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출 19,2-6ㄱ; 로마 5,6-11; 마태 9,36-10,8
+ 오소서 성령님
한 주간 동안 안녕하셨어요? 많은 분들께서 기도해 주셔서 지난 주일에 21명의 아이들이 첫영성체를 잘했고요, 저와 보좌 신부님은 대전 북부지구 신부님들과 함께 피정을 잘 다녀왔습니다. 자연 안에서, 또 형제 사제들 안에서 주님을 만나는 귀한 시간이었습니다.
엊그제 월드컵 조별리그에서 우리나라가 체코를 상대로 승리를 거두었는데요. 모든 국민의 마음을 하나로 모으는 뜻깊은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제가 예전에 하느님 아버지와 예수님께서 ‘한화 이글스’ 팬이라고 말씀드리면서 그 근거로 “아버지와 나는 하나다”, “이들도 우리처럼 하나가 되게 해주십시오.”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제시했습니다. 이것이 제가 지어낸 얘기라고 생각하시는 분도 계신 것 같은데요,
제가 지어낸 게 아니라는 증거가 오늘 제1독서에 나옵니다. 하느님께서는 모세에게 이렇게 이야기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내가 이집트인들에게 무엇을 하고, 어떻게 너희를 ‘독수리 날개’에 태워 나에게 데려왔는지 보았다.” 하느님은 왜 이스라엘 백성을 사자나 호랑이, 또는 곰의 등이 아니라 독수리 날개에 태워 데려왔다고 말씀하시는 것일까요?
죄송합니다. 농담이고요.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집트에서 노예로 살다가 모세의 인도로 이집트를 탈출했는데, 이집트가 섬기던 신들 중에 '호루스'라는 신이 있었습니다. 이 호루스는 매의 모습으로 표현되었고, 이집트 왕인 파라오 역시 이 호루스의 현현이라 여겼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당신께서 이집트의 신들을 심판하시고, 파라오의 권력을 무너뜨리시며, 당신 백성을 가장 강한 독수리의 날개에 태워 당신께로 데려오셨다고 말씀하십니다.
신명기 32장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광야의 땅에서 울부짖는 소리만 들리는 삭막한 황무지에서 그를 감싸 주시고 돌보아 주셨으며 당신 눈동자처럼 지켜 주셨다. 독수리가 보금자리를 휘저으며 새끼들 위를 맴돌다가 날개를 펴서 새끼들을 들어 올려 깃털 위에 얹어 나르듯 주님 홀로 그를 인도하셨다.” (신명 32,10-12)
성경에서 독수리는 이처럼 가장 강하고 용맹한 동물이면서, 동시에 약한 새끼를 돌보는 새로 묘사됩니다. 우리 모두는 그처럼 하느님께서 특별히 지켜 주시어 당신께로 데려오신 주님의 백성입니다. 우리 스스로, 우리 힘으로 온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독수리처럼 우리를 업어서 이곳으로 데려오신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화답송에서 “우리는 주님의 백성, 그분 목장의 양 떼라네.”라고 노래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돌보시지만, 우리가 한 가족, 한 백성으로 구원받도록 우리를 공동체로 부르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왜 우리를 그토록 소중히 여기실까요? 제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말합니다. “우리가 아직 나약하던 시절, 그리스도께서는 정해진 때에 불경한 자들을 위하여 돌아가셨습니다.”
우리가 의롭고 훌륭해서가 아니라 나약하고 불경하던 시절부터 하느님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하느님 사랑을 받아들일 뿐 아니라, 나 혼자만 구원받는 것에 머무르지 않고 다른 이들도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나를 성당으로 인도해 준 사람을 떠 올려 봅시다. 아마도 그 사람은, 나를 가장 사랑한 사람일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한 것을 나에게 전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가장 귀한 것은 영원한 생명입니다.
오늘 우리 본당에 처음 오신 분들은 누구의 인도로 오셨을까요? 예비신자 신청서에 ‘누구의 인도로 오시게 되었는지’를 적는 난이 있는데요, 해마다 같은 이름이 1등을 차지합니다. 그 이름은 ‘스스로’입니다. 스스로 오신 분이 가장 많으신데요, 하지만 돌아보면 프란치스코 교황님이나 김수환 추기경님, 마더 데레사 수녀님, 이태석 신부님 같은 분들이 천주교에 호감을 갖게 하셨고, 또 주위에서 성당 다니시는 분들이 보여주신 모범과 권유의 말씀이 내 기억 어디엔가 자리하고 있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우리 예비신자 여러분들을 인도해 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이 가진 가장 귀한 것을 전해 주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제1독서에서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나에게 사제들의 나라가 되고 거룩한 민족이 될 것이다.” 부르심은 자기 자신만을 위해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을 알지 못하는 이들을 하느님께 이끌어 주고, 하느님의 사랑을 세상에 전하는 사제의 역할을 하기 위해 주어집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사제들의 나라’, ‘거룩한 민족’으로서의 소명을 잘 수행했을까요? 성경은 이스라엘이 하느님 백성으로 선택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반복해서 불순종하고 예언자들의 경고를 받았음을 보여줍니다.
이제 예수님께서는 새로운 하느님 백성을 이끌어갈 사람들을 세우시고 그들을 ‘사도’라고 부르십니다. ‘사도’는 ‘파견된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파견하시며 말씀하십니다. “가서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선포하여라. 앓는 이들을 고쳐 주고 죽은 이들을 일으켜 주어라. 나병 환자들을 깨끗하게 해주고 마귀들을 쫓아내어라.” 이 일들은 예수님께서 하신 일들인데, 이제 사도들이 이어서 수행하게 될 것입니다.
이번 피정 때에 한 선배 신부님의 강론 말씀이 너무나 와닿았기에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신학교 총장이신 이상규 신부님께서 사제들을 대상으로 하신 강의 내용 중 일부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신 후 베드로를 사도들의 대표로 세우시며,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세 번 물으십니다. 그리고 그때마다 “내 양들을 잘 돌보아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왜 ‘나를 사랑하느냐’고 매번 물으셨을까요? 그들이 ‘너의 양’이 아니라 ‘내 양’이라는 것을 명심하라는 의미라는 것입니다. ‘네가 나를 사랑한다면, 네 방식 대로가 아니라 내 방식으로 양들을 돌보라’라는 뜻이라는 것입니다. 또한, ‘네가 나를 사랑한다는 것을 어떻게 증명할래? 나를 사랑한다면 내 양들을 잘 돌보아라’라는 의미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듣고 제가 사목자로서 어떻게 봉사하고 있는지, 교우 여러분들께서 예수님의 양이라는 것을 잊지 않고 있는지, 또 저의 방식이 아니라 예수님의 방식으로 저의 소명을 수행하고 있는지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모두는 주님의 사도로 부르심 받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도 물으십니다.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우리가 자녀들을 대할 때 내 방식대로가 아니라 예수님의 방식대로 대하고 있는지 돌아보아야겠습니다. 본당과 공동체에서 봉사자로서 직책을 수행하면서 내 방식대로가 아니라 예수님의 방식대로 봉사하고 있는지, 또 성당에서 만나는 형제자매가 예수님의 양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고 대하고 있는지 돌아보아야겠습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하느님께서 독수리 날개에 태워 당신께로 데려 내오신 소중한 존재들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너희는 나의 소유이다”,즉 “너희는 내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지금 이 자리에 모여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하느님께서 특별한 섭리로, 우리를 먼저 사랑하시고 당신의 강한 날개에 태워 데려오셔서 우리를 당신의 것으로 삼으시고 이 자리에 모이게 하셨습니다. 이번 한 주간 주님의 양들을 내 방식이 아니라 예수님의 방식으로 사랑하고 돌보며 주님께로부터 파견받은 사람답게 사랑의 사도로 살아가야겠습니다.
주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베드로에게 수위권을 맡기시는 예수님, 제주 성 이시돌 피정의 집, 2026. 6.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