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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송하는 詩

재앙이 되자 한다 - 황규관

작성자huse|작성시간26.06.05|조회수23 목록 댓글 0

재앙이 되자 한다   -  황규관

 

쏟아지는 폭우에 왈칵 무너진

저 흙더미와 바위들이

모든 길의 시작인지 모른다

그러지 않고 저리 무자비할 리 없다

노인들이 사는 집을 덮치고

들 가운데를 뚫은 지하차도로

아무 경고도 없이 강물이

아비규환으로 밀려드는 순간이

길이 탄생하는 비극인지 모른다

인간은 길을 만든 게 아니라

둑을 쌓아 물을 막고

벽을 만들어 길이라 우겼다

고개를 내밀어보는 달맞이꽃과

팔다리가 자꾸 자라는

칡넝쿨을 잘라내고

성장이라 진보라 불렀다

우리는 그것들을 못 이기는 척 따라 하고

모르는 척 즐기다가

드디어 길에게 배신당했다

거짓말만 무성했다

앞을 가로막고 있는 저 흙더미와 바위들이

이제 그만 돌아가자 한다

함께 산사태가 되자 한다

제방을 넘어가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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