닻 - 윤성택
폐선에 걸터앉은 노인은 닻처럼 휘었다
필생 무게중심이 되어왔다는 듯
웅크린 등은 갈고리처럼 앙상하다
적막이라는 그물을 투망질하는 건
담벼락에 걸쳐진 담쟁이들 뿐,
횟집 수족관에는 먼지들이 몰려다닌다
물살이 간척지에 반쯤 묻힌 폐선을 흔들고
내력을 둘러싼 갈대들이 삐걱거린다 추억은
칠 벗겨진 호(號)와 같아 좀체 가라앉지 않는다
세월 가장 아득한 곳에서부터
꿈은 몰려오는 것이라고, 목울대가 울렁인다
번들거리는 오후의 졸음이 스며온다
더 이상 머물지 않아도 좋다는 듯
폐선이 수면에 겹겹 나이테를 풀어낸다
물새의 날개 짓에 햇살이 튀고
빛을 낚은 갈대들은 한 방향으로 구부러진다
멀리 굴뚝연기에도 느껴지는 엔진소리
기어이 시동이 걸린다, 점점 속력을 내면
붉은 녹이 꽃잎처럼 떨어져 나간다
입을 벌린 월척들이 꼬리로 솟구쳐 오른다
저 펄떡거리는 물결들! 눈을 비비는 동안
저녁놀은 밤의 기억 속으로 돌아갈 것이다
꿈도 정박할 곳에 다다른 것인지 노인은
제 몸의 닻을 지고 방죽을 홀로 걷는다
집으로 향한 발자국이 밧줄처럼 딸려 나온다
언젠가 줄이 끊기면 이 길도 놓아주리라
노인은 휜 등을 힘겹게 의자에 걸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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