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한 굴림체는 Amazing님의 글이고, 바탕체 글씨는 제가 수정제안한 사항입니다.
"1986년 UR에서 다자간무역협상개시에 합의했고 세계보건기구를 만들것을 제안해 UN에 세계보건기구가 생깁니다. 미국은 농산물까지 개방할 것을 제안합니다."
세계보건기구(World Health Organization)는 1946년 국제보건회의에서 채택한 세계보건기구헌장에 의거, 48년 4월7일 발족하고 한국은 1949년, 북한은 1973년에 가입하였습니다. 해석하기로 세계무역기구 WTO 의 오타가 아닌가 합니다. WTO는 1995년 발족하고 한국은 그해에 가입합니다. WTO라고 하면 유엔 산하기구라는 문장이 틀립니다.
"그런 몬산토가 1987년 삼성 등에 업혀 한국에 상륙합니다."
제가 알기로는 금호그룹으로 압니다. 당시 금호의 임원급에 범삼성가 내지는 삼성출신이 있었다 하더라도 몬산토의 87년 당시 몬산토의 한국에이전시가 겉은 금호, 속은 삼성이라는 이중의 에이전시 내지는 원글에 그런 표현은 없지만 트러스트 내지는 카르텔 비슷한 것을 만들었다는 논리는 수긍하기가 어렵습니다.
"박정희때 잠깐 언급됬던 새만금 사업론 역시 유종근 씨에 의해 이 시점에 다시 부활합니다."
아래 사실로 볼때에 유종근 씨에 의한 새만금 사업의 부활은 새로운 시각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울러 서해안 간척사업은 국토개발 및 경제개발계획에 의거 잠깐이 아니라 꾸준히 검토되고 진행되어온 일입니다.
새만금 사업 계획의 지적 재산권은 어느누구에게도 없습니다. 서해안은 먼 옛날의 한국 최초의 수리시설이라는 김제 벽골제 시절부터 간척되어 온 곳입니다. 오즉하면 갯벌에 쳐박고 사는 놈들이라는 뜻의 '전라도 개땅쇠'라는 말까지 있겠습니까 ! 김제의 광활이 일제때 간척되고(새만금과 맏닿아 있습니다.), 바로 옆의 부안 계화도는 60년대에 간척됩니다. 섬진강댐 수몰지구의 정읍산외, 산내, 임실, 강진 운암 일대의 수몰농민들이 군사정부에 의해 강제로 이주한 곳이 부안 계화도 간척지입니다. 이 역시 새만금과 맞닿아 있습니다. 1979년 10월 26일은 궁정동의 김재규에 의한 박정희의 사살로 유명하지만 그날 당일 아산평택만의 삽교천 방조제의 개통테이프를 박정희는 영광스레 끊습니다. 그보다 서산간척지구는 잘 알다시피 현대그룹이 자기자본으로 간척했습니다. 폐선박을 이용해서 방조제 끝물막이를 한 정주영의 아이디어로 유명한 일화가 있습니다.
이런 서해안 개발의 역사 속에서 굳이 오늘날 새만금사업의 아이디어를 누가 제공했냐를 따지자면 일반적으로 전북 무준군 무풍면 출신의 1987년 당시 농림부 장관이던 황인성씨를 거론합니다. 87년 대선에 니오는 노태우씨의 호남 국책사업 개발공약으로 정치적으로 제시됩니다. 노태우가 당선되자 대통령공약사업 코드넘버 20-07-29로 관리됩니다. 당시 낙선한 김대중씨는 호남지역 개발을 위한 목적으로 노태우에게 새만금 사업의 적극추진을 요구합니다(90년7월16일 노태우 대통령과 신민당 총재 김대중 영수회담) 농림부는 70년대의 서해안 간척 장기 구상에 뿌리를 두고 87년 3~11월에 사업타당서 조사, 91년에 착공하게 됩니다.
[70년대]
71년 옥서지구 농업개발사업계획 수립, 75년 옥서지구 1단게사업 타당성 조사, 75년 10월 서남해안 간척농지 개발사업 기본계획 수립, 76년 서남해안 간척 적지 자원조사 76년 옥서지구 1단계사업 기본설계 완료
[80년대]
81~85 김제지구 간척지 농업개발사업 타당성 조사, 82~84 김제지구 기본조사, 86년1월 옥서지구 개발 2단게인 김제 옥구 부안지구를 통합 새만금지구 종합개발 사업데 대한 구상 시작, 86년5월 서나만해안 간척사업을 종합개발사업으로 전환 모색,
87년5월12일 황인성 농림부 장관 서해안 간척사업 추진계획 발표, 87년7월13일 서해안농공종합단지 개발사업 타당성 조사 돌입, 87년10월17일 청와대에 타당성 조사 보고(유관부처합동검토지시) 87년11월4일 경제부처장관회의 새만금지구 추진방안 보고,87년 11월21일 민주당 김영삼 후보새만금사업추진공약 87년12월10일 노태우 민정당 대통령 후보 전주 유세에서 새만금 간척사업 공약발표 87년12월11일 농림부 사업추진계획 발표, 88년2월1일 농림수산부 새만금지구 간척지 개발사업 추진계획 수립, 농업진흥공사에 시달, 91년8월13일 사업시행계획 확정고시, 91년 11월28일 착공, 99년 1월11일 유종근 전북지사 새만금 사업 전면 재검토 선언 및 공동조사단 구성 제의(농지보다는 산업용지로의 전환을 의미 이때는 농지70% 산업용지 30%임 현재는 산업용지 70% 농지 30%로 역전됨~ 2001년 5월25일 새만금 사업 게속 결정가지 2년간 중단됨.(이후 생략)
"새만금 사업을 내놓은 유종근 씨가 1992년 전북도지사에 당선됩니다. "
92년에는 지방선거가 없고, 유종근 지사는 82년 미국에 망명온 김대중을 처음 만나게 되고, 94년 영국 귀국합니다. 전북도지사는 95년에 당선됩니다. 그가 미국에 있으면서도 87년 김대중대통령후보의 정책 특보를 맡는데 새만금 사업안은 제출한 적이 없습니다. 다만 전라북도도지사로서 새만금사업이 성장의 관점에서 성공적으로 진행되기를 추진한 사람일 뿐입니다. 여타 도지사와 다른점이 없다고 해야 맞는 표현일 것입니다. 시기적으로 유종근 씨의 행적과 맞지 않습니다.
첨부파일의 연대기에 "86년 유종근 제안 타당성 조사"
이 표현은 사실과 부합하지 않고 위에서 말한 것처럼 유종근씨는 새만개발사업 입안과는 전혀 관련이 없습니다. 당시에 유종근씨는 럿커스대와 뉴저지주정부에서 일하고 있었습니다.
첨부파일 연대기에 "2005년 방조제 도로높임 및 성토 시작"
2005년이 아니라 2010년입니다.
1호방조제 (98년완공)통행도로는 방조제 내수면측에 본방조제보다 20여미터 이상 아래로 축조되어 외해 측 바다를 전혀 자동차통행하면서 볼 수가 없었습니다. 이에 전라북도가 건의하고 정부가 받아들여 1호방조제 도로높임 공사는 2010년 2월 공사를 착공하고 사업비 434억을 들여 2011년 7월22일 개통합니다.
참고로 방조제 도로높임공사는 순전히 관광조망용이며, 내부 용지개발에는 영향이 없습니다. 내부 담수호로부터 용지를 구획하는 제방은 방수제(조와 수의 차이)입니다.
첨부파일 연대기에 2006년 "김재명 정무부지사 내정"
김재명씨는 취임 후 1년도 못되어 아무런 실적도 없이 사직합니다. 삼성 출신의 정무부지사 기용은 기업유치를 위한 전라북도의 전략에 의한 것이지 삼성이 의도적으로 배치한 것은 아닙니다. 현재까지 전라북도에는 단 한개의 삼성 게열사가 없습니다. 성장주의 정치관을 가진 이들은 선거 때마다 삼성기업 유치를 내거는게 전라북도 현실입니다. 전라북도도민들은 삼성의 새만금 투자에 대해서 '8년뒤의 일인데' 가봐야 아는거지 반신반의하고 있습니다.
* 참고로 새만금 용지중 작물을 심을 수 있는 땅은 전체의 30%입니다. 당초는 산업용지 30% 농지 70%였는데 이명박정부가 역으로 산업용지 70% 농업용지30%로 뒤집습니다. 즉 여의도 면적의 40개 정도입니다. 여기서 여의도 면적은 윤중제 안쪽 좁은 의미에서의 여의도 2.8KM2를 말합니다. 삼성이 밝힌 새만금 투자는 2021년부터 2040년까지 3단계에 걸친 20조원입니다. 전라북도의 일부에서는 LH공사가 일괄 진주로 이전하자 전북을 달래기 위해 총리실에서 주도해서 삼성을 끌여들여 전북민심을 달래려 한 것 아니냐, 투자의 실체가 없는 정치적 노림수라고 주장하는데 대표적인 이가 현 국회의원인 장세환 의원입니다. 신재생에너지 관련기업으로는 태양전지에 필요한 폴리실리콘 제조기업인 OCI가 이미 새만금산단 북측에 10조원 투자를 시작하고 있습니다.