一致)의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경허,만공,수월과 함께 근세에 선풍을 중흥시킨 한암 대종사(1876~1951).

한암이 1926년 강남 봉은사의 최고 어른인 조실을 등지고 오대산으로 은거하며 남긴 '귀산시(歸山詩)'는 그의 청정하고 고결한 인품을 잘 나타내준다.

내 차라리 천고(千古)에 자취를 감춘 학(鶴)이 될지언정,

춘삼월(春三月)에 말 잘하는 앵무새는 배우지 않겠다.

'귀산시'를 끝으로 오대산으로 은거 1951년 입적할 때까지 25년간 동구불출, 오직 수행과 후학 지도에만 매진했다.

덕 있는 나라가 이긴다(德者勝)

1942년 일본 총독 미나미는 한암을 총독부로 초청한다. 그러나 한암은 '나는 산문 밖을 나서지 않고 일생을 수행하기로 서원을 세운 사람'이라며, 총독의 요구를 거절한다.

이로 인해 부총독격인 정무총감 오노로구이치로가 특사로 상원사를 방문하게 된다. 이때 먼 길을 오게 돼 짜증이 난 정무총감은 "이번 전쟁(태평양전쟁)에서 어느 나라가 이길 것 같습니까?"라는 무례한 질문을 한다. 그러자 한암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덕 있는 나라가 이긴다(덕자승·德者勝)"라고 답했다. 일제를 찬양하기를 원했던 우문에 대한 현답이 아닐 수 없다.

한암의 의연한 모습에 존경심을 느낀 정무총감은 이번에는 자세를 바로 하고 자신의 일생에 지침이 될 글을 요청한다. 그러자 한암은 즉석에서, "정심(正心·마음을 똑바로 하라)"이라고 써 주었다. 일제강점기에도 서슬 퍼런 진정한 고승의 일화가 아닐 수 없다. 이 사건이 소문나면서 이후에는 일본 고관들의 참배가 줄을 잇게 된다.

오대산 상원사로 한암선사를 친견 온 일본인들 ⓒ월정사

상원사를 지켜내다

1951년 1·4후퇴 때 퇴각하던 국군은 산사가 적들의 기지로 활용될 수 있다는 판단하에 소각을 단행했다. 오대산 월정사와 상원사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때 아군은 국보 사찰은 불태우지 않는다며, 스님들을 안심시켜 피난케 한 뒤 소각했다. 실로 기만적 행위가 아닐 수 없다.

한암은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앉아서 생사를 맞겠다(좌당생사·坐當生死)'며 피난을 거부했다. 그러다 아군이 상원사를 소각하러 오자, 한암은 담담히 법당에 앉아 "승려는 죽으면 화장하는 것이니, 소각하라. 군인은 명령을 따르면 되니, 부담 갖지 말라"고 말한다.

불당 법상 앞에 정좌한 한암 스님이 장교를 불러 “준비가 다 되었으니 이제 불을 지르시오!”라고 말했다. 소스라치게 놀란 장교가 발을 구르며 “이러시면 안 됩니다. 어서 나가십시오!”라고 소리쳤지만 한암 스님은 “그대는 군인이니 명령을 따르는 것이 본분이고, 나는 출가수행자이니 법당을 지키는 것이 본분 아니겠소. 죽으면 어차피 다비를 할 몸, 둘다 본분을 지키는 일이니 내 걱정은 말고 어서 불을 지르시오.”하고는 돌이 되어버린 듯 꼼짝하지 않았다.

장교가 결단을 내린다. “문짝을 모두 뜯어다가 마당에 쌓아라! 어서!”

절을 태웠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문짝을 태워 연기를 냈던 것이다. 군인들이 수십 개의 문짝을 부수거나 뜯을 때나, 그것들이 절집마저 집어삼킬 듯 시뻘건 불꽃 속에 검은 연기를 내뿜으며 타오를 때도 한암 스님은 법당 안에 정좌하고 있었다.

세수 76세 법랍 54세. 좌탈입망(坐脫立亡)

가부좌를 한 자세로 방석에 정좌하고 있던 한암 스님은 청소를 하기 위해 방에 들어온 평등성 보살에게 눈을 감은 채 “오늘이 2월 보름이 맞느냐?”고 물었고, “그렇다.”는 평등성 보살의 대답에 “나를 벽 쪽으로 붙여라.”하고 말했다. 방석을 벽 쪽으로 끌어다 드린 후 나오며 보니 스님은 벽에 기대지 않고 꼿꼿하게 앉아 있었다. ‘벽에 기대면 허리가 좀 덜 아플텐데.’ 하는 생각을 하며 문을 닫고 나오는데 뒤에서 한암 스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여여(如如)라.”

한암선사는 1951년 가벼운 병을 얻은 지 1주일 만에 76세로 입적했다. 죽 한 그릇과 차 한 잔을 마신 뒤 가사 장삼을 정제하고 선상에 단정히 앉아 참선하는 듯 숨을 거두었다. ⓒ월정사

법맥(法脈)

세대이름
1세경허 스님 (鏡虛, 1849~1912)
2세만공 스님 (滿空, 1871~1946)
3세한암 스님 (漢巖, 1876~1951)
4세동산 스님 (東山, 1890~1965)
5세성철 스님 (性徹, 1912~1993)

스승에게서 제자에게로 불법이 전해져 내려온 계맥(系脈)

법계(法系), 법통(法統), 종통(宗統), 종맥(宗脈) 등과 같은 뜻이다.

법맥을 전승하는 것을 전법(傳法)이라고 하고, 법이 서로 전해져서 끊어지지 않는 것을 등불이 서로 이어져 소멸하지 않는 것에 비유하여 전등(傳燈)이라고 한다.

법맥을 계승하는 제자에게 전법게(傳法偈)와 기타의 상징물을 주면서 정식으로 그 법맥의 적자임을 인가하는 의식을 법맥상속식(法脈相續式)이라고 한다.

선종에서는 스승과 제자 간에 이심전심(以心傳心: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하는 것)의 인가(印可)를 매우 중요하게 여겨 일찍부터 법맥(法脈)을 확립하고 그 적통을 계승하였다는 의식이 엄격하였다. 곧 선종에서는 석가모니 부처님부터 선종의 전통이 면면히 계승되어 온 것을 표방하기 위해,

인도에서의 법맥은 제1조 석가모니 부처님에서 시작하여 제28조 보리달마(菩提達磨)에 이르렀다고 하고,

다시 보리달마를 중국에서의 법맥 제1조로 삼고 혜능을 제6조로 삼아서, 달마(達磨)→혜가(慧可)→승찬(僧璨)→도신(道信)→홍인(弘忍)→혜능(慧能)을 정통으로 여겼다.

교종에서는 법맥을 크게 중요하게 여기지는 않았지만 그 법맥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화엄종에서는 마명(馬鳴)→용수(龍樹)→두순(杜順)→지엄(智儼)→법장(法藏)→징관(澄觀)→종밀(宗密)을 칠조(七祖)라고 하고, 뒤의 다섯 조사만 일컬어서 오조(五祖)라고 하였다. 이 법맥은 송대의 자선(子璿)→정원(淨源) 등으로 이어졌다.

우리나라에서는 신라 말 고려 초에 아홉 가지 산문이 세워져 선종의 종풍을 일으키고 법맥을 이어 갔는데,

아홉 가지 산문이란 도의(道義)의 가지산문(迦知山門), 홍척(洪陟)의 실상산문(實相山門), 혜철(惠哲)의 동리산문(桐裏山門), 도윤(道允)의 사자산문(獅子山門), 낭혜(朗慧)의 성주산문(聖住山門), 범일(梵日)의 사굴산문(闍崛山門), 지증(智證)의 희양산문(曦陽山門), 현욱(玄昱)의 봉림산문(鳳林山門), 이엄(利嚴)의 수미산문(須彌山門)으로 구산선문(九山禪門)이라고 일컬어진다.

『기암집(奇巖集)』 권3(ABC, H0156 v8, 178c01) 동국대학교 불교학술원 | 불교기록문화유산 아카이브 존재하지 않는 이미지입니다.

청허 대사(淸虛大師)의 만문(晩門) 고제(高弟)인 기(機)와 흘(仡) 등 두 명의 아사리는 스승의 정수를 얻은 자인데, 갚지 못한 선사(先師)의 은덕을 갚으려고 생각하여 겁석(劫石)에 새겨서 후세에 전하고자 하였다. 그래서 선사의 법맥(法脈)과 연원(淵源)을 깊이 고찰하고 생연(生緣)의 세계(世系)와 본말에 대해서도 탐색하였다.

***

"아사리"는 한국어에서 두 가지 주요 의미를 가집니다. 하나는 불교 용어로, 승려를 가르치는 스승을 의미하며, 다른 하나는 속어로, 무질서하고 혼란스러운 상태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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