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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임신부님 강론

2026년 6월 19일 연중 제11주간 금요일 <눈은 몸의 등불이다.>

작성자김유정|작성시간26.06.19|조회수92 목록 댓글 0

 

2열왕 11,1-4.9-18.20; 마태 6,19-23

시편 132(131),11.12.13-14.17-18(13)

 

+ 오소서 성령님

 

오늘 제1독서에는 너무 많은 이름이 나와서 헛갈리는데요, 솔로몬 왕 이후 왕국은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로 분단되는데, 그간 제1독서에 등장하던 나쁜 왕, 아합은 북이스라엘의 7대 임금으로써, 아내 이제벨과 함께 우상숭배로 기울었고, 둘 다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습니다.

 

한편 아합과 이제벨의 딸 아탈야는 자신의 아들 아하즈야가 죽자 권력을 찬탈하여 유다를 통치하였습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아탈야는 다윗 왕족을 모두 살해함으로써 유다의 왕권을 장악하려고 합니다. 이로써 하느님께서 다윗에게 하신 약속, 다윗의 후손의 왕좌가 영원히 이어지리라는 약속이 수포로 돌아가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한 부부를 통해 개입하심으로써 당신의 약속을 이어가시는데요, 부인 여호세바는 살해될 왕자들 가운데에서 자신의 조카인 요아스를 몰래 빼내어 숨깁니다.

 

한편, 그로부터 7년째 되던 해에 남편인 사제 여호야다는 요아스를 임금으로 세우고 기름을 붓습니다. 그리고 아탈야를 처형함으로써 아탈야가 쿠데타로 찬탈한 왕권을 바로 잡습니다.

 

최근 왕과 사는 남자라는 영화가 큰 화제를 모았는데요, 우리나라 역사에 비유하자면, 단종이 극적으로 살아남아 왕위에 복귀한 셈이라 하겠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다윗 왕조를 구하기 위해 장군도, 유명한 예언자도 사용하지 않으셨습니다. 이름조차 잘 알려지지 않은 여호세바와 여호야다를 사용하셨습니다. 영화에서 유해진 씨가 연기한 엄홍도가 단종을 복위시켰다면 어땠을까요? 1독서는 그만큼 엄청난 일이 역사 안에서 일어났음을 전합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화답송에서 주님께서 당신의 약속을 이어가심을 찬송하였습니다. 1독서의 사건이 우리에게 중요한 이유는, 만일 다윗의 왕조가 끊겼다면 예수님께서 다윗의 후손으로 태어나실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 화답송에 거기서 다윗 집안에 뿔이 돋게 하고, 나의 메시아에게 등불을 들려 주리라는 구절이 나오는데요, ‘은 강력한 권능과 힘, 강력한 후손을 나타내는 은유입니다. 집 안에서 등불이 타고 있다는 것은 그 집에 사람이 살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다윗 집안에 계속해서 후손이 이어지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Hossfeld & Zenger, Psalms 3:466)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마라. 땅에서는 좀과 녹이 망가뜨리고 도둑들이 뚫고 들어와 훔쳐 간다.” 당시에는 사람들이 돈이나 보물을 집 안이나 땅속에 보관했는데요, 좀과 녹이 망가뜨리고 도둑이 훔쳐 가는 일이 많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 그러므로 하늘에 보물을 쌓아라. 사실 너의 보물이 있는 곳에 너의 마음도 있다.”

 

이어서 말씀하십니다. “눈은 몸의 등불이다. 그러므로 네 눈이 맑으면 온몸도 환하고, 네 눈이 성하지 못하면 온몸도 어두울 것이다.” 이 말씀은 성경 학자들 사이에 통일된 견해가 없을 정도로 다양하게 해석되고 있는데요, 그 중 하나를 소개해 드리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D.L. Bock, Luke 2:1100-1101)

 

어떤 사람이 무엇을 인식하는지에 따라서, 몸의 건강이 결정됩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빛을 받아들인다면, 그 사람 전체가 빛을 비추게 됩니다. 하지만 눈이 건강해야만 빛을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눈이 건강하지 않아서 제대로 분별하지 못한다면, 그는 어둠 속에 있게 되어 영적인 빛을 얻지 못합니다.

 

영적인 분별을 할 수 있는 능력과 관계된다고 하겠는데요, 요즈음 사람들은 자신이 보고 있는 채널에 따라 세상을 다르게 판단합니다. , 같은 뉴스를 보는 것이 아니라 유튜브에서 자신이 선호하는 사람이 해석해주는 대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의 해석이 틀린 것이라면 어떨까요? 그 사람의 해석이 맞는지, 틀린지를 알아볼 수 있는 능력이 바로 눈이 맑은지, 성하지 못한지를 말하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눈이 맑다는 것은, 세상의 수많은 정보와 왜곡된 해석 속에서 '하느님의 뜻'을 식별해낼 능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아탈야는 권력만 바라보았기에 눈이 어두워졌고, 여호세바와 여호야다는 하느님의 약속을 바라보았기에 눈이 맑았습니다. 하느님의 뜻을 우선시하는 사람의 눈은 맑습니다. 그들은 세상의 안위라는 땅의 보물 대신, 하느님의 약속이라는 하늘의 보물에 마음을 두었던 것입니다.

 

우리의 시선은 지금 어디를 향하고 있습니까? 혹시 나의 안위와 세상의 것에 눈이 멀어, 정작 우리 곁에 계신 주님의 현존을 알아보지 못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의 영적인 눈을 맑게 가꾸어, 사라질 세상의 보물이 아니라, 참된 보물이신 하느님께 마음을 두며 살아가는 오늘이 되시기를 기도드립니다.

 

 

폰테바쏘(1707-1769), 요아스와 여호세바
출처: File:Francesco Fontebasso - Joash and Jehosheba - y1989-8 - Princeton University Art Museum.jpg - Wikimedia Comm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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