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6]허먼 J. 멀러 (Hermann Joseph Muller) 1890∼1967. 미국의 유전학자.

작성자깡순이|작성시간21.04.13|조회수213 목록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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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6허먼 J. 멀러미국X선 조사에 의한 돌연 변이 유발

허먼 J. 멀러

(Hermann Joseph Muller)

1890∼1967. 미국의 유전학자.

 

살아 있는 세포의 유전자와 염색체에 X선을 조사(照射)하면 돌연변이와 유전적 변화가 생겨날 수 있다는 연구로 유명하다. 유전자에서 인공적으로 돌연변이를 유도한 그의 발견은 매우 중대한 것으로서 1946년 노벨 생리학·의학상을 수상했다.


컬럼비아대학교에 다녔으며(1907∼09), 그의 유전학에 대한 관심은 유전에 세포학적인 접근을 최초로 시도한 E. B. 윌슨과의 만남에 의해 시작되었다. 그러한 관심은 실험유전학 실험도구로 초파리(Drosophila)를 사용한 T. H. 모건에 의해 더욱 불붙게 되었다. 멀러의 과학연구와 사회주의적인 태도는 의식적으로 인간의 진화를 유도할 수 있다는 가능성에서 그 동기를 부여받았고, 컬럼비아대학교에서의 경험을 통해 그는 유전과 변이의 과정을 이해하는 것이 그 선행요건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1912년 컬럼비아대학교에서 동물학 실험 보조원으로 일하게 되자 초파리 연구에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 있게 되었고, 그 결과 지금은 고전(古典)이 된 유전자 교차 메커니즘에 대한 일련의 논문을 발표하여 1916년 박사학위를 받았다. 멀러는 박사학위 논문에서 유전자의 선형 연관 원리를 확립했다.

 

모건의 초파리군(群)에 대한 연구는 1915년 〈멘델의 유전 메커니즘 The Mechanism of Mendelian Heredity〉이란 책에 요약되었고 이 책은 유전학의 기초가 되었다.살아 있는 세포의 유전자와 염색체에 X선을 조사(照射)하면 돌연변이와 유전적 변화가 생겨날 수 있다는 연구로 유명하다. 유전자에서 인공적으로 돌연변이를 유도한 그의 발견은 매우 중대한 것으로서 1946년 노벨 생리학·의학상을 수상했다. 

 

텍사스 휴스턴에 있는 벼연구소(Rice Institute)에서 3년을 보낸 후 컬럼비아대학교에서 전임강사를 잠시 지냈고, 1920년 오스틴에 있는 텍사스대학교의 부교수(후에 정교수가 됨)가 되어 1932년까지 재직했다. 오스틴에서 보낸 12년은 멀러의 일생에서 가장 왕성했던 기간이었다. 돌연변이 과정 및 빈도에 관한 연구로 머리 속에 유전자의 배열과 재조합에 관한 그림을 그릴 수 있었으며, 1926년 X선을 사용해 유전적 돌연변이를 실험적으로 유도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독창적인 발견으로 그는 유전학자로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되었으며 마침내 노벨상을 받았다. 이당시 멀러는 돌연변이가 염색체의 파괴와 유전자의 변화로 생겨난다는 사실을 입증할 수 있었다. 1931년 미국 국립과학 아카데미 회원이 되었다.

 

1932년 개인적인 압박감 때문에 신경쇠약증으로 시달리다가 베를린에 있는 카이저 빌헬름 연구소에서 1년을 보내며 유전자의 돌연변이를 설명할 수 있는 다양한 물리적 모델들을 고안해냈다. 1933년 레닌그라드로 옮겨갔으며 모스크바 유전학 연구소 소장인 N. I. 바빌로프의 초청으로 다시 모스크바에 갔다. 멀러는 사회주의자였다. 처음에는 소련이 매우 진보적이고 실험적인 사회여서 유전학과 우생학에 관한 중요한 연구들을 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당시 소련은 생물학자인 T. D. 리센코의 잘못된 학설이 정치적으로 강력한 힘을 발휘하게 되어 유전학의 과학적 연구는 종말을 고하고 있었다. 멀러는 기회 있을 때마다 리센코 학설(Lysenkoism)과 맞서 싸웠으나 1937년 마침내 소련을 떠나야 했다. 영국 에든버러 동물유전학연구소에서 3년을 보내고 1940년 미국으로 돌아왔다. 매사추세츠의 애머스트대학에서 임시직을 얻어 일하다가(1941∼45) 블루밍턴의 인디애나대학교에서 동물학과 교수로 재직했다.

 

1946년 노벨상을 수상함으로써 산업시설과 방사선으로 인한 돌연변이가 인간의 유전자풀(gene pool)에 축적되었다가 갑자기 발현될 수 있는 위험성에 관해 발표할 기회가 많아졌다. 그는 다음 세대에게 다가올 방사능의 위험을 일반 대중에게 알리는 데 앞장섰고 현대사회에 작용하는 자연선택의 진행과정이 상당히 느려진 것에 대한 토론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또 그는 후세대를 위한 우생학 프로그램의 일부로서 남자의 정자를 기증받아 냉동·보관하는 일에 대해 열렬히 반대했다.출처 김대중 평화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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