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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송하는 詩

닻 - 윤성택

작성자huse|작성시간26.06.08|조회수23 목록 댓글 0

닻   -  윤성택

 

폐선에 걸터앉은 노인은 닻처럼 휘었다

필생 무게중심이 되어왔다는 듯

웅크린 등은 갈고리처럼 앙상하다

적막이라는 그물을 투망질하는 건

담벼락에 걸쳐진 담쟁이들 뿐,

횟집 수족관에는 먼지들이 몰려다닌다

물살이 간척지에 반쯤 묻힌 폐선을 흔들고

내력을 둘러싼 갈대들이 삐걱거린다 추억은

칠 벗겨진 호(號)와 같아 좀체 가라앉지 않는다

세월 가장 아득한 곳에서부터

꿈은 몰려오는 것이라고, 목울대가 울렁인다

번들거리는 오후의 졸음이 스며온다

더 이상 머물지 않아도 좋다는 듯

폐선이 수면에 겹겹 나이테를 풀어낸다

물새의 날개 짓에 햇살이 튀고

빛을 낚은 갈대들은 한 방향으로 구부러진다

멀리 굴뚝연기에도 느껴지는 엔진소리

기어이 시동이 걸린다, 점점 속력을 내면

붉은 녹이 꽃잎처럼 떨어져 나간다

입을 벌린 월척들이 꼬리로 솟구쳐 오른다

저 펄떡거리는 물결들! 눈을 비비는 동안

저녁놀은 밤의 기억 속으로 돌아갈 것이다

꿈도 정박할 곳에 다다른 것인지 노인은

제 몸의 닻을 지고 방죽을 홀로 걷는다

집으로 향한 발자국이 밧줄처럼 딸려 나온다

언젠가 줄이 끊기면 이 길도 놓아주리라

노인은 휜 등을 힘겹게 의자에 걸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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