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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임신부님 강론

2025년 7월 27일 연중 제17주일 <박재욱 율리아노 부제님 강론>

작성자김유정|작성시간25.07.27|조회수249 목록 댓글 2

 

 

창세 18,20-32; 콜로 2,12-14; 루카 11,1-13

 

오소서 성령님!

 

저는 신부님께서 소개해 주셨듯이 지난 6월15일 부제품을 받은 프랑스 엑상프로방스와 아를 교구의 박재욱 율리아노 부제라고 합니다. 강론을 시작하며 우선 지금까지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신 노은동 본당 공동체 여러분께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제자들은 예수님께 다음과 같이 요청합니다. “주님, 저희에게 기도하는 것을 가르쳐 주십시오.”(루카 11,1) 이 요청에는 제자들의 기도에 대한 열정과 함께 고민도 담겨 있습니다. ‘주님, 저희도 기도하고 싶은데 기도가 무엇인지 또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이러한 기도에 대한 열망과 고민은 오늘날 우리 것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저는 여러분께 오늘 독서와 복음을 바탕으로 ‘기도’에 대해 3가지를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첫째, 기도는 하느님과의 인격적인 관계 안에서 이루어집니다. 우리는 흔히 기도를 ‘하느님과의 대화’라고 합니다. 제1독서에서 아브라함은 하느님과 대화합니다. 아브라함은 소돔과 고모라의 구원을 위해 하느님께 청합니다. 즉 이는 아브라함의 청원 기도입니다. “혹시 그 성읍 안에 의인이 쉰 명 있다면, 그래도 쓸어버리시렵니까?”(창세 18,24) 아브라함은 마치 협상하듯, 의인 쉰 명에서 시작해 마흔다섯 명, 마흔 명, 서른 명, 끝내는 열 명까지 그 수를 줄여가며 하느님께 구원을 청하였고, 하느님은 그의 기도를 들어주셨습니다. 우리는 하느님과 아브라함의 대화 안에서 둘 사이의 인격적인 관계를 볼 수 있습니다.

 

하느님과의 대화, 즉 우리의 기도는 하느님과 우리가 이 인격적인 관계 안에 있다는 확신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주님의 기도에서, 우리가 하느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것도 바로 그 이유입니다. 우리는 자녀로서 아버지이신 하느님께 기도합니다. 참으로 우리가 믿고 사랑하는, 또 우리를 믿고 사랑하는 하느님은 우리가 물으면 응답하시고 청하면 들어주시는 살아계신 하느님이십니다.

 

둘째, 기도의 목적은 하느님과 우리가 하나 되는 데 있습니다. 오늘 복음의 마지막 부분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야 당신께 청하는 이들에게 성령을 얼마나 더 잘 주시겠느냐?”(루카 11,13) 이 말씀은 우리가 하느님께 청해야 할 것이 성령, 곧 하느님임을 가르쳐줍니다. 즉 기도는 우리 삶에 하느님을 초대하는 것이며, 하느님과의 일치로 나아가는 길입니다. 하느님은 이러한 우리에게 당신을 더 믿고 사랑하며, 당신의 뜻에 따라 살고자 하는 마음을 주십니다.

 

이를 더 쉽게 설명하기 위해 한 가지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여기 끈이 하나 있습니다. 이 끈은 하느님과 우리 사이의 관계입니다. 우리가 이쪽에 있고, 하느님은 이쪽에 계십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마다, 하느님께서는 이 끈에 매듭을 지으십니다. 기도를 거듭할수록 그 관계는 더 단단해지고, 또 더욱 가까워집니다.

 

때로 우리의 죄나 영성 생활의 게으름, 또는 우리에게 들이닥친 괴로운 일들로 인해 하느님과의 관계가 단절된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때에도 기도와 회개, 고해성사 등을 통해 자비로우신 하느님께서는 그 관계를 회복시키시고 더 가까워지게 하십니다.

 

또한 이 원리는 하느님과의 관계뿐만 아니라 이웃과의 관계에도 적용됩니다. 이웃과의 다툼 후, 기도와 용서, 화해를 통해 하느님은 나와 이웃 간의 관계를 회복시키시고 더욱 굳건하게 만드십니다.

 

셋째로, 기도의 내용과 그 방법에 대한 것입니다. 기도가 하느님과의 관계 안에서 이루어지고, 기도를 통해 그 관계가 더욱 돈독해진다는 것은 알겠는데, 아직 이 질문이 남아있습니다. ‘어떻게 기도 해야 할까요?’

 

오늘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기도할 때 이렇게 하여라.”(루카 11,2)라 하시며, ‘주님의 기도’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줄곧 빵을 청하는 이에게 결국 빵을 준다는 이야기, 아버지가 자녀들에게 좋은 것을 주려 한다는 이야기를 통해 끈질긴 기도의 필요성과 하느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분명 들어주신다는 확신을 주셨습니다. 그러니 주님의 기도를 온 마음 다해 그 뜻을 가슴에 새기며 꾸준히 바치는 것만으로 이미 훌륭하고 완전한 기도입니다.

 

또한 우리는 우리의 삶을 가지고 더 구체적으로 하느님께 기도할 수 있습니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우선, 제가 프랑스에 살면서 수없이 듣고 사용한 표현들, 프랑스어 일상 표현 세 가지를 여러분께 소개하고 싶습니다. : Merci, Pardon, S’il vous plaît.

 

먼저 Merci, 이는 우리말로 ‘감사합니다.’라는 뜻입니다. 다음으로 Pardon, 이는 ‘죄송합니다.’ 또는 맥락에 따라 ‘실례합니다’ 등의 의미로, 용서를 청하는 표현입니다. 끝으로 S’il vous plaît, 이는 의역하면 ‘제발’, ‘부디’라는 뜻으로, 무언가를 요청할 때 덧붙이는 표현입니다.

 

이 세 가지 표현을 기도에 적용해 봅시다. 하느님께 감사하고, 용서를 구하고, 요청합시다. 우리 삶에서 하느님께 받은 사랑과 은총을 바라보며, 하느님께 감사를 드립시다. 우리의 삶에서 하느님과 이웃과의 관계를 멀어지게 하고 단절시키는 우리의 죄를 성찰하며, 용서를 구합시다. 또한 우리 삶에 참으로 필요한 것, 특히 성령을 청하며, 하느님의 뜻과 우리의 뜻이 하나 되게 해달라고 요청합시다.

 

미사는 하느님께 감사, 용서, 청원을 드리는 가장 탁월한 때입니다. 이 미사에는 하느님께 대한 감사와 용서와 청원 기도가 가득 담겨 있으며, 무엇보다도 성체를 받아 모심으로써 우리 주님이신 예수님과 온전히 하나가 되기 때문입니다.

 

제가 지금까지 말씀드린 것 외에도, 교회에는 기도에 대한 풍부한 가르침들이 있습니다. 그것들을 잘 참고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공부 방법을 아무리 알아도 공부를 실제로 하지 않으면 아무런 효과가 없듯, 기도도 그 정신과 방법만 알고, 실제로 기도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기도의 힘을 믿으십시오. 만약 내 기도 자체의 힘을 믿을 수 없으시다면, 그 기도를 들어주시는 하느님, 그분의 선하심과 사랑을 믿으십시오. 기도는 분명 우리의 현실을 변화시킵니다. 때로 아무리 기도해도 어떤 외적인 변화가 이루어지지 않는 것 같다면, 그것은 어쩌면 내 시선, 내 마음을 변화시키라는 하느님의 응답일지도 모릅니다.

 

우리를 가장 좋은 길로 이끄시고,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시려는 하느님 아버지의 마음을 생각하며, 꾸준히 기도합시다.

 

 

윌리엄 홀만 헌트, 끈질긴 이웃, 1895년
출처: Importunate neighbour - Parable of the Friend at Night - Wikip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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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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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김동연 | 작성시간 25.07.27 그냥 듣기만 하기엔 무척 아까운 강론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주임신부님 선견지명 덕분에 귀한 강론을 더 깊이 묵상할 수 있겠습니다.
  • 답댓글 작성자김유정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5.07.28 네~ 부제품 받고 고국에서 하는 첫 강론이라 남겨 놓는 게 좋다고 생각했어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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