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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임신부님 강론

2026년 6월 23일 연중 제12주간 화요일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작성자김유정|작성시간26.06.23|조회수33 목록 댓글 0

 

2열왕 19,9-11.14-21.31-35.36; 마태 7,6.12-14

 

+ 오소서, 성령님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세 가지 말씀을 하시는데요, 첫째로, “거룩한 것을 개들에게 주지 말고, 너희의 진주를 돼지들 앞에 던지지 마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에 대한 해석은 무척 다양한데요, 그중 가장 설득력 있는 해석은 다음과 같습니다. ‘거룩한 것진주는 복음을 의미합니다. 돼지는 당시 불결한 짐승으로 여겨졌습니다. 그러므로 소중한 복음이, 신앙이나 회개에 아무런 관심이 없는 이들에게 경멸의 대상이 되지 않도록 주의하라는 것입니다.

 

유의할 것은, 특정한 부류의 사람들에게는 복음을 선포하지 말라는 말씀이 아니라, 만일 사람들이 하느님의 거룩한 선물에 대해 노골적인 모욕을 드러낸다면, 즉 지속적으로 거부하고 비난한다면 거기서 물러서서 다른 이들에게 가는 것이 적절하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너희를 받아들이지 않고 너희 말도 듣지 않거든, 그 집이나 그 고을을 떠날 때에 너희 발의 먼지를 털어 버려라.”(마태 10,14)는 말씀이 이와 연관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두 번째 말씀은 다음과 같습니다.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 이것이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다.”

 

이 말씀은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계명을 구체적으로 풀이하신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두 사람의 랍비 이야기가 자주 인용되는데요, 어떤 사람이 샴마이라는 이름의, 당대의 유명한 랍비를 찾아가서, “제가 한쪽 발로 서 있는 동안 율법 전체를 가르쳐 주십시오.”라고 청했는데, 샴마이는 그를 쫓아냈습니다. 그러자 이 사람이 이번에는 힐렐이라는 랍비를 찾아가 같은 질문을 던졌는데요, ‘힐렐은 이렇게 대답했다는 것입니다. “네가 싫어하는 것을 네 이웃에게 하지 마라. 이것이 율법 전체의 정신이고, 다른 것은 이에 대한 해석이다.”

 

힐렐의 대답과 예수님의 말씀이 언뜻 들으면 비슷한데요, 커다란 차이가 있습니다. ‘힐렐의 말은 부정문입니다. “네가 싫어하는 것을 네 이웃에게 하지 마라.” , 아무것도 안 해도 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을 자주 비판하셨고, 대표적인 예는 마태오 복음 25장에 나옵니다. 너희가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주지 않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주지 않은 것이다.”(마태 25,45)

 

힐렐의 대답과 달리 예수님의 말씀은 긍정문입니다.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 이 말씀은, 우리 자신의 힘만으로는 이 말씀을 실행하기 어렵다는 깨달음으로 이끕니다. 남이 해 주기를 바라는 대로 남에게 해 주기 위해서 우리는 은총을 구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세 번째 말씀은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입니다. 한 주석가가 한 말이 많이 와 닿았는데요(C.L. Blomberg), 오늘날 참된 그리스도인의 비율은, 박해 시대의 참된 그리스도인의 비율과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말이었습니다.

 

언뜻 생각하기에, 오늘날 신앙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기에 참된 그리스도인의 비율이 더 많을 것 같지만, 참된 그리스도인이라면 박해가 와도 위험을 무릅쓰고 신앙을 고백하겠지요? 그렇기에 그 비율이 비슷할 것이라는 말에 공감이 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만일 박해가 닥치면 나는 여전히 신앙을 고백할 자신이 있는가?’를 묻기보다, 지금 이순간 많은 사람들이 선택하는 넓은 문과 넓은 길을 선택할 것인지, 아니면 찾아가는 사람이 적은 좁은 문과 비좁은 길을 선택할 것인지를 물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복음에서 산상설교를 마무리하시면서, ‘이 가르침이 어렵다고 생각되기에 많은 사람들은 이 길을 놓아두고 넓은 길로 가겠지만, 너희는 산상설교의 좁은 길로 걸어 가라고 초대하고 계십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아시리아 임금 산헤립은 유다 임금 히즈키야에게 편지를 보내어 하느님을 모독하는 말을 합니다. 이에 히즈키야는 성전에 올라가 그 편지를 펼쳐 놓고 하느님께 하소연합니다. 이 기도는 사적인 이익을 위한 기도가 아니라 산헤립의 비방으로 훼손된 하느님의 이름에 관심을 둔 기도입니다. (I.W. Provan) 히즈키야는 왕국의 안위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느님의 이름과 영광이 드러나기를 간절히 청하며 기도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그 기도를 들으시고 예루살렘을 구원해 주십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세상의 무관심과 비난 앞에서도 복음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소극적인 태도를 넘어 이웃에게 사랑을 실천하며, 세상의 흐름을 거슬러 생명으로 이끄는 좁은 길을 선택하라고 초대하십니다. 이것이 우리 힘만으로는 불가능하기에, 우리도 히즈키야처럼 하느님 앞에 나아와 우리 자신을 온전히 펼쳐 놓고 은총을 구해야겠습니다.

 

주님은 그 길을 혼자 가라 하지 않으시고 당신께서 동행해 주십니다. 오늘 복음 환호송의 말씀을 다시 들어보겠습니다.

 

나는 세상의 빛이다. 나를 따르는 이는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얀 라위컨(1649-1712), 좁은 문
출처: File:Teachings of Jesus 1 of 40. strait is the gate. Jan Luyken etching. Bowyer Bible.gif - Wikimedia Comm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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