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 16,22-34; 요한 16,5-11
+ 오소서 성령님
오늘 제1독서에서 바오로와 실라스는 매를 맞고 감옥에 갇힙니다. 자정 무렵 바오로와 실라스는 하느님께 찬미가를 부르며 기도하고, 다른 수인들은 거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큰 지진이 일어나 감옥의 기초가 뒤흔들립니다. 즉시 문들이 모두 열리고 사슬이 풀립니다. 잠에서 깨어난 간수는 수인들이 달아났으리라 생각하고 칼을 빼서 자결하려 합니다. 그러나 바오로 사도가 큰 소리로 “자신을 해치지 마시오. 우리가 다 여기에 있소.”라고 말하자 간수는 바오로와 실라스 앞에 엎드립니다.
그리고 그들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 “제가 구원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라고 묻습니다. 바오로와 실라스는 “주 예수님을 믿으시오. 그러면 그대와 그대의 집안이 구원을 받을 것이오.”라고 말합니다. 간수와 온 가족은 그날 밤 세례를 받았고, 하느님을 믿게 된 것을 온 집안과 더불어 기뻐하였습니다.
바오로와 실라스는 감옥에 갇혔었지만, 자신들이 갇힘으로 인해 오히려 간수의 마음을 열었습니다. 지진이 일어나 감옥 문이 열린 것은 기적이지만, 더 큰 기적은 간수의 마음이 열린 것입니다.
엊그제 예비신자 환영식 때 스무 분의 예비신자들께서 와 주셨는데, 스무 분의 마음 문이 열렸다는 것은 사실 어마어마한 기적입니다. 주님께서 시작하신 일을 주님 친히 완성하셔서, 예비신자들을 당신께 대한 믿음의 길로 이끌어 주시기를 기도드립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성령을 약속하시며 말씀하십니다. “내가 떠나는 것이 너희에게 이롭다. 내가 떠나지 않으면 보호자께서 너희에게 오지 않으신다. 그러나 내가 가면 그분을 너희에게 보내겠다.”
우리는 이 말씀을 듣고, ‘아니 예수님도 계시고 성령도 오시면 안돼나? 왜 굳이 예수님이 떠나셔야 성령께서 오신다는 말씀이지?’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예수님이 ‘떠나신다’는 말씀은 ‘돌아가신다’는 뜻입니다.
오늘 복음의 마지막에서 예수님은 ‘이 세상의 우두머리가 이미 심판을 받았기 때문이다.’라고 말씀하시는데요, 예수님께서 돌아가심으로 인해 악마의 통치는 끝장이 나고, 악마는 더 이상 믿는 이들에게 힘을 행사하지 못합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죽음과 부활로 새로워진 세상에 성령을 보내주실 것입니다. 성령께서는 오셔서 예수님께 대해 온전히 이해하도록 우리를 이끌어 주실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복음에서 “내가 가면 그분을 너희에게 보내겠다.”고 약속하시는데요, 부활하신 후 제자들에게 나타나시어 숨을 불어넣으며 “성령을 받아라”(요한 20,22)라고 말씀하심으로써 이 약속을 이루어 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보호자께서 오시면 죄와 의로움과 심판에 관한 세상의 그릇된 생각을 밝히실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문장을 200주년 신약성경은 이렇게 번역하는데요, “그분이 오시면 세상을 책망하시며 죄와 의로움과 심판에 대해서 밝혀 주실 것입니다.”
‘책망하시며’(ἐλέγξει)라는 말씀은 재판과 관련이 있는데, 나쁜 것을 빛으로 데려가 그것이 잘못이라는 것을 보여준다는 의미입니다. 세상이 (1) 죄와 (2) 의로움과 (3) 심판에 대해 잘못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성령께서 입증하신다는 말씀입니다.
(1) 첫째, 세상은 죄에 대해 잘못 생각하고 있습니다. 죄는 사람이 되신 말씀을 거부하는 것인데, 말씀이신 그리스도를 믿지 않았기에 세상은 죄를 지었습니다.
(2) 둘째, 세상은 의로움에 관하여 잘못 생각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을 때, 사람들은 그분이 죄가 있기에 돌아가셨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세상이 의롭고 예수님이 죄가 있으신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의로우신 분이시고, 세상이 의롭지 않습니다.
(3) 셋째, 세상은 심판에 관하여 잘못 생각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으로 인하여 예수님이 패배하시고 악마가 승리한 것처럼 보일 것입니다. 그러나 정반대로 이 세상의 우두머리 노릇을 하던 마귀가 이미 심판을 받았습니다. 의로운 사람에게 유죄 판결을 내리면, 오히려 그러한 판결을 내린 세상이 심판을 받은 것입니다.
예수님의 수난과 부활로 세상의 우두머리는 이미 심판을 받았는데 끈질기게 되살아나서 의인들을 괴롭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영향력은 제한적이고 이미 힘을 잃었습니다. 성령께서 오시어 죄와 의로움과 심판에 대한 그들의 그릇된 생각을 다시금 밝혀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성령의 오심을 고대하는 사람들이며 성령의 인도를 받는 사람들입니다.
간수의 마음을 열어주시고 예비자들의 마음을 열어주신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도 열어주시어, 거짓에서 진리로, 불의에서 의로움으로, 혼돈에서 질서로 나아갈 힘을 우리 모두에게, 특히 우리나라 국민들에게 주시기를 청하며, 진심으로 기도드립니다.
오소서 성령님, 새로나게 하소서!
Nicolas de Plattemontagne, 필리피에서 감옥을 떠나는 바오로와 실라스(1665-1666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