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마카 6,18-31; 루카 19,1-10
+ 오소서, 성령님
오늘 제1독서는 마카베오기 하권의 말씀입니다. 엘아자르의 순교 이야기인데요, 엘아자르는 ‘하느님은 도움’이라는 의미입니다. 기원전 167년, 팔레스티나 땅을 다스리던 안티오코스 4세는, 자신을 신이라 고백하라고 하면서 유다교의 경신례를 금하는 법령을 공포하고, 유다인들이 율법을 지키지 못하도록 하였습니다.
율법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시험할 수 있는 것 중 하나가 돼지고기에 대한 것이었는데요, 유목생활을 해오던 유다인들에게 생소한 ‘이방 짐승’ 돼지는 이방인들의 생활관습을 대표하는 것이 되었고, 그리스인들이 돼지를 잡아 제물로 바치던 관습 역시 유다인들이 돼지를 멀리하는 이유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엘아자르는 ‘돼지를 먹는 척하며 다른 고기를 먹어 목숨을 부지하라’는 주위의 권고에 대하여, 자신이 그렇게 한다면 ‘젊은이들에게 나쁜 표양이 될 것’이라며 죽음을 택합니다. 엘아자르의 말씀과 순교에서, 우리나라 신앙 선조들의 마음이 느껴져 숙연한 마음이 듭니다.
엘아자르와 순교자들은 어떻게 죽음 앞에서 두려워하지 않고 이런 결단을 내릴 수 있었을까요? 주님께서 엘아자르와 순교자들 안에 계셨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에 입성하시기 전 마지막으로 머무르신 곳, 예리코에서의 마지막 밤을 자캐오의 집에서 묵으십니다. 자캐오는 이 중요한 때에 어떻게 예수님을 모실 수 있었을까요?
제 생각엔 이름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자캐오야, 얼른 내려오너라. 오늘은 내게 네 집에서 자께요….”
자캐오는 예수님을 만나고 싶어서 자존심을 버리고 돌무화과나무 위로 올라갔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자캐오야, 얼른 내려오너라. 오늘은 내가 네 집에 머물러야 하겠다.”
우리도 예수님을 만나고 싶어서 무언가의 위로 올라갈 때가 있습니다. 나의 자존심 위에 올라가 있기도 하고, 나의 상처 위에 올라가 있기도 합니다. ‘남들에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나 ‘불안해하는 마음’ 위에 올라가 있기도 합니다.
그런 우리에게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마리아야, 내려오너라. 오늘 내가 네 안에 머물러야겠다.” “베드로야, 내려오너라. 오늘 내가 네 안에 머물러야겠다.”
이제 잠시 후 영성체 때에 우리는 백인대장의 말을 기도로 바칩니다. “주님, 제 안에 주님을 모시기에 합당치 않습니다.” 하지만 이어서 우리는 “그러나 한 말씀만 하소서, 제 영혼이 곧 나으리이다.”라고 감히 기도드립니다.
우리의 부당함에도 불구하고 주님께서는 우리 안에 오셔서 우리와 함께 머무십니다. 오늘 영성체송의 말씀을 되뇌어 봅니다. 이것이 엘아자르와 자캐오의 기도이기에, 또한 진정 우리의 기도가 되기를 희망합니다.
“저는 하느님 곁에 있어 행복하옵니다. 주 하느님을 피신처로 삼으리이다.”(시편 73(72), 28)
예수님과 자캐오, 11세기
출처: 33 Nedelya po 50ce 14 - Zacchaeus - Wikip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