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7]루이 르노 Louis Renault 1843. 5. 21 프랑스 오툉~1918. 2. 7 바르비종. 프랑스의 법률가·교육자.
작성자깡순이작성시간21.04.22조회수91 목록 댓글 0| 연도 | 수상자 | 국적 | 업적 |
| 1907 | 루이 르노 | 프랑스 | 헤이그회의, 런던군축회의 중재 |
루이 르노
Louis Renault
1843. 5. 21 프랑스 오툉~1918. 2. 7 바르비종.
프랑스의 법률가·교육자.
르노는 중재자로도 명성이 높았는데 특히 1905년의 일본인 가옥세 사건, 1909년의 카사블랑카 사건, 1911년의 사와카르 사건, 1913년의 카르타고 사건과 마누바 사건 등에서 중재를 맡아 이름을 떨쳤다. 그의 저작들 중에는 국제법의 특정 주제들에 대한 많은 논설과 논문들이 있다. 친구이자 동료인 C. 리옹 캉과 함께 상법개론(2권)을 저술했으며, 8권의 논문과 몇 판을 거듭한 요람을 남겼다.
1879년 르노는 〈국제법 개론 Introduction to the Study of International Law〉을 펴냈으며, 1917년에는 〈독일이 저지른 최초의 국제법 위반 The First Violations of International Law by Germany〉을 발표, 독일이 조약의 의무사항을 위반하고 벨기에와 룩셈부르크를 침공한 사실을 폭로했다.1907년에 에르네스토 테오도로 모네타와 공동으로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1868~73년에 디종대학교에서 로마법과 상법교수로 재직했고 1873년 이후 죽을 때까지 파리대학교 법학부교수였으며 1881년에 국제법교수가 되었다. 1890년에는 프랑스 외무부에서 특별히 마련한 법률고문관직에 임명되어 프랑스 외교정책을 국제법에 비추어 면밀히 검토하는 일을 담당했다. 그는 이 자리에 있는 동안 많은 회의에 참석했는데, 특히 1899년과 1907년 2차례에 걸친 헤이그 회의와 1908~09년의 런던 군축회의에서 능력을 발휘했다.출처 김대중 평화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