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산 오색케이블카사업 때문에 서식지를 잃을 위기에 처한 산양을 위해서 법조인, 연극인, 동물권단체, 환경단체, 정당이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지난 11월 17일(토) 창비 50주년 기념홀에서 ‘설악산 산양이 제기한 케이블카 중지소송 모의법정’이 열렸습니다. 이날 모의재판정에는 9인의 시민배심원단과 100여명의 시민방청객이 자리를 함께 했습니다.
모의법정은 원고 측 변호인과 피고 측 변호인의 변론 중간 중간에 말을 하는 산양(설악산 오색 산양 ‘뿔이’)이 직접 자신을 변론하고, 시민들이 직접 판정에 참여하는 연극형식으로 진행되었습니다. 기존 국내 자연(물)소송에서 당사자가 변론능력이 없다는 이유로 모두 각하되었었던 판례에 비추어, 당사자 산양이 직접 말을 하며 변론할 수 있는 상황을 설정했습니다. 이를 통해 일반 시민방청객, 시민배심원단, 시민재판부가 산양의 입장에서 보다 전향적인 판단을 할 수 있는 장을 마련했습니다.
재판의 주요한 쟁점은 ▲원고 산양이 소송을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지와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사업를 중지시키는 것에 대한 합당한 이유였다.
법정에 출연한 산양 ‘뿔이’는 “설악산 오색에 케이블카가 생기면 가장 많은 피해를 보는 것은 사람이 아니라, 산양이다. 인간의 말하는 멸종위기는 (산양인) 우리에게는 생존권이 달린 문제다.” 라며 자신의 원고로서 당사자능력을 변론했고, “인간들은 우리 산양을 보호하겠다며 온갖 보호법률(멸종위기야생동물 1급, 천연기념물 등)을 만들어 놓았는데, 이러한 법률들이 산양이 소송을 진행할 권리와 능력을 말해준다”며 국내 동물보호법제들이 엄격하게 적용되지 않고 있음을 꼬집었습니다.
피고 측 대리인 최재홍 변호사(법무법인 자연)는 “국내법제상 당사자 능력과 소송능력에 대해서는 민사소송법에서 특별한 규정이 없으면 민법과 그 밖에 법률을 따르게 되어 있다. 문제는 민사소송법에서는 산양과 같은 자연물에 당사자 능력을 부여하는 규정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민법을 보아야 하는데, 제 3조가 권리와 의무를 규정하고 있지만, 이것은 사람에게만 적용된다. 원고 산양은 사람이 될 수 없다” 며 “법률근거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산양에게 권리를 부여한다면 법원이 3권 분립을 침해하는 것이고 법원이 입법을 창설하는 문제가 발생한다.”며 이번 산양의 소송의 당사자가 될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 최후 변론을 하는 산양의 대리인 서국화 변호사
시민배심원단 9인은 변론과 증거조사 종결 후 약 30분간 별도의 공간에 논의를 진행했습니다. 그 결과, 산양이 원고로서 소송제기가 가능하다고 전원의견일치에 이르렀고, ‘설악산국립공원 오색삭도 설치사업 공사를 하여서는 안 된다’라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시민재판부도 배심원단의 평결내용을 전적으로 수용했습니다. 주심재판장인 박태현 교수(강원대 법률대학원)는 “원고 대리인이 산양의 이익을 전적으로 대변하고 있고, 이것이 산양의 의사에 반한다고 볼 수 없기 때문에 원고대리인이 적법하게 소송대리권을 위임받았다”며 산양이 변호인에게 대리권을 유효하게 수여했다고 판단했고, “산양이 직접 법정에서 진술을 했고, 우리 법률상 자연물, 동물을 보호해야할 법적의무가 있고, 현행 민사소송법 규정이 동물의 당사자 능력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산양의 소송당사자 능력을 인정했습니다. 또한 “원고가 제출한 자료와 증인의 진술에 따라 이 사건 케이블카 공사가 진행 될 경우 산양의 종 전체가 멸종할 급박한 위기에 처한다” 며 이 사건 공사의 중지 필요성을 인정했습니다. 마지막으로 “피고는 설악산 오색구간에 케이블카 설치를 위한 공사를 진행해서는 아니 된다. 집행관은 위 취지를 적당한 방법으로 공시하여야 한다. 피고는 제 1항의 의무를 위반하는 경우 1일당 1,000,000원씩 원고들에게 지급한다.” 고 최종선고를 내렸습니다.
▲ 모의법정에 참여한 시민방청객들과 시민재판부
실제로 설악산 산양을 원고로 한 소송은 현재 실제로 진행 중입니다. 천연보호구역인 설악산에 케이블카를 설치할 수 있도록 문화재현상변경허가를 진행한 문화재청을 상대로 산양과 산양후견인이 원고가 되어 행정소송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국내 사법체계와 기존 판례상 자연(물) 소송을 이어나가는 게 쉽지 않은 것이 현실입니다. 이번 모의법정에서 다루었듯이 법적지위가 없는 산양과 산양연구 전문가인 후견인이 소송의 당사자가 될 수 있는지 여부가 가장 큰 쟁점입니다.심지어 소송이 시작되기도 전에 재판부가 소송비를 먼저 내라는 취지에 ‘담보금 제공명령’을 내려 논란이 되기도 했습니다.
산양을 위해서 시민배심원과 시민재판부는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사업을 중지하라고 명령했습니다. 산양과 같은 동물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고민한 결과 였습니다. 그들도 우리와 다르지 않다라는 기본전제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이러한 사건들의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과 전향적인 고민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자연이 온몸으로 자신의사를 표현하고 있다는 것이 조금이라도 느껴진다면 지금 당장 우리 부터 그 시작에 함께 했으면 합니다. 그리고 대한민국 사법부가 현행법률에 대한 다양한 해석을 할 수 있도록, 입법부 또한 다양한 입법활동에 나설 수 있도록 우리가 함께 목소리를 내야 할 때 입니다.
다음은 이번 모의재판의 판결 선고문 전문입니다.
‘먼저, 산양이 원고 대리인인 법무법인 설악에게 대리권을 유효하게 수여하였는지 여부와 관련해서, 산양이 위임장을 작성할 능력은 없다고 하더라도 원고대리인이 산양의 이익을 전적으로 대변하고 있고 그것이 산양의 의사에 반한다고 볼 근거가 없기 때문에 산양의 추정적 의사에 따라, 그리고 오늘 재판에 출석한 뿔이의 명시적 의사에 따라 원고 대리인은 적법하게 소송대리권을 위임받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 다음, 산양의 당사자 능력과 관련해서, 특히 당사자인 뿔이가 직접 이 법정에서 진술한 내용들을 볼 때, 충분히 자신의 권리를 소송에서 주장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보입니다. 그 외 원고 대리인이 제출한 증거들을 종합하면 우리 법률상 자연물, 동물을 보호해야 할 특별한 법적 의무가 있고, 현행 민사소송법 규정이 동물의 당사자능력을 부인하는 취지는 아니라고 보여 지며 특히 산양은 야생생물법과 생물다양성 보전 및 이용에 관한 법률에 따라 보호를 받는 종으로, 자신의 권리로 소송을 제기할 능력이 있다고 보입니다.
마지막으로 이 사건 공사가 진행될 경우 산양은 활동반경이 좁고 서식환경이 특수해 멸종위기에 있는 점, 그리고 케이블카 공사가 진행될 경우 발생하는 소음과 진동으로 인하여 서식지의 변경이 아닌 멸종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는 점, 결국 케이블카 공사는 산양의 생존권을 침해하게 되고, 그로 인하여 산양이 멸종할 급박한 위기에 처한다는 점이 원고가 제출한 IUCN의 자료와 증인 박그림의 증언에 따라 인정됩니다. 나아가 산양의 멸종은 다른 어떤 방법으로도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에 해당하는바, 이 사건 케이블카를 설치하여 사람들이 편하게 경치를 감상하여 얻는 이익보다 산양의 생존 및 산양 종 보전의 이익이 더 중대하다고 보이는바, 이 사건 공사를 중지할 필요성 역시 인정됩니다.
이에 선고합니다.
주문, 피고는 설악산 오색구간에 케이블카 설치를 위한 공사를 진행해서는 아니 된다. 집행관은 위 취지를 적당한 방법으로 공시하여야 한다. 피고는 제 1항의 의무를 위반하는 경우 1일당 1,000,000원씩 원고들에게 지급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