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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日不作 一日不食

불립문자不立文字

작성자전재완|작성시간26.06.17|조회수11 목록 댓글 0

불립문자不立文字

 

 

 

흔히 교외별전(敎外別傳)이라는 말과 함께 쓰인다.

불립문자란 문자에 집착하지 않고 보편적 명제의 형태로 정언(定言)을 세우지 않는다는 입장의 표방이며, 따라서 경전의 문구에 대해서는 형식에 집착하지 않는 자유로운 태도를 취한다. 교외별전이란 경전의 가르침과는 별도로 특수하게 전수된 것이 있음을 말하며, 경전에 절대적 가치나 의의를 부여하지 않는 입장의 표방이다. 교종(敎宗)이 경론의 문자나 교설만을 위주로 공부함으로써 불교의 참정신을 잃고 있다고 보아, 선종에서는 부처의 진정한 진리로서의 정법은 단순히 어구나 문자에 의해서가 아니라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해지는 것이라는 체험을 중시하여 불립문자·교외별전을 주장했다.

이 정신은 중국 선종의 개조인 보리달마에게도 보이지만, 제6조 혜능(慧能)으로부터 번성한 남종선에서 특히 강조되었다. 한편 이 정신의 경전적 근거는 〈능가경 楞伽經〉에서 발견된다. 여기서는 문자에 의존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다음과 같이 명확하게 천명하고 있다.

"문자에 따라 의미를 해석하지 말라. 진실은 자구(字句)에 묶여 있지 않기 때문이다. 손가락을 주시하는 사람처럼 행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마치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자기의 손가락으로 뭔가를 가리키자, 그 사람은 손가락이 가리키는 대상을 보지 않고 오로지 손가락 끝만 응시하는 것과 같다. 그들은 또한 문자 그대로의 해석이라는 손가락 끝이 가리키는 의미를 무시하고 문자 그대로의 번역으로 이루어진 그 손가락 끝에 집착한 채 인생을 마감하는 어리석은 속물이나 어린애와 같아서, 결코 보다 깊은 의미에 이르지 못한다." 또 부처는 성도 이후 입멸할 때까지 한 마디도 설하지 않았다고 하는 〈입능가경 入楞伽經〉 권5의 언급도 불립문자의 근거로서 주목된다.

〈능가경〉의 3종 한역본 중에서도 선종과 관계가 깊은 것은 구나발타라(求那跋陀羅) 번역의 4권본 〈능가경〉인데, 여기서 "부처의 말씀은 마음이다"라고 설하는 것과 같은 경문도 불립문자로 표방되는 선종의 정신과 상통한다.

그러나 전설적으로는 불립문자의 전통을 '염화시중'(拈華示衆)이라는 일화에서 찾기도 한다. 어느 설법 자리에서 석가모니가 연꽃 한 송이를 들고 침묵하고 있을 때 거기에 모인 사람들은 아무도 그 뜻을 알지 못했으나, 십대제자의 한 사람인 가섭(迦葉)만이 그 뜻을 알고 미소지었다.

그래서 석가모니는 가섭에게 자신이 죽은 이후 정법을 후대에 전하도록 부탁했다. 어느 날 역시 십대제자인 아난(阿難)이 부처가 전한 것이 무엇이냐고 묻자, 가섭은 "가서 깃대를 내려라"라고 답했다. 사원 밖에 깃대를 내리라는 말은 언설을 집어치우라는 뜻이다. 이런 전설에 유래하여 선종에서는 가섭을 인도로부터의 초대 조사로 간주한다. 이렇게 불립문자를 표방하는 중국의 선(남종선)은 이심전심(以心傳心)으로 가르침을 전하는 사제(師弟) 관계를 중시하게 되었다.

한국에서 불립문자의 정신은 신라 하대 최치원과 지선(智詵) 등의 언급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들은 당시 교종을 습관존신지법(習觀存神之法)이라고 비판하면서 교종의 한계로 관념화·미신화·세속화·체제지향 등을 들었다. 따라서 이들은 각 개인의 지성을 중시하고 구체적인 실천을 통해 깨달음을 추구하는 방법으로, 교외별전·직지인심·견성성불과 함께 불립문자를 표방하며 선종의 시대를 열었다.

하지만 고려 중기 이후 대가들의 유명한 언행을 공안(公案) 또는 화두(話頭)로 삼아 수행하는 간화선(看話禪)이 유행하게 되어, 오히려 언어나 문자에 얽매이는 듯한 역설적 현상을 낳기도 했다. 그러나 공안의 취의도 언어·문자의 허구를 깨뜨리는 데에 있고 보면, 선종이 표방한 불립문자는 언어·문자의 가치를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에 대한 집착을 타파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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