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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日不作 一日不食

시를 읽어가며

작성자전재완|작성시간26.06.21|조회수14 목록 댓글 0

 시를 읽어가며

 

니힐

 

시인들이 쓴 시를 읽어가며 느낀 소외라면 시란, 배암의 혀를 닮았다.

또한 시는 배암이 허물을 벗듯 끊임없는 탈피를 반복한다는 사실이다.

물론, 주체와 대상의 입장에서 시는 부득불 어떤 의미의 변화를 보여준다.

그러나 이 망할 놈의 시는 또 달아난다. 노자의 명가명 비상명이다.

물론, 시는 쓰여진 이상 그것이 언어로 활자화되는 순간, 이 살아 꿈틀거리는

활어는 비평가나 독자들의 회칼에 본과 색을 뜨일 때가 있다.

대개가 철학, 그러니까 글쓰기의 생각이 얕은 시들이 엉망진창 난도질을 당한다.

그 흔한 말로 표현하고자 하는 내용에 비하여 글을 담아내는 그릇이 모자라거나 넘친 결과다.

과유불급이라 했던가. 중용의 도를 무시한 결과, 쓰라린 말들의  난도질을 당하기 일쑤다.

나는 죽은 시인들이 쓴 시들을 찾아 읽어가며 그들의 시에 발아한 죽음의 냄새를

탐구하였다. 그러나 내가 알게 된 사실은 그들은 결코 죽음을 회피하거나

방관하지 않았으며 온몸으로 스스로를 죽음으로 밀고 나갔다.

시라는 것이 어쩌면  굵고 짧은 발화의 공간이라면 그들은 그들의 시를

통하여 정직하게 성실하게 시를 산(쓴) 것이다.

나는 그러한 정직한 시인들이 쓴 글을 읽을 때 희열을 느낀다.

그들의 정직한 시어에는 강철로 된 무지개가 뜨고

그들의 정직한 시어에는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럽지 않은 바람이 숨어 산다.

그들의 정직한 시어에는 아사달과 아사녀의 무영탑의 꿈이 천년의 그림자로 빛난다.

그들의 정직한 시어에는 영변의 약산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고 싶어진다.

그들의 정직한 시어에는 이 세상은 즐거운 소풍이다.

그들의 정직한 시어에는 겨울밤 쩡하니 익은 동치미국맛이 난다.

희스무레하고 부드럽고 수수하고 슴슴한 맛,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의 .... 곰의 잔등에 업혀서

길러 났다는 먼 옛적 큰마니의 손맛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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