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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송하는 詩

눈을 감고 - 박준​

작성자huse|작성시간26.06.15|조회수23 목록 댓글 0

눈을 감고 - 박준​

 

눈을 감고 앓다보면

오래전 살다 온 추운 집이

​이불 속에 함께 들어와

떨고 있는 듯 했습니다

​​사람을 사랑하는 날에는

​길을 걷다 멈출 때가 많고

​​저는 한 번 잃었던

​길의 걸음을 기억해서

​다음에도 길을 잃는 버릇이 있습니다

​​눈을 감고 앞으로 만날

​악연들을 두려워하는 대신

​미시령이나 구룡령, 큰 새이령 같은

높은 고개들의 이름을 소리내보거나

​​역을 가진 도시의 이름을 수첩에 적어두면

​얼마 못 가 그 수첩을 잃어버릴 거라는

​이상한 예감들을 만들어냈습니다

​​혼자 밥을 먹고 있는 사람에게

전화를 넣어 하나하나 반찬을 물으면

​함께 밥을 먹고 있는 것 같기도 했고

손을 빗처럼말아 머리를 빗고

좁은 길을 나서면

​어지러운 저녁들이

제가 모르는 기척들을

​오래된 동네의 창마다

새겨넣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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