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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임신부님 강론

2024년 2월 16일 재의 예식 다음 금요일 <네 아우는 어디 있느냐?(창세 4,9)>

작성자김유정|작성시간24.02.16|조회수306 목록 댓글 3

 

이사 58,1-9; 마태 9,14-15

 

+ 찬미 예수님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님께 와서, “저희와 바리사이들은 단식을 많이 하는데, 스승님의 제자들은 어찌하여 단식하지 않습니까?”하고 묻습니다.

 

질문이 좀 가슴 아픈데요, 요한의 제자들이, 자신들과 바리사이들을 같은 그룹으로 묶으면서 예수님께 질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같이 힘을 합쳐 바라사이에게 대적해도 모자랄 판에 말이지요.

 

기원후 100년경 씌어진 디다케라는 문헌에 보면 위선자들은 월요일과 목요일에 단식한다는 기록이 있는데요, 아마도 바리사이들과 이른바 열심하다는 유대인들은 이렇게 일주일에 두 번 단식한 것 같습니다.

 

세례자 요한의 제자들은 왜 예수님의 제자들이 열심한 유대인의 길을 걷지 않는지 의아해했습니다. 이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은 명확합니다. “혼인 잔치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슬퍼할 수야 없지 않느냐?” 구약성경은 하느님과 하느님 백성의 관계를 신랑과 신부로 비유했고, 이 비유는 메시아 시대를 암시하는 데도 사용되었습니다. (이사 54,5-6; 62,4-5; 예레 2,2; 에제 16; 호세 2,14-23 등).

 

단식을 하는 이유는, 우리 역사에 개입해 달라고 하느님께 간절히 청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이제 메시아가 오셨고, 하느님께서 결정적으로 인류 역사에 개입하셨습니다. ‘눈앞에 있는 메시아를 알아보지 못하면서, 단식하며 청하고 있는 것이 대체 무엇이냐고 예수님은 묻고 계십니다.

 

1독서는 예수님께서 바리사이들에게 하시는 말씀이 그대로 담겨 있는 것 같습니다. “그들은 마치 정의를 실천하고 자기 하느님의 공정을 저버리지 않는 민족인 양 날마다 나를 찾으며 나의 길 알기를 갈망한다.보라, 너희는 단식한다면서 다투고 싸우며 못된 주먹질이나 하고 있다.”

 

어쩌면 오늘 우리에게도 하시는 말씀이 아닐까요? 우리도 사순시기를 보낸다고 하면서, 여전히 누군가를 흉보고 미워하면서, 하느님의 길을 알기를 갈망한다고 말하고 있지는 않을까요?

 

1독서에는 갈망한다(יֶחְפָּצ֑וּן 예파순)는 말이 두 번 나옵니다. “그들은 날마다 나를 찾으며 나의 길 알기를 갈망한다. 그들은 나에게 의로운 법규들을 물으며 하느님께 가까이 있기를 갈망한다.” 그 다음 절에는 보라, 너희는 단식일에 제 일만 찾고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는 갈망하다와 같은 어근의 말(חֵ֔פֶץ, 헤페스)입니다.

 

직역하면, ‘그들은 나의 길을 아는 것이 기쁨이라고, 하느님 가까이 있는 것이 기쁨이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단식일에 자기 기쁨을 찾고 있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도 사순시기를 지내며 찾고 있는 것이 하느님의 길인지, 아니면 자기만족인지 질문해 보아야겠습니다.

 

이사야서는 하느님께서 좋아하시는 단식이, ‘불의한 결박을 풀어주고, 멍에 줄을 끌러주는 것, 억압받는 이들을 자유롭게 내보내고 모든 멍에를 부수어 버리는 것, 네 양식을 굶주린 이와 함께 나누고 가련하게 떠도는 이들을 네 집에 맞아들이는 것, 헐벗은 사람을 보면 덮어주고 네 혈육을 피하여 숨지 않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공정과 정의에 이어 대단히 사회 교리적이고 실천적인 말씀입니다. 세상에 불의와 억압이 판을 치고 있는데, 그것에는 눈감고 단식만 하고 있는 것이, 자기만족을 추구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냐고 예언자는 외치고 있습니다.

 

교황님께서는 올해 사순시기 담화문에서 무관심의 세계화를 다시 언급하십니다. 하느님께서 창세기에서 너 어디 있느냐?”(창세 3,9)고 아담에게 질문하신데 이어, “네 아우는 어디 있느냐?”(창세 4,9)라고 카인에게 질문하신 것을 재차 인용하십니다.

 

우리는 이 사순시기에 하느님께서 너 어디 있느냐?”라고 묻고 계심을 기억해야겠습니다. 하지만 아울러 네 아우는 어디 있느냐?”라고 묻고 계심 역시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우리가 사순시기를 보내고 있는 것이, 나의 이웃에게, 이 세상에 무슨 의미인지를 물어야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그들이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것이다. 그러면 그들도 단식할 것이다.” 우리도 극기하고 보속하는 날이 있고 사순시기는 그러한 시기입니다. 그러나 우리와 바리사이의 차이는, 적어도 우리는 왜 그것을 하는지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진 : 최민식 빈첸시오 (1957년, 용산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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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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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허나경 | 작성시간 24.02.16 그리고 고깃집에서 이걸 보는 바리사이보다 못한 나...
  • 답댓글 작성자김유정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4.02.16 제 아우가 고깃집에 있었군요
  • 답댓글 작성자허나경 | 작성시간 24.02.17 김유정 제가 동생의 체중 kee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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