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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신부님 강론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가해)

작성자데레사|작성시간26.06.06|조회수47 목록 댓글 0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가해)

 

찬미예수님!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은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입니다. 오늘은 성체 성혈 대축일과 성체조배가 언제 시작되었는지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교회가 처음에는 그리스도의 성체 축일과 그리스도의 성혈 축일을 따로 지냈습니다. 그러다가 2차 바티칸 공의회(1962-1965) 이후 1970년에 그리스도의 성체 축일그리스도의 성혈 축일을 하나로 합쳐서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축일로 지내고 있습니다.

1246년에 그리스도의 성체 축일이 시작되었습니다. 벨기에의 리에주에서 처음으로 성체 축일이 시작되었습니다. 벨기에 나라는 크기가 경상도와 비슷한 아주 작은 나라입니다. 인구는 약 1,100만 정도입니다. 벨기에는 네덜란드와 프랑스, 룩셈부르크와 독일에 둘러 싸여 있습니다. 벨기에의 코르닐롱 수도원의 율리아나 수녀가 리에주의 주교님에게 그리스도의 성체 축일을 지내는 것이 좋겠다고 제안해서 리에주의 주교님이 1246년 교구의 축일로 그리스도의 성체 축일을 지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18년 뒤인 1264년에 교황 우르바노 4세가 그리스도의 성체 축일을 모든 교회가 지키도록 했고, 빈 공의회(1311~1312)에서 교황 클레멘스 5세가 전임 교황의 결정을 승인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성혈 축일은 19세기에 시작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성혈 축일을 우리나라에서는 1970년 전까지는 그리스도의 보혈 대첨례로 지내왔습니다. 그러다가 1970년에 두 축일이 합쳐지면서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을 지내고 있습니다.

성체조배가 언제 시작되었는지 알아봅시다. 성체조배는 초대 교회 때부터 해왔던 가장 오래된 가톨릭교회의 전통 가운데 하나입니다. 초대 교회에서는 미사가 끝나면, 미사에 참석하지 못한 환자들에게 성체를 모시고 가서 봉성체를 해주었습니다. 순교자 유스티누스(-165?)와 테르툴리아누스(155?-240?)가 이런 사실을 증언합니다.

박해 시대에는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성당이 없었습니다. 박해 시대에는 성체를 특정한 장소에 모셔둔다는 것이 불가능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성체조배는 313년 박해가 끝나고 나서 약 350년경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성체를 성당에 특별하게 모셔둔 것에 대해 카이사리아의 주교 대 바실리우스(+379)가 최초로 증언합니다. 박해가 끝난 뒤, 고대 교회에서는 수도원이 크게 번창했습니다. 박해가 끝난 뒤에 수도원이 크게 번창한 이유는 수도자가 되는 것은 박해 시대의 순교자들의 순교 영성을 이어받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카이사리아의 바실리우스의 증언에 따르면, 미사를 봉헌하고 나서 성체를 성합 3개에 나누어 넣었다고 합니다. 첫 번째 성합에 들어있는 성체는 미사에 참석한 신자들이 받아 모셨고, 두 번째 성합의 성체는 수도자들에게 주었고, 세 번째 성합의 성체는 제단 위에 매달아놓은 황금색 비둘기 모양의 용기에 보관해두었습니다.

왜 성체를 제단 위에 매달아놓은 황금색 비둘기 모양의 용기에 넣어 두었을까요? 두 가지 목적 때문입니다. 첫 번째 목적은 신자들로 하여금 성체조배를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오늘날 감실에 해당합니다. 두 번째 목적은 환자들에게 봉성체를 해주기 위해서였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주님께서 우리에게 당신의 몸과 피를 영원한 생명의 양식으로 내어주신 것을 기념하는 오늘, 우리도 주님처럼 세상 사람에게 우리 자신을 내어주겠다고 다짐하고 실천하는 한 주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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